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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의 사건일지

요술 보다 도둑맞았네

날이 서서히 더워지고 있었다. 포천현감 오달현은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오기 전에 백성들을 위무하는 행사를 가져봄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고을에 연희패가 들어왔는데 그 중에 요술쟁이도 있다고 산비가 졸랐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딸이 이제 여자 태를 갖추기 시작하니 곧 혼처를 골라야 할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딸이 애틋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일찍 모친을 여읜 탓에 빨리 어른 행세를 하고 있는 딸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요술쟁이의 신기한 요술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 딸바보 아버지 입장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핑계를 붙여 고을 유지들과 백성들도 불러서 요술 공연을 갖기로 한 것이었다.

산비가 신이 난 건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산비를 졸졸 따라다니는 의녀 행덕이도 덩달아 신이 났다.

“산비 아가씨, 요술을 부리면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겠죠? 신선을 볼 날이 오다니 정말 행운이에요.”

산비가 혀를 찼다.

“요술쟁이는 신묘한 재주를 익힌 사람이지, 신선은 아니야.”

“하지만 허공에 새를 나타나게도 하고, 궤짝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는데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글쎄, 난들 어찌 그런 줄이야 알겠느냐? 하지만 그런 재주를 부린다고 신선은 아니야.”

“헤헤, 신선이든 아니든 아가씨 덕에 재미난 구경을 하겠네요.”

“내가 보기엔 아픈 사람을 뚝딱 고치는 네가 더 신선 같다.”

산비의 말에 행덕의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런 말씀이 어딨어요? 저는 아직 재주도 모자란데요.”

“됐고. 환희 펼치는 날에는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있어라. 그래야 맨 앞자리서 같이 보지.”

행덕이 발개진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띄었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더니, 쇤넨 아가씨 덕에 구경 잘 하겠네요. 신선인지 아닌지는 아가씨가 요술을 척 보면 아시겠죠? 어떻게 하는 건지 막 설명해주실 거죠?”

산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두 소녀가 그렇게 기다리던 날이 드디어 왔다. 처음엔 동헌 안에서 행사를 가지려고 했지만 뜻밖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관아 앞의 공터에 행사장을 차렸다.

고을에 행사 좀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였고, 당연히 정서린 도령도 들어와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서린의 눈에는 요술보다 산비 얼굴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앞자리에는 김재근 대감 집 식구들이 자리했다. 김 대감 댁과 사돈을 맺은 하 진사 댁 식구들도 앞자리를 차지했다. 산비도 행덕을 데리고 앞자리에 앉았다.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중 길거리 공연 모습(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앞자리는 자리를 깔고 앉았지만 그 뒤로는 다들 서서 구경해야 했다. 원체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에 엿장수, 떡장수에 잔술을 파는 아낙까지 자리를 했다.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거의 대부분 장죽을 꺼내 담뱃불을 붙였다. 산비는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오 현감에게도 담배를 피지 못하게 신신당부하였고, 딸을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오 현감은 담배를 끊었다.

다행히 이 날 바람이 맞바람으로 불고 있어서 담배 냄새가 앞쪽으로 오질 않았다. 산비는 걱정할 필요 없이 편하게 요술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초립을 쓰고 넓은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미남 요술쟁이는 미리 준비해둔 탁자 위의 고리 여러 개를 손에 쥐었다.

“이 고리들을 잘 보십시오. 이렇게 각각 떨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얏!”

요술쟁이가 소매를 한번 흔들며 고리를 서로 겹쳤다. 바로 다시 떼어내려고 했는데 철커덕 고리가 서로 부딪치며 떨어지지 않았다.

“고리가 들러붙었군요. 허허, 이것들이 봄날이라 춘정이 돋았나. 훠이, 떨어져라.”

요술쟁이가 다시 고리를 살살 당기자 고리가 어찌된 영문인지 그대로 빠져나와 분리되었다. 초립을 쓴 다른 사람이 하나 나와 고리를 요술쟁이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요술쟁이가 고리를 들어 던져온 고리를 척척 받아내는데, 그대로 다 연결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 저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행덕이가 궁금해죽겠다는 투로 물었다. 산비가 작게 속삭였다.

“고리 사이에 뚫린 데가 있는 거야.”

