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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이저우 이야기 (1) ]

정주학의 발상지 신안강

임세권

강이 마을을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해 잘들고 물이 풍부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햇볕이 잘 비추이고 물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 모여 살게 마련이다. 휘주의 자연환경이 한국의 안동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러한 취락지가 갖는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휘주와 안동은 도시 또는 마을이 갖는 입지부터 상당히 유사하다. 그것은 휘주 지역이 황산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남부 산지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산지는 산과 산이 만나는 계곡에서 강줄기가 만들어지고 강줄기들이 만나서 큰 강을 이루게 되므로 작은 계류가 만나는 지역에 작은 마을이 형성되고 큰 강이 만나는 곳에 큰 마을이 형성된다. 안동지역의 전통마을들이 태백산을 의지하면서 낙동강 상류 또는 그 지류들의 합류 지점에 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툰시 시내를 관통하는 신안강, 뤼수이강과 헝지앵강이 만나는 지점이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신안강이라 할 수 있다.
철교 밑으로 흘러드는 강이 뤼수이 강이며 신안강의 본류다. 강가의 리양진 마을이 저녁 안개 속에 잠겨 있다.



툰시 시내의 명나라 때 건설된 라오다치아오(老大橋) 다리 밑을 흐르는 신안강.


현재 황산시의 시정부가 있는 곳은 툰시구屯溪区지만 이전에 툰시는 슈닝현休宁縣에 속했던 곳이다. 툰시구의 시가지는 헝지앵橫江강과 뤼수이率水강이 신안강新安江으로 합류하는 곳이어서 대도시가 형성되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 두 강은 다같이 슈닝현을 흐르고 있으나 뤼수이강은 슈닝현에서 발원하고 지도상에 신안강으로 표기된 곳도 있어 신안강의 원 물줄기가 뤼수이강임을 알 수 있다. 툰시는 마치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안동시와 흡사하여 안동사람이 툰시 시내의 신안강변에 서서 보면 이곳이 안동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지리환경이 비슷하다.

소위 일부육현一府六縣으로 일컬어지던 후이저우 지역은 후이저우부徽州府 아래 셔현歙縣, 슈닝현休寧縣, 이현黟縣, 치먼현祁门縣, 지시현绩溪縣, 우위엔현婺源縣등 여섯 개의 현을 말한다. 이중 셔현, 슈닝현, 이현, 치먼현은 현재의 안후이성安徽省 황산시黃山市에 속하며 지시현은 안후이성 쉬엔청시宣城市에, 그리고 우위엔현은 쟝시성江西省에 속한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행정구역상 성省이 다르고 시市가 다르지만 동일한 역사와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같은 후이저우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후이저우인들의 높은 문화적 긍지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이 지역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꿋꿋이 그들의 전통을 지켜온 저력이 되었다.

신안강이 만들어낸 후이저우 문화

일부육현 중 셔현, 슈닝현, 이현, 지시현 등이 신안강 또는 지류를 끼고 있으니 후이저우는 신안강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현재 휘주인들의 조상은 대부분 중원지역에서 이런 저런 역사적 굴곡을 배경으로 남하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험한 산간지역까지 오면서 신안강의 물길을 많이 이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안강은 산이 많은 이 곳에서 소금을 실어오고 차를 실어내가는 경제 유통의 통로였고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고 들어오는 인적 소통의 통로였기도 하다. 또한 신안강은 그들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여 명청대 이후 중국 전체에서 유명한 후이차이徽菜라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후이저우 지역 문화의 한 갈래로 신안화파라는 화가들의 그룹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예술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황산黃山이라는 명산과 더불어 신안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경치를 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산수화랑으로 불리는 신안강 일대의 풍경은 황산시 셔현 션두쩐深渡镇의 약 백리 길을 말하지만 이는 관광정책상 붙여놓은 명칭이고 실제 신안강 어디를 가나 명승 아닌 곳이 없다.


명말청초의 대표적 신안화파 화가 청수이程邃의 산수도, 신안화파는 지금도 이어져 많은 화가들이 신안화파를 자처한다.


툰시의 시중심에서 헝지앵강과 합류되는 뤼수이강의 발원은 안휘성 황산시 휴녕현의 우구지앤산五股尖山1629.8m이다. 이 산은 과거 후이저우 6현의 하나였던 쟝시성 우위엔현과 안후이성 슈닝현의 경계를 이루는 우롱산맥五龍山脉의 주봉 중 하나이며 슈닝현의 최고봉이다. 뤼수이강은 신안강 상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지도에 따라서는 신안강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슈닝현의 뤼수이 강변에는 도교의 명산으로 이름난 치윈산齊雲山이 강과 함께 어울어져서 절경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신안강의 발원이 우구지앤산이라 하여도 명실상부한 신안강의 출발지는 현재 황산시의 시정부가 있는 툰시의 시중심지라 할 수 있다. 툰시구의 서쪽 슈닝현에서 흘러온 헝지앵강과 뤼수이강이 툰시 중심에서 합류하여 여기서부터 명실상부한 신안강의 이름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신안강으로 인해 후이저우는 신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도교 성지 치윈산과 신안강이 어울어진 풍경


