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의녀 행덕이 한번을 들르지 않아서 산비는 조금 섭섭한 중이었다. 날도 딱 좋아 같이 성산에 있는 정자에나 가봤으면 싶었는데 무슨 일이 바쁜지 올 기미가 없었다.
‘쟤가 안 오면 내가 가볼까?’
산비가 그런 마음으로 허 의원네를 향해 가기 시작했는데, 그때 마침 행덕이 헉헉대며 관아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오늘 아주 바쁜 모양이다? 어딜 그리 가느냐?”
산비가 새치름하게 말했지만 행덕은 손사래만 치며 숨이 차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산비가 답답해서 미간에 주름이 잡힐 때가 되어서야 행덕이 말을 꺼냈다.
“아가씨 뫼시러 가는 중이었습니다요.”
“나를? 왜? 하여간 내가 필요하긴 한 모양이구나.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행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코빼기를 어디 비칠 수가 있어야지요. 오늘 효옥 마님이 몸을 풀었지 뭡니까?”
“몸을 풀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 참. 아기씨를 낳았다는 말이죠.”
산비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아, 벌써 그렇게 되었어? 그래, 아들이야, 딸이야?”
효옥이 임신했을 때, 동네 무당인 당골네가 딸이라고 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다.
“아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큰일 났어요.”
“왜? 아기가 없어지기라도 했느냐?”
산비의 말에 행덕이 입을 딱 벌렸다. 턱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뭐, 뭐야? 진짜로?”
산비는 그저 농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말 아기가 없어졌다는 거였다.
“저는 아기씨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허 의원 나리는 저만 야단치고…”
행덕은 그러더니 말을 더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말고 말을 해라. 어쩌다 아기가 없어졌느냐?”
하지만 한번 울음이 터진 행덕은 쉬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우선 가자. 인화당으로 빨리 가자.”
인화당은 효옥이 시집간 뒤에 붙은 당호다. 효옥은 하 진사 댁으로 시집갔지만, 여전히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요즘은 유교의 예법에 따라 신랑 집으로 들어가는 일도 많았지만, 조선 고유의 예법대로 아내 집에서 살다가 본가로 들어가거나 독립하는 일 역시 많았다. 효옥은 마을에서 제일 세도가 있는 김 대감 댁 손녀라 자기 집에 있겠다고 하자 하 진사 댁에서도 아무 말 없이 허락해준 상태였다. 더구나 바로 임신까지 했으니 편하게 지내라고 아무 채근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조선 시대 혼례의 한 장면(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산비가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자 행덕이도 훌쩍거리며 따라 걸었다.
“그러니까, 어찌된 일이냐 하면요.”
행덕이 입을 열었다.
“산통이 있다고 연락을 받은 것은 진시 초(辰時: 오전 7시경)였어요. 아침밥도 미처 뜰 새가 없이 달려갔죠. 큰 양반댁이라 아기를 많이 받아본 하녀가 온파(穩婆)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요.”
“온파가 뭐야?”
행덕이 다시 입을 딱 벌렸다.
“온파가 뭐냐니까?”
“아가씨는 어떨 땐 세상 모르는 게 없는 분 같은데, 이럴 땐 세상 숙맥이십니다요.”
“뭐야?”
행덕이 놀라 자기 입을 손으로 찰싹 때렸다. 언제 엉엉 울었나 싶다.
“아유, 쇤네가 또 이런 입방정을 떨었네요. 저기, 온파는 아기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요.”
아기를 받다니? 아기가 어디서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산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의녀는 왜 불렀던 거냐?”
“쇤네만 불렀겠나요. 허 의원 나리도 같이 불렀죠. 혹시나 난산이 되면 곤란하니까 미리미리 불러들인 겁니다.”
“그래서 무사히 아기를 낳은 거냐?”
“낳았는데?”
“태반이 나오질 않아서 난리가 났습죠.”
조선 시대 출산 모습(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아기가 나왔는데 뭐가 또 나와야 해?”
“그럼요. 아기씨를 붙들어 매고 있는 태반이라는 게 있어서 이것도 몸에서 빠져나와야 산모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답니다. 아기씨가 나오면 금방 나오는 건데, 뜻밖에도 효옥…”
“인화당.”