“눈이 뽑아져라 쳐다봐도 뚫린 데는 없는뎁쇼?”

“그게 그렇게 잘 보이면 요술이라 하겠니.”

요술쟁이는 고리를 치우더니 탁자 위에서 두 자 길이의 검을 잡아들었다. 날렵하게 생긴 검날이 햇빛에 무섭게 번쩍였다.

“무시무시하게 이 칼날! 제가 한번 먹어치우겠습니다.”

요술쟁이는 한손을 들어 합장하듯이 하며 진언을 중얼중얼 외웠다. 그러더니 검을 높이 들어 입안에 쑥 집어넣었다.

“으악!”

행덕이가 기겁을 하고 눈을 가렸다. 행덕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구경꾼들 역시 행덕이처럼 눈을 가리고 손가락 틈새로 쳐다보고 있었다.

칼은 조금씩, 조금씩 요술쟁이 입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에는 칼 손잡이만 남고 말았다. 그러자 요술쟁이는 괴로운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급기야 빙글 몸을 돌려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행덕이 부르르 몸을 떨면서 말했다.

“주, 죽은 거예요? 어째요?”

“넌 의녀 아니냐. 사람이 죽었다고 그렇게 벌벌 떨면 어쩌겠다는 거냐?”

“아이고, 그렇구만요. 쇤네가 가서 살펴봐야겠네요.”

행덕이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요술쟁이가 꿈틀 몸을 움직였다. 요술쟁이는 손을 들어 칼 손잡이를 잡고 조금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칼날이 다 나오고 요술쟁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영화 〈조선 마술사〉 중 한 장면(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산비는 칼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 핏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다.

“저건 어찌한 거래요? 아주 간담이 서늘했네요.”

“진짜로 칼날을 삼킨 거야.”

“에에? 그게 된다고요?”

“아무나 하면 안 되지. 저 칼날은 쉽게 구부러지는 재질이야. 번쩍번쩍해도 날이 서 있진 않고. 위장까지 똑바로 잘 집어넣도록 훈련하면 할 수 있지.”

“목구멍에 손가락만 찔러도 토할 것 같은데, 저만한 게 들어가는데 괜찮다니, 엄청나네요.”

요술쟁이는 탁자 위에 있던 궤짝을 밑으로 내렸다.

“이번에는 이 궤짝에 사람을 집어넣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튼튼한 궤짝입니다.”

요술쟁이는 궤짝을 탕탕 쳐보았다. 멀쩡한 궤짝이었다. 그러자 고리를 던지던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어서 덩치가 좀 있어보였지만 산비는 그 사람이 삐쩍 마른 사람이란 걸 금방 알아보았다. 바람이 불어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아주 손목에 차꼬를 채워서 집어넣습니다. 요놈이 재주가 비상해서 혹시 차꼬를 풀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봉인을 딱 하겠습니다.”


조선 시대 죄인의 목에 채우는 나무칼과 목, 발목에 채우는 쇠사슬 형구의 모습이다.
가운데 형구가 차꼬로 보인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요술쟁이는 차꼬에 부적을 붙여서 발목이 아닌 손목에 채운 뒤에 사내를 궤짝에 밀어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아서 억지로 밀어 넣자 궤짝 안에 사람이 가득 차 보였다.

“어허, 빨리 들어가지 못할까!”

요술쟁이는 발로 사내의 등을 탁 찼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궤짝 뚜껑을 닫았다. 궤짝이 들썩들썩했다. 요술쟁이는 궤짝을 툭툭 발로 치더니 흰 천을 꺼내서 덮었다.

“어디 고생 좀 해봐라!”

그러더니 다시 천을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리다가 땅바닥에 놓았다. 요술쟁이가 천을 들어 올리자 큰 주발이 하나 놓여있었다. 주발 안에는 대추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아니, 이 대추가 어디서 나온 거죠?”

그러면서 요술쟁이가 들어서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었다.

“참 맛나는군요. 소인만 먹어선 안 되겠죠?”

요술쟁이는 대추를 한 움큼 쥐어서 관중들에게 흩뿌렸다. 묘하게도 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 앞에 노린 것처럼 날아왔다.

“어머, 정말 재주 묘하네요.”

