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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의 사건일지

객사 벽서 사건

새해가 밝았다. 현감 오달현은 새해 첫날 행사로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기 위해 객사로 향했다. 객사란 사신이나 귀빈을 모시기 위해 만든 관청으로 귀빈들의 숙소로도 이용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관청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이 한 달에 한 번 행해지는 망궐례였다.

망궐례는 지방 수령들이 임금님을 뵙듯이 예식을 치르는 것으로, 객사 안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놓고 그 앞에 절을 올리는 것이다. 매월 1일과 한식과 추석 같은 명절, 왕과 왕비의 탄신일, 임지에 부임하거나 떠날 때 등등에 망궐례를 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 역시 필요에 따라 망궐례를 올리기도 했다. 그만큼 객사는 지방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임금님을 대신하는 곳이니만큼 관청보다 더 격이 높은 건물이 객사였던 것이다.


나주의 객사 건물 금성관(출처: 문화재청)



“어, 어, 아니, 이런 무엄한 일이…”

여러 준비를 위해 오 현감보다 앞서갔던 공방 최한우가 흙빛이 되어 길을 되돌아 뛰었다.

“거, 체통 없이 무슨 달음박질이오?”

이방 장윤진이 멈추라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누, 누가…”

최 공방은 숨이 턱에 차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장 이방이 혀를 끌끌 찼다.

“객사 대문에 벽서를 붙였, 붙였습니다!”

“뭐라?”

장 이방은 금방 체통 운운한 것은 까맣게 잊은 듯이 객사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과연 객사 대문에는 흰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아직 어두웠던 터라 눈이 침침한 이방은 통인(通引, 관청의 심부름꾼)에게 등불을 높이 들게 한 뒤 벽서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오늘도 그대를 보지 못할까 마음 졸였는데, 이리 만날 길이 있었다니 참으로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지난번 만난 후로 몸이 여윈 듯하니 섭생에 부디 좀 더 신경을 쓰시길 바랍니다. 오늘 그대의 즐거운 웃음소리 방문을 넘어서 산으로 향하니 참으로 복된 하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날 마주 앉아 그 웃음소리 들을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방의 머리가 점점 옆으로 꺾였다. 글 내용을 읽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벽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자고로 벽서란 작게는 신변의 어려움, 크게는 고을의 실정, 더욱 위험하게는 군주의 잘못을 꾸짖는 용도로 붙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그저 연서처럼 보였다.

“무슨 일인가?”

이방이 고민을 하는 사이에 오 현감이 객사에 이르렀다. 이방은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객사 대문에 벽서가 붙었다 하여 살펴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동네 총각이 쓴 연서인 듯합니다.”

“연서를 왜 객사 대문에 붙인단 말인가?”

오 현감이 이방을 밀치며 벽서를 읽어 내렸다. 오 현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언문을 쓴 것을 보니, 어떤 무지한 백성이 헛짓거리를 한 모양이다. 찢어버려라.”

“네.”

이방이 얼른 벽서를 찢어내려고 하는데, 형방 구태현이 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오 현감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응? 뭐가 아니 돼?”

“객사는 주상 전하를 갈음하는 전패가 모셔진 곳인데, 감히 이런 장소를 어지럽힌 행위는 일벌백계하여 지엄하신 주상 전하의 위엄을 알게 해야 합니다. 철저히 수사하여 이런 무엄한 짓을 한 망나니 놈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방이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새해 첫날인데 굳이 일을 만드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정에 대한 비방이면 모르겠지만 이런 어린아이 장난에 굳이 사달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형방이 바로 반발했다.

“이게 왜 어린아이 장난이라는 거죠? 이건 참서(讖書)임이 분명합니다.”

“참서라니? 뭘 봐서 이게 참서라는 거야?”

이방이 형방 앞에 서서 배를 쑥 내밀며 말했다.

“그거야 이제 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

“그러니까 암것도 모르는데 일단 사달부터 일으키자 이거야?”