산비가 행덕에게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고 당호로 부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행덕은 아직도 효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 네, 인화당 마님은 태반이 안 나오지 뭡니까? 아주 시껍했습니다. 온파는 허 의원 나리가 명하는 대로 아랫배를 주무르고, 쇤네는 반하와 백렴을 생강술에 타서 가지고 들어가 인화당 마님한테 먹였어요.”
“반하, 백렴?”
“약초 이름이에요.”
“그건 됐고. 그래서 인화당의 애기는 어찌 되었느냐?”
행덕이 또 옛날이야기 한 자락 하기 전에 산비가 말을 잘랐다.
“아참, 그렇지. 다행히 반하백렴술을 마신 덕분인지, 온파의 안마가 효과가 있었는지 태반이 쑥 나왔어요.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글쎄 아기씨가 없어진 거예요.”
“아무도 아기를 안 보고 있었단 말이냐? 애초에 누가 맡았었느냐?”
“처음엔 온파가 맡고 있었죠. 그런데 태반이 안 나온다고 하니까 옆에 내려놓았겠죠? 제가 들어갔을 땐 강보에 잘 싸여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어요.”
“그럼 누가 씻기고 옷도 입혔단 이야기 아니냐? 그것도 온파가 했느냐?”
“쇤네가 그때는 방에 없어서 잘 모릅니다.”
“방에 온파 말고 누가 또 있었을 것이다. 누가 있었느냐?”
“그야 그 댁 하녀들이 있었… 아, 그러고 보니 유월이라는 하녀가 분명 있었는데 그후 엔 보이질 않았네요.”
산비가 뭔가를 헤아리듯이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서서 입을 열었다.
“대충 짐작이 간다. 행덕이 너는 이 길로 인화당에게 달려가 안심하고 기다리라 말씀드려라. 아기는 내가 꼭 찾아갈 테니.”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혼자서 어떻게 아기씨를 찾으신다고 그러세요? 짚이는 곳이 있으면 쇤네랑 같이 가세요.”
“아니다. 난산을 한 산모가 지금 얼마나 힘들겠느냐? 일단 안심을 시켜드려야지.”
하지만 산비는 행덕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 성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서 가라! 아기는 꼭 찾을 수 있다고 전해.”
행덕이 달음박질로 달려가자 산비도 치마를 당겨 쥐고 뛰기 시작했다. 양반집 처자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숨이 턱에 닿아 들이쉴 수도 없게 되었을 때야 성산 안 깊은 곳에 있는 무당 당골네에 도착했다.
“이, 이, 이리 오너라.”
안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산비가 배에 힘을 주고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너라.”
그러자 안에서 당골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점 안 봅니다. 돌아가세요.”
“점 보러 온 게 아니다. 아기를 돌려받으러 왔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립문 앞에 서 있는 산비를 본 당골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작게 가늘어졌다.
“아기라니,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산비는 당골네의 말에 아랑곳없이 신도 벗지 않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서다니! 일전에 나를 그렇게 골탕 먹이고도 아직도 모자라십니까? 아가씨는 신벌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군요!”
“신령이 있어 벌을 내린다면 천벌을 받을 짓을 한 당신이겠지!”
“아무리 사또 나리 따님이라 해도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됩니다!”
산비는 매의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기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산비는 방을 뛰쳐나왔다. 바로 건넌방의 문을 잡아챘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왔으니 문을 열어라. 지금 열면 네 죄를 감해 줄 것이니라.”
산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위엄있게 이야기했다. 그때서야 문이 스르르 열렸다.
“들어가지 마십시오. 무슨 권리로 이렇게 함부로 하십니까?”
당골네가 달려와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썩 비켜서도록 해라. 저 방에 아기가 있을 것이다. 만일 아기가 없다면 내가 사과하고 소란 피운 것을 배상도 해줄 것이다.”
당골네는 눈으로 산비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쳐다보다가 큰 한숨을 내쉬고 옆으로 비켜섰다. 당골네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큰일을 다 망치고 말았구나.”
“망친 게 아니라 큰일이 날 것을 방비한 것이다.”
방에는 아기 둘이 포대기에 싸여 눕혀져 있었다. 산비도 아기가 둘이 있을 줄은 몰랐다. 두 아이를 싼 포대기 역시 똑같은 비단에 똑같은 무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깜짝 놀란 뒤에 살펴보니 방구석에 여인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조선 시대 애기포대기(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뉘 집에서 이런 짓을 꾸몄느냐?”