행덕이 치마 위에 떨어진 대추를 날름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산비는 대추를 들어 잠시 들여다보고는 행덕이에게 건넸다.

“이것도 너 먹으렴.”

요술쟁이는 종이를 찢었다가 감쪽같이 붙이고, 초립 안에서 토끼와 비둘기를 꺼내고, 입안에서 끝없이 천을 뽑아내는 재주를 보였다. 행덕은 그럴 때마다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산비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자, 그럼 어디, 궤짝 안에서 반성했을 녀석 좀 불러보겠습니다.”

요술쟁이는 궤짝 위에 다시 천을 올리고 그 앞에 서서 주문을 외웠다. 천을 치우고 궤짝을 열자 궤짝은 텅 빈 상태였다.

“아니, 이놈이 어디로 갔지?”

산비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진한 담배냄새가 풍겨져왔다.

“자, 다시 궤짝을 닫아보겠습니다. 이놈을 불러와야겠네요.”

요술쟁이는 궤짝을 닫고 다시 천을 덮었다. 요술쟁이가 큰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렇게 해서 궤짝을 열자 회색옷이 아니라 흰옷이 보였다. 동시에 다시 담배 냄새가 풍겨 와서 산비는 또 얼굴을 찌푸렸다.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회색 두루마기가 어찌 된 영문인지 흰색 바지저고리로 바뀌었지만 손목엔 여전히 부적이 붙어있는 차꼬가 채워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사내 얼굴 위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요술쟁이가 넙죽 절을 했다. 공연을 마치고 일어나는데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어, 내 주머니가 없어졌어!”

“내 패물도 없어졌는데?”

“어느 놈이야? 담배쌈지까지 훔쳐갔어!”

“좀도둑이 들었네!”

물건을 도둑맞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엿 목판을 들고 있던 장사꾼도 전대를 털렸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요술쟁이가 난처한 얼굴로 양손을 벌리며 입을 열었다.

“제 놀이에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벌어져서 참 유감스럽습니다.”

요술쟁이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사내에게 말했다.

“빨리 빨리 물건 챙겨라. 어서 가자.”

사내가 탁자 위의 물건을 쓸어 담듯이 보자기에 올리고 매듭을 묶었다. 그때 산비가 벌떡 일어났다.

“잠깐! 그 손 멈추세요.”

산비가 뛰자 행덕이도 덩달아 뛰었다. 요술쟁이가 빙긋이 웃으며 산비 앞을 가로막았다.

“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산비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훔친 물건 내놓거라.”

“물건을 훔치다니요? 소인은 내내 여기에서 요술을 보여드렸는데요. 몸이 둘이 아닌데 어떻게 물건을 훔치겠습니까?”

“물론 네가 훔친 건 아니다. 저자가 훔쳤지.”

산비는 궤짝에서 나온 사람을 가리켰다.

“저 친구는 궤짝 안에 있었죠.”

“없었어. 다들 눈으로 봤지. 없는 걸.”

산비의 말에 요술쟁이가 흠칫했다.

“그, 그건 요술이니까요. 실제로는 궤짝 안에 있었던 거죠. 이 튼튼한 궤짝에서 어떻게 빠져나가겠습니까? 빠져나간다 해도 차꼬를 풀 수도 없죠. 그럼 도둑질을 어떻게 합니까?”

산비가 차꼬를 잡았다.

“이걸 차꼬라고 하나요?”

산비가 들고 흔들자 차꼬는 잠긴 채로 둘로 분리되었다. 그것은 진짜 차꼬가 아니라 요술도구일 뿐이었다.

“이렇게 눈속임하는 장난감에 불과하죠.”

요술쟁이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하하. 아가씨가 장사 밑천을 까발기시네요. 하하.”

요술쟁이는 궤짝을 손바닥으로 탕탕 쳤다.

“하지만 보세요. 이 궤짝에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나. 그런 일 없어요.”

산비가 행덕이에게 손짓을 했다.

“행덕아, 이 궤짝 좀 들어봐라.”

행덕이가 달려와 궤짝을 잡았다. 그 순간 요술쟁이도 궤짝을 잡았다.

“아, 왜 우리 장사 밑천을 자꾸… 아야!”