“사달일지 오달일지는 조사를 해봐야 아는 거지만, 뭐가 켕기십니까? 무조건 덮자는 꼴이 뭔가 이상하네요.”

형방의 말에 이방보다 먼저 오달현이 불편한 기침 소리를 내었다. ‘오달’이라는 말이 거슬렸던 것이다.

“이러다 망궐례는 언제 올리겠느냐? 그건 뜯어내고 나머지 일은 이방과 형방이 알아서 해라.”


객사에서 진행하는 망궐례 모습(출처: 스토리테마파크)



통인이 얼른 손을 뻗어 벽서를 찢어냈다. 그때 산비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잠깐, 이리로.”

통인이 얼른 고개를 숙이고 벽서를 바쳤다. 산비가 벽서 내용을 슥 훑어보는데, 얼굴이 그야말로 붉으락푸르락했다.

그 사이에 현감 일행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산비도 벽서를 다시 통인 손에 넘기고 객사 대문을 넘어섰다. 벽서의 내용은 분명히 서린 도령이 자신에게 보낸 것이었다. 서린 도령은 언문으로든, 한문으로든 편지를 쓰면 그 안에 뫼 산(山)과 아닐 비(非)가 들어가는 말을 넣었다. 이 글에도 ‘산으로 향하니’와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들어있으니 틀림없었다.

자신에게 쓴 편지가 왜 객사 대문에 붙었을까? 서린 도령이 자신에게 보낸 것은 틀림없지만, 서린 도령이 쓴 건 아니었다. 글씨가 딴판이었다. 내려 긋는 획이 불안정하고, 다른 획들도 궁녀들이 쓰는 글씨처럼 가늘게 쓰인 것을 보면 분명히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이었다.

벽서, 아니 서린 도령의 편지 내용을 보면 분명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큰소리로 웃은 적이 있으니까.

비야는 곰곰이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아가씨, 서찰이 왔습니다요.”

몸종 채비가 길쭉한 사각형 비단보를 들고 들어왔다. 채비는 열다섯 동갑으로 포천현 사람이었다. 비단을 펼쳐보니 꽃잎이 은은하게 비치게 만들어진 화선지에 곱게 쓴 글이 나왔다.

“호랑이 해가 가고 토끼 해가 오는 때를 맞이하여 사대부가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함께 섣달그믐의 밤을 보내고자 하오니 부디 귀한 걸음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효정 배(拜)라….”

“효정 아가씨라면, 김재근 대감댁 어르신 손녀 아닌가요?”

“그래. 이조정랑 조카를 두신 그 댁이지.”

“아가씨, 어쩌시겠습니까? 서찰을 가져온 하인이 아직 답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비가 선뜻 어찌할지를 말하지 않자 채비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포천의 양갓집 규수 분들은 모두 참석하실 겁니다.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거기다 젊은 선비님들도 모두 초청했는데, 다들 오신다고 해요. 서린 도령께서도 꼭 오실 겁니다.” 산비가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채비를 바라보자 채비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 풀썩 주저앉았다.

“쇤네가 주제넘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산비가 하하 웃었다.

“주제넘기는 무슨, 그런 말 하지 말아. 네 말도 그렇고, 한번 가보는 것도 좋겠어.”

“그럼 하인에게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낸 것이 열흘 전이었다. 섣달그믐이 되어 김재근 댁에 가보니, 동네 잔치판이 따로 없었다. 마을의 젊은 선비들과 아가씨들이 모두 모여 북적이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안채 대청에 모여 앉았고, 선비들은 사랑에 모였다. 아가씨들은 긴 실에 나이만큼 매듭을 지어 새해 운수를 보기 위해 불에 태우고, 선비들은 윷판을 벌여 왁자지껄한 흥을 발산하고 있었다.