한국 사람에게 신안이라는 지명은 주자학을 일으킨 주시朱熹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주시는 푸지앤성福建省 여우시尤溪에서 출생한 사람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과거에 합격하여 푸지앤에서 관리를 지내게 되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가족들 모두 푸지앤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출생하였으니 푸지앤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중국도 대체로 조향 즉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을 고향이라고 하니 후이저우가 진짜 그의 고향이다. 그래서 주시는 자신도 후이저우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았고 후이저우인들 역시 주시를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주시 관련 유적으로 유명한 곳은 쟝시성 우위엔현의 원공산文公山에 있는 주시 할머니의 무덤이지만 주시의 조상이 처음 자리 잡고 살았던 마을은 신안강 가에 있는 셔현 황둔篁墩이란 작은 마을이다. 황둔은 후이저우에 내려온 주요 성씨의 조상들이 처음 뿌리내린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주학을 성립시킨 청하오程颢, 청이程颐 형제의 조상과 주시의 조상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정주궐리程朱闕里로 유명하다. 후이저우를 정주학의 발상지라고 하는 것도 이곳 황둔 마을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주부자조묘朱夫子祖墓’라 새긴 묘표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홍수에 쓸려 개울가에 버려진 것을 수습하여 최근에 세운 황둔정주궐리문화진열관篁墩程朱闕里文化陳列館이란 건물 앞 마당에 눕혀 놓은 것을 2010년에 확인하였다. 지금은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위엔현 원공산文公山에 있는 주시朱熹 조모의 무덤



지금 황둔에는 주씨나 정씨의 사당이 남아 있지 않지만 옛 사당터가 보존되어 있고 사당에 있던 몇몇 석물들이 남아 있다.


행정중심이자 치수중심인 셔현

과거 신안강 유역의 가장 큰 현은 셔현이었다. 셔현은 후이저우부의 여섯 현 가운데 부의 치소였던 곳이다. 후이저우를 과거에는 셔저우歙州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것은 치소가 셔현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셔현에는 옛 후이저우의 치소였던 지역이 성곽으로 둘러싸여 후이청진徽城鎭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보존되어 있다. 후이청진은 후이저우부의 치소라는 뜻이다. 셔현은 지금도 신안강 연안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옛 후이저우의 행정 중심지인 만큼 고성곽과 성 안의 옛 도시가 옛 그대로 남아 있어 휘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가보아야 할 명소다. 셔현 고성에서 강을 따라 2.5킬로미터 정도 내려가면 위량바漁梁坝라는 고대의 물막이 보가 있다. 수나라 때 처음 축조했고 명대에 중건했다는 이 석조 제방은 신안강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는 풍부한 수자원을 항상 확보하여 주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시설물이다. 후이저우의 중심지 후이청진에 신안강의 가장 오랜 치수 유적이 있는 것은 후이저우와 신안강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보인다.


후이저우의 치소였던 셔현 고성의 성문


위량바 마을처럼 강에 붙어 형성된 마을은 강을 따라 만들어진 긴 골목길 좌우에 주택이 배치되고 그 길을 가로지르는 짧은 골목들이 모두 강으로 연결되어 이곳 사람들이 강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마을 안 사당에는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진 가면춤 도구가 놓여 있어 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신앙 의례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제방 외에도 신안강에는 명청대에 건설된 수많은 교량들이 있다. 교량들은 대부분 돌을 사용한 석교로 수백년을 지나는 동안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리들은 규모면에서나 외형상의 아름다움에서나 견실함까지도 세계적인 보물들이다.

신안강에서 시작된 후이저우 이야기는 앞으로 강 또는 산간의 마을들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펼쳐보고자 하며 후이저우가 세계에 자랑하는 명산 황산 이야기까지 이어갈 것이다.


셔현 위량바 마을에서 배로 아이들을 태워 강을 건너는 뱃사공, 위쪽의 제방이 수나라때 처음 만들었다는 물막이 보다.



위량바 마을의 강으로 통하는 골



슈닝현 치윈산진의 옌치엔촌과 옌치아오촌을 이어주는 등펑치아오(登封桥) 다리, 명대의 유적이다.




작가소개

임세권 (포토갤러리 유안사랑 관장)
임세권
1948년생.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안동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과 동북아시아 선사암각화와 고대 금석문 연구자로 다양한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1992년 2월부터 1년간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 암각화 유적 조사, 이후 2012년까지 러시아 몽골 중국 등 동북아시아 암각화 현장 조사, 1999년 8월부터 1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 남서부 암각화 유적 조사. 2007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후이저우 지역 전통마을 조사 및 촬영 작업을 진행중이다. 2013년 9월 포토갤러리 유안사랑 개관하고,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중국 변방을 가다>(신서원), <한국의 암각화>(대원사), <한국금석문집성1 고구려 광개토왕비>(한국국학진흥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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