행덕이가 요술쟁이의 손을 꼬집은 것이다. 요술쟁이가 손을 놓자 행덕이가 잽싸게 궤짝을 들어올렸다. 산비가 물었다.

“어떠냐?”

“이거 좀 무거운데요?”

그냥 나무궤짝만의 무게가 아니었다. 행덕이는 교방과 의원에서 늘상 물건들 치우면서 나무 궤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을 해 와서 그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산비가 요술쟁이를 바라보았다. 요술쟁이가 산비의 눈길을 피했다.

“이 궤짝이 왜 더 무거울까? 이 궤짝은 이렇게 뒤가 열리게 되어있지. 보자기로 덮은 뒤에 뒤쪽을 열고 사람이 빠져나와 탁자 밑으로 해서 빠져나갔지. 회색 두루마기는 벗어버리고 평민인 척하고 요술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 물건을 훔쳤어.”

요술쟁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마, 말씀은 그럴싸하지만 그럼 그 물건이 어딨단 말씀입니까?”

“이 궤짝에 있지.”

산비가 궤짝 뒤쪽의 열린 쪽 칸을 살폈다. 그 칸은 겹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틈새에 물건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김 대감의 담배진이 덕지덕지 눌어붙은 비단 담배쌈지까지.


담배쌈지(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

“담배쌈지는 훔치지 말았어야지. 냄새가 장난이 아닌데, 어찌 모르겠어.”

요술쟁이가 갑자기 흰옷 사내를 냅다 후두려팼다.

“아, 이 자식아! 담배 끊으라고 했지!”

산비가 아버지 오 현감 쪽을 바라보았다. 오 현감은 넋을 놓고 있다가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서 헛기침을 하고는 호령을 내렸다.

“저놈들을 당장 포박해라!”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조선시대 담배의 보급”

조선에 담배가 보급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시기였다. 담배가 처음 전래될 때는 약재로 인식되어 보급되었다. 술을 깨게 한다든지, 소화가 잘 된다는 말과 함게 담배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에서 사람들이 밭에 담배를 많이 심는다고 기록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초보다는 기호품으로 애용되었다. 손님을 대접할 때 담배를 권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담배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여 남녀노소와 양반, 백성을 가리지 않고 소비하였다. 네덜란드인으로 조선에 표류하였던 하멜은 조선인들이 4, 5세 때부터 담배를 핀다고 기록했다. 담배는 점차 상품작물로 변해갔다. 한성(서울)에서는 담배만을 파는 엽초전이라는 시전이 생겼고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담배가 매매되었다. 그러나 담배 보급이 늘어나면서 폐단도 늘었다. 먼저 비옥한 토지에 담배를 많이 심어 다른 작물의 생산량이 떨어졌다. 다음으로는 담배 예절이었다.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긴 담뱃대를 물고 서로 담배를 피우게 되자, 예의를 중시하는 유학자들은 이를 용납하기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담배를 피울 때 지키는 규율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연장자 앞에서는 피우지 말 것이라든지 양반 앞에서 평민은 피우면 안 된다든지, 평민이나 천민의 담뱃대는 양반의 것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었다. 「유가야산록」에는 여행지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담배는 여행의 준비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담배를 피울 때 많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담뱃대를 비롯하여 담배를 넣어 둘 담배 주머니, 재떨이 등이 필요했다. 물론 양반들이 여행을 할 때는 노비들에게 이를 대신 들고 오게 하였을 것이다.

“담배피우며 시강하다가 귀양 간 시관”

노상추, 노상추일기, 1792-02-18

학례강(學禮講) 시관이 귀양을 갔다. 시강을 할 때 생도들 앞에서 몸을 비스듬히 하고 앉아 관을 비뚤게 쓰고 담배까지 피웠으며 잡스러운 농담도 툭툭 던져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은 한심해하며 시관 모두를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또 이런 풍조를 알면서도 감찰해내지 못한 감찰, 사관, 승문원·성균관·교서관의 여러 관원들도 잡아들여 신문하며 혼을 냈다. 당연히 이들 기관의 책임자인 대사성도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성균관의 재임(齋任)과 동재(東齋)·서재(西齋)의 반수(班首) 역시 모두 그 직무를 정지시켰고, 공무를 집행한 관리들도 추고 당했다. 미리 경계하지 못하고 왕의 귀에 들어 갈까봐 쉬쉬하며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던 죄 때문이었다. 이런 한심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노상추는 조보를 읽고 알았다. 마침 생원시가 있는 날이었는데, 아마도 더욱 엄정한 분위기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벌벌 떨면서 시험을 보겠구먼! 하며 노상추는 담뱃대에 불을 붙여 일부러 비뚜름하게 물어 보았다.