윷놀이(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각기 장소는 달리했어도 한 집안에 있는 것이니 오가며 서로를 흘깃흘깃 보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당연히 서린 도령의 모습도 보였는데, 산비는 모인 선비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이가 서린 도령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린이 산비를 바라보자, 산비 주변에 있던 아가씨들은 모두 자길 바라본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그날 서린 도령이 나한테 편지를 쓴 건 분명한데, 그게 어떻게 누구의 손에 들어가게 된 걸까? 그리고 그걸 굳이 객사 대문에 전시한 이유는 뭘까?’

망궐례가 진행되는 동안 산비의 머리에는 이 수수께끼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편지를 누구에게 전달해달라고 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하인이건, 동무건 이런 걸 누구에게 전달시킨다는 건 바보짓이다.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만일 맡긴다면…’

산비는 채비를 보고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둘은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 뒤채로 넘어갔다. 산비가 급히 물었다.

“어제 서린 도령 본 적이 있니?”

“그럼요. 어제 포천 선비님들 중에 최고로 잘나신 모습이었는데, 어찌 못 보겠습니까?”

“혹시 나한테 뭐 전해 달라 한 거 없으셨어?”

채비가 펄쩍 뛰었다.

“아니요, 없어요. 제가 뭘 숨긴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시죠?”

“아니야. 그럴 리가. 객사 대문에 붙었던 벽서 말이야. 그거 서린 도령이 나한테 쓴 편지야. 그게 왜 객사 대문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네. 어서 서린 도령을 찾아가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어.”

채비가 그 말에 짧게 ‘아’라는 소리를 내었다. 산비가 바라보자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냈다.

“그런 걸 물어보면 서린 도령께서 불편해하지 않으실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 편지를 쓴 건 서린 도령이 분명한데 어째서 남의 손으로 전달되었는지를 알아내야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이런 일이 생겼는데도 서린 도령을 계속 만나실 건가요?”

산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이야기구나.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더욱 만나봐야지.”

채비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말을 꺼냈다.

“저, 사실은 어제 서린 도령이 아가씨들 있는 안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대청에 모여들 있기는 했지만, 추운 겨울날인지라 대청 문을 닫아둔 상태였다. 안은 밝고 밖은 어두우니 누가 왔다한들 알 리가 없었다.

“아가씨가 측간 가실 때 신이 없어서 찾으셨잖아요?”

“그랬지.”

채비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났다. 측간에 가려는데 신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었다.

“아가씨 꽃신이 가장 예뻐서 눈에 확 띄잖아요. 그런데 서린 도령께서 그 신을 슬그머니 잡는 걸 쇤네가 봤었습니다. 섣달그믐에 신발을 훔치는 풍속이 있는지라 서린 도령이 아가씨께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었죠.”


꽃신(출처: 강릉시 오죽헌 시립박물관)



“그랬구나. 서린 도령이 그때 나한테 전달할 쪽지를 신발에 넣었는데 그걸 누군가가 꺼내서 읽고는 객사 대문에 붙인 거로구나.”

채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마나! 누가 그런 일을 했을까요?”

“아직은 몰라. 하지만 금방 알아낼 수 있겠네.”

“어떻게요?”

“누구든지 서린 도령이 신발에 쪽지를 넣은 걸 알았던 사람이 범인이야. 그럴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걸.”

“측간에 가려고 나왔다가 우연히 아가씨 신을 신는 바람에 쪽지를 찾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야. 그 쪽지만 보면 연서라는 건 알 수 있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을 거야. 신발을 다 구분하기도 어려우니 누구한테 보낸 건지도 확실치 않고, 쪽지에 서린 도령 이름이 없으니 누가 보낸 건지도 알 수 없지.”

“저기, 하지만 선비님 중에서 범인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저도 봤으니까 선비님 중에도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꽃신은 비슷비슷하고, 치맛자락 안에 있으니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어느 신이 어느 처자의 신인지 알기 어려웠을 거야. 나한테 보낸 거라는 것을 모르면 객사에 붙여놓을 이유가 없지.”

산비가 눈을 꼭 감았다가 반짝 뜨며 말했다.