대답이 없었다.
“말 안해도 좋다. 대충 짐작은 한다.”
산비의 말에 엎드려있던 여인이 얼굴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얼굴이나 행색이 하녀가 분명했다. 산비는 혀를 찼다.
“그래, 네 주인이 아들만 있으면 첩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냐?”
산비의 말에 여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여염집에서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양반가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그럼 기생집뿐이지. 기생이 아들을 원한다면 그도 뻔한 노릇이지. 양반 가문의 핏줄이라 말하고 아들을 들이밀면 차마 외면치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 아니냐?”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골네가 뛰어들어와 악을 썼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여편네는 막 태어난 아이의 팔자를 봐달라고 왔을 뿐이다. 생사람 잡지 말아!”
산비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한 명은 이 하녀가 데려온 아기겠지. 그럼 다른 아이는 뉘 집 아기냐? 어찌 두 아이가 똑같은 강보에 싸여 있느냐? 바꿔치기 할 작정이 아니면 어찌 이런 모양새가 가능하겠느냐?”
당골네가 악에 받쳐 큰소리를 질렀다.
“그래! 내가 훔쳤다. 훔쳤으니 어쩔 거냐? 아기가 어딜 다치기라도 했냐? 사지가 다 멀쩡하지 않더냐! 내가 아기 축원을 올리려고 데려왔을 뿐인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우리 신령님을 노하게 하면 이 아기가 멀쩡할 것 같으냐? 감히 나한테 이러고 무사하길 바라냐?”
당골네가 씩씩대며 말을 이었다.
“나를 무시한 인화당이 순산을 했겠느냐? 죽을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네가 사또의 위세를 믿고 마음대로 설치지만 그러다 무슨 일을 당할지 알기는 하냐?”
산비가 깔깔 웃었다.
“지금 자백을 하는 거구나? 감히 사대부 집안의 며느리에게 저주의 뱅이를 내렸다 이거로군.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느냐? 너야말로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뱅이는 주술을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 좋다. 마음대로 해라. 아기 데리고 썩 나가라. 그깟 딸래미 데려가라고 해도 안 데려간다.”
딸래미? 산비가 눈을 크게 떴다.
“딸이라니, 무슨 소리냐? 인화당이 낳은 건 아들이다.”
“내가 이미 예언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 인화당이 낳은 건 딸이다. 딸을 데리고 썩 꺼져라. 천벌 내리기 전에.”
산비는 포대기에 싸인 아기 둘을 바라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라 둘 다 빨간 얼굴을 하고 있는 터라 아들인지 딸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강보로 구분 할 방법도 없었다. 당골네가 치밀하게 준비한 일이라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눈앞에서 아기를 훔쳐 가 바꿔치기 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나?
“매월이, 말해보게. 자네가 데려온 아기가 아들인가, 딸인가?”
당골네가 엎드려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몸만 부들부들 떨 뿐,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산비는 포대기를 젖혀 아기의 성별을 확인하고자 손을 뻗었다. 당골네가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안 된다.”
산비가 고함을 쳤다.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구나! 네가 감히 장동 김문의 외손을 납치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순순히 물러나야 그나마 정상을 참작할 것이다.”
그때서야 당골네는 분한 얼굴로 물러났다.
“네가 딸이라고 점을, 아니지, 사기를 쳐놓고 아들이 태어나니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아기를 빼돌린 유월이는 어디 있느냐?”
당골네는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한몫 챙겨주었으니 이젠 못 찾을 겁니다.”
산비는 아기를 받쳐들며 말했다.
“이번 일은 유월이가 한 걸로 말은 해놓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나중에 일의 전말을 들은 행덕이 어리둥절해 하며 산비에게 물었다.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데, 당골네를 그냥 풀어주셨다니 대체 왜 그러셨어요?”
산비가 웃으며 말했다.
“기생이 헛수고를 하지 않았냐. 거금을 들였을 테니 당골네를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
“아하, 기생의 손을 빌려 당골네를 징치하시는 거구만요.”
“그래. 그리고 규중의 일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은 법이다. 뭐라도 빌미가 되면 인화당에게 좋을 것이 없단다.”
행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반 나리라 해도 여인네 삶은 팍팍하기만 하군요.”
“그래, 조선 땅에 사는 여인네 삶은 피곤한 게 많구나.”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