“담배와 미숫가루, 꿀과 돈 - 상소 준비 과정에 받은 다양한 부조품”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792년 5월 11일, 부조를 받는 길이 한 번 열린 뒤에는 폐단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었다. 포천 현감 홍약호(洪若浩)가 편지로 문안을 하고 남초(南草: 담배) 2근, 미식(米食: 미싯가루) 2되, 꿀 1항아리를 보내주었다. 1792년 5월 20일, 좌의정이 돈 50냥을 보내오고, 채홍리(蔡弘履)가 남초(南草: 담배) 40근을 보내왔다. 5월 24일 안악(安岳)의 이익운(李益運)이 편지로 문안을 하고 돈 20냥과 향초(香草: 담배) 5근을 또 보내왔다.

“양반들은 산수유람 때 무엇을 준비했을까?”

황여일, 유내영산록, 1587-08-06 ~

1587년 8월 6일, 산수유람 중이던 황여일(黃汝一)은 식후에 숙부[황응청(黃應淸)]와 잠시 낮잠을 잤다. 얼마 되지 않아 이 고을의 학자인 김득경(金得鏡)이 달려와 이르니, 이 곳 태수 조정간(趙廷幹)이 가서 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흰 밥에 푸른나물로 식사를 하였는데, 산에서 먹는 맛이라 더욱 좋았다. 술도 서너 잔 했다. 이윽고 노승(老僧)이 짚신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절의 서쪽 편으로 가면 구름 사이로 돌길이 나 있는데 매우 가파르고 끊어질 듯합니다. 그러나 이 길이 아니면 건너갈 방법이 없습니다.”

곧이어 함께 갈 일행을 선발했다. 이야기를 나눌 승려는 ‘학연(學衍)’이라 하고, 시문(詩文)을 챙기는 이는 ‘덕룡(德龍)’이라 하며, 벼루를 들고 갈 이는 ‘홍원(洪源)’이고, 술시중할 이는 ‘매운(梅雲)’이며, 옷과 양식을 들고 갈 이는 ‘억동(億童)’이었다. 또한 한 승려로 하여금 걸음을 예측해서 날이 저물면 어떤 암자에 이르러 잠잘 수 있는지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함께 출발하여, 쉬엄쉬엄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합격과 낙방,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탁족과 술로 마음을 달래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845년 7월 3일, 낙육재의 여러 벗들이 함께 바람이나 쐬고 오자 하여, 서찬규 일행은 십여 이 술을 가지고 남암(南菴)에 올랐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7월 10일에는 예닐곱 관동들과 함께 신천에서 목욕하고 거북굴에서 바람을 쐬다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왔다. 덕우는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돌아갔다.

1846년 5월 18일, 국오 족숙을 모시고 여러 친족들과 함께 앞산으로 회포를 풀러 갔다. 동네 어귀에 도착해 자리를 펴고 밥을 내오는 사이에, 서찬규와 태곤(자는 노첨)·재곤(자는 자후), 그리고 몇몇 서당 아이들은 탁족할 곳을 찾아 가파른 바위로 등나무 넝쿨을 잡고 올라가 굽이굽이 물길을 찾아갔다. 마침 한 승려가 갈포 적삼에 송납을 쓰고 인사를 하는데 은암의 중이었다. 어디서 오는지 물으니, 약초를 캐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물을 따라 걸어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떠서 마시고, 더우면 손으로 끼얹어 씻었다. 이렇게 몇 리를 가니 예계암에 이르렀다. 술기운이 막 깨니 배고프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는데, 우연히 나무하는 사람을 만나 그의 도시락으로 쾌히 빈 배를 채웠다.

산림에 회포를 붙여 일어났다 누웠다 하다 보니 돌아가는 것을 잊고 있어서, 어느덧 해가 한낮을 지났다. 친구들이 돌아가자 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하루 종일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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