“어제 문이 닫혀 있어서 언제 서린 도령이 왔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야. 나도 전혀 몰랐으니까. 하지만 서린 도령이 신발에 쪽지를 넣는 걸 본 사람도 있고 그 신발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 벽서의 언문 글씨도 서투른 걸 보면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고.”

채비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그게 누군가요?”

산비가 채비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건 바로 너야, 채비. 대체 왜 그런 거야?”

채비는 놀라서 온몸이 굳어버렸다.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산비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도 서린 도령을 좋아했었구나? 그렇지? 이렇게 하면 내가 무서워서 서린 도령을 안 만날 줄 알았니? 난 널 친구라 생각했는데, 넌 날 연적이라 생각했구나.”

채비가 맨땅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가씨에겐 정말 무엇 하나 속일 수가 없네요. 아가씨, 제발 용서해주세요. 여종에 불과한 쇤네가 어찌 아가씨의 연적이 되겠어요?”

산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날 아침, 이 맹랑한 소녀를 어찌해야 할지 똑똑한 산비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을미년 새해가 밝다”

오희문, 쇄미록, 1595-01-01 ~

1595년 1월 1일, 날이 밝자 일어나서 어머님을 찾아뵙고, 다락 위에 올라가 아버님 신주 앞에 절을 하였다. 아울러 차례를 올렸는데, 겨우 만두를 넣은 떡국, 군고기 한 그릇, 탕 한 그릇에 잔을 올린 게 전부였다. 가난해서 제대로 차례상도 차리지 못하였으니, 탄식한들 무엇하겠는가. 이곳 임천 고을에 와 있은지가 이제 3년인데, 달리 갈 곳이 없고 궁색함은 날로 심해지니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과연 내년 설에도 궁색하게나마 무사히 차례를 올릴 수 있을지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새해를 만났건만 아우와 두 아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니, 슬픈 감회가 밀려들었다. 또 큰 아들 윤해가 선조들의 묘를 찾아뵙기 위해 지난해 말 길을 나섰는데, 오늘 늦지 않게 도착하여 술이라도 한 잔 올리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변변히 노자도 챙기지 못하고, 한겨울에도 얇은 옷 한 벌이 전부였는데, 아들이 떠난 이후 왜 그리 눈은 많이 오는지... 오희문은 눈 밭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큰아들이 보이는 듯하여 심란한 새해 아침을 보내었다.

“환갑 새해를 맞이하다”

최흥원, 역중일기, 1765-01-01~

1765년 1월 1일. 날이 바뀌는 자시부터 바람이 그치고 춥지 않으면서 구름이 없어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길한 날씨였다. 어머니는 여전히 어지럼증을 호소하셨으나, 다행히 일어나 앉아 말씀을 나누실 정도는 되시니 매우 다행이었다. 날이 바뀌는 자시 무렵 어머니께 선성벽온단을 올렸다. 돌림병을 막아주는 약이었는데, 올해도 부디 평온하게 한 해를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늘은 최흥원의 60세 회갑을 맞이하는 해의 설날 아침이었다. 사촌 일초가 와서 밤새 최흥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수세하였다. 회갑을 맞이하는 해의 설날이 되니, 문득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그 감회가 백배나 새로웠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후에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고, 얼마 전에는 아들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천지사방에 의탁할 곳이라고는 없는 궁색하고 외로운 신세였다. 살아오면서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친척들의 질병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육십 해를 보내왔으니, 그간 쌓인 감회가 오늘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였다.

그나마 동생들과 조카들, 그리고 인근에 사는 친지들이 잊지 않고 최흥원의 회갑을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머니를 비롯한 동생과 친지들을 보살피며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었다. 최흥원은 이런 생각으로 설날 하루를 보냈다.

“형제끼리 의지하는 쓸쓸한 객지의 새해”

노상추, 노상추일기,
1786-01-01 ~ 1786-01-06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노상추 곁에 있는 가족이라고는 과거시험을 보러 올라온 동생 노억 뿐이었다. 고단한 관직살이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도성에서 쓸쓸한 새해를 맞는 것은 비단 노상추 형제뿐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병마절도사 조학신(曺學臣)은 청교(淸橋)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영남 출신 무관들을 불러 모아 술과 떡, 안주를 대접하였다. 비록 가족들은 만나지 못하지만 익숙한 말씨의 고향 사람들끼리 새해 첫날을 보내니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술기운에 고향집 생각을 하자, 어른 없이 홀로 차례를 지냈을 큰조카가 떠올라 안쓰럽고 서글퍼졌다. 노상추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과 함께 여관에서 묵으며 이러한 쓸쓸한 심사를 나누었다. 노억은 그러한 형님을 위로하며 설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방문하며 새로운 기분을 내 보자고 제안했다. 노상추도 이에 응하여 며칠 동안 이리저리 많은 친지를 방문하였다. 매일같이 새해를 기념하는 술자리가 이어졌고, 우울했던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며칠만 더 지나면 휴가를 써서 고향에 내려가 그리운 가족들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친지들과 새해인사를 나누다”

금난수, 성재일기,
1596-01-01 ~ 1596-01-05

1596년 1월 1일, 금난수는 풍기 숙모를 찾아가 세배를 드렸다. 금난수의 삼촌 금희(琴憙)가 돌아가시고 나서 숙모가 10년간 혼자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찾아뵈어 적적함을 달래드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후 금난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새해라 그런지 낮부터 새해 인사를 하러 찾아온 사람들로 금난수의 집이 붐볐다. 금응각(琴應角), 구백수(具伯綏), 손행원(孫行源), 류의(柳誼)가 찾아온 것이다. 금난수는 여러 친척들과 세 아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더없이 기뻤다.

1월 4일에는 조금 뒤늦게 금난수의 외조카인 권산기(權山起)와 금난수의 사위인 이광욱(李光郁)이 와서 새해 인사를 하였다. 새해 초이니 올해는 서로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나눈 것이었다.

1월 5일에는 금난수는 이미 일정을 정해놓은 대로 사람들과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역동서원(易東書院) 두 곳의 사당에서 참배하였다. 그 수는 20여 명으로 모두 모여 사당에 참배하였다. 참배를 끝마칠 무렵에서야 이시(李蒔), 이립(李苙), 이강(李茳) 삼형제가 사당에 왔다. 금난수는 가까운 사람들과 새해인사 및 덕담을 나누고 사당에 새해를 맞아 참배하니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해 첫날, 아내의 건강과 행복한 여생을 바라다”

오희문, 쇄미록, 1599-01-01

1599년 1월 1일, 동녘이 틀 무렵 다례를 지냈다. 왜적이 모두 물러가고 맞는 새해였다. 지난 임진년부터 작년까지 꼬박 여덟 해 동안 왜적에게 시달린 생각을 하니, 올해의 첫 날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올해는 왜적들을 피해 다닐 일도 없으니, 식구들이 모두 정착할 만한 곳을 알아보고 집을 옮길 생각이었다.

새해 첫날인데, 집사람이 지난밤부터 병이 있어 새벽까지 신음하고, 정신이 혼미한 것이 전보다 갑절이나 더하니 보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며칠 전에는 점차 차도가 있어서 온 집안이 기뻐했더니, 오늘은 또 이와 같으니 더욱 걱정스러웠다. 이 때문에 간단히 다례만 지내고, 이웃 마을에서 온 사람들을 도로 돌려보내고 술도 대접하지 못하였다.

올해는 기해년이니 오희문의 환갑이 되는 해였다.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 보니, 앞길이 얼마 남지 않아 슬프고 탄식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 거기에 집사람의 병세가 위태로워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어 40년 동안 같이 늙은 내외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다니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오희문은 새해 첫날 앓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동안 아프거나 고생하지 않고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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