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고비, 그 꼭대기에서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만났다. 내 인생의 해답을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하여 날마다 조금씩 비워나갔다. 나와 내 가족이 머문 공간을 정리하고 비우는 동안, 거짓말처럼 난제를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였다. 내가 돌봐야 했던 물건들이 정리되고 빈 공간이 생기자 오만가지의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나와 내 가족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 앞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걷히고 나니 오롯이 내가 남았다.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음악, 영화, 옷, 술, 음식이 무엇인지 그동안 나조차 몰랐던 나의 취향을 알게 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여정, 그 속에서 찾은 것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미니멀 라이프는 수많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이다. 문득,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삶의 방식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무엇을 지향하며 행복감을 느꼈을까? 그들을 설레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이 거처하는 곳,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에 ‘호(號)’를 지어 본 이름 대신 불렀다. 동방의 주자라 불리는 성리학자 이황(李滉, 1501~1570)의 호 ‘퇴계(退溪)’는 벼슬에서 물러나 물가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살겠다는 유학자의 모습을 담았다. 조선 중기 학자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 1579~1656)은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짓고 그 주위에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연꽃을 심은 후 이들과 벗하며 수양하겠다는 의미로 ‘오우당’ 당호 편액을 걸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황의 절우사(節友社)·정우당(淨友塘), 김근의 오우당에는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이 있다. 이황과 김근이 벗이라 칭하는 이 다섯 수목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강인함과 절개는 이들이 닮고 싶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을 길러내는 그 힘듦 속에서 ‘본래의 나’를 찾고 나를 알아봐 주는 벗을 갈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이번 편액에서는 오우당 편액과 함께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봄꽃, 매화 이야기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선 산책길, 시큼하고 구린내 나는 거름 냄새가 서부리 예끼마을에서 강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퇴비의 고약한 냄새 사이로 은은하고 달큰한 꽃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입구 돌계단 옆에 있는 키 작은 나무, 출퇴근길에 매일 보는 나무인데 꽃이 핀 줄도 몰랐다. 바쁜 척하지 말고 나 좀 보고 쉬어가라는 듯, 매화가 어느새 활짝 피어있었다. 벌이 매화 향기에 취해 윙윙거린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핸드폰 카메라에 매화를 담았다. 하지만 프레임 속 매화는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못해 아쉽다. 그래서 이황이 ‘시냇가에 팔 벌린 매화 두 가지, 그 향기는 숲으로 퍼지고’라는 시를 남겼나 보다.
한국국학진흥원의 매화
벚꽃이 봄꽃의 제왕인 듯 들썩거리기 전, 이른 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그 이름도 다양하다. 화형(花兄), 군자(君子), 빙기옥골(氷肌玉骨), 암향(暗香), 설중매(雪中梅)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또 매화는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 소나무·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대나무·난초·국화·연꽃과 함께 오우(五友)라 부르기도 한다. 김근은 난초 대신 소나무를 심고, 대나무·국화·연꽃과 매화를 뜰에 심어 놓고 벗들에 대해 칠언절구를 지었다.
서호의 풍월이 한가로운 사람에게 있어西湖風月屬閒人 한 그루 맑은 의표 속세를 멀리 벗어났네一樹淸標逈出塵 벼슬살이 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니殷鼎調羹非我事 황혼에 풍겨 오는 매화 향기가 참 좋구나黃昏浮動正堪親
이 시는 김근의 「오우당」 6절 중 제4수 ‘매화’이다. 겨울 끝자락인 음력 2월, 제주도에는 ‘이월 바람에 검은 쇠뿔이 오그라진다’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이월의 바람이 몹시 차가워 검은 암소의 단단한 뿔이 굽을 정도로 매섭다는 뜻이다. 매화는 딱 이런 때 피어난다. 봄꽃들이 피기 전에 홀로 피어 봄을 알리는 매화의 선구자적인 모습, 혹한을 견디고 피어난 강한 생명력, 그리고 세속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고결한 모습은 선비의 곧은 지조와 닮았다. 그래서 『나무백과』의 저자 임경빈은 매화나무를 ‘은둔하는 선비와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라고 했는가 보다.
김근이 시에서 밝혔듯, 그는 관직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이나 부귀하고 권세 있는 집 주변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늘 좌우에 책을 쌓아 놓고 그 가운데 앉아서 책 속의 깊은 뜻을 탐구하는 일생을 보냈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시험을 안 본 것은 아니다. 1623년(광해군 15), 그의 나이 45세 때 우수한 성적으로 소과(小科)에 합격했으나 합격 발표가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그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다음 해 명경과(明經科)에 응시했다. 시험장에서 감독관이 넌지시 시험 내용에 대한 암시를 주자 이를 거부하고 결연히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 빌미가 되어 파방(罷榜) 된 것이다. 부정에 항거하여 과거장을 박차고 나온 그의 뒷모습에서 그윽한 매화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이후 오래도록 과거를 보지 않다가 1642년(인조 20), 환갑을 넘긴 64세의 나이에 친구들의 강권으로 진사시에 응시하여 갑과제삼인(甲科第三人)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하니 관운(官運)과는 처음부터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김근이 시에서 언급한 ‘서호(西湖)’는 중국 항주(杭州)의 서쪽에 있는 호수를 말한다.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리는 중국 송나라의 화정(和靖) 임포(林逋, 967~1028)는 서호 부근 고산에 은거하며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나무 300그루를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여 년 동안 성안에 들어오지 않고 풍류 생활을 했다. 어느 봄날 저녁에 임포는 서호에 거꾸로 비친 매화를 보고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매화시를 읊었다.
온갖 꽃 다 진 뒤 홀로 곱게 피어서衆芳搖落獨喧姸 작은 정원의 풍정을 독차지하였구나占盡風情向小園 성긴 가지는 맑고 얕은 물에 비껴 있고疎影橫斜水淸淺 그윽한 향기가 으스름한 달빛 아래 풍겨 오네暗香浮動月黃昏 (생략)
임포가 매화를 표현한 ‘암향(暗香)’과 ‘황혼(黃昏)’은 이황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매화 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표현이다. 김근의 시에 나오는 ‘황혼’이라는 표현도 임포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매화 시에 자주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이라 상투적일 수 있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황혼에 달이 뜨면 꽃의 흰 색깔과 혼동이 되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풍겨 오는 향기만은 그대로 느낄 수 있기에 암향이라 한 것’이라고 하며, 암향과 황혼의 시적 표현을 설명했다. 나는 어스름한 달빛 아래 은은하게 전해오는 매화 향기 가득한 봄밤의 정취를 아직은 알지 못한다. 만약 내가 시를 쓴다면 이 이상의 표현을 할 수 있을까?
3월 마지막 날, 김근의 생담정사(笙潭精舍)를 찾았다. 김근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옥을 지어 강학하던 곳을 ‘생담(笙潭)’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1795년(정조 19) 6세손 김굉(金㙆)의 주도로 김근의 유덕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현재의 생담정사를 중건하였다.
생담정사(笙潭精舍)
생담정사 편액
생담정사는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다. 귀미리는 의성 고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오우당 김근과 손암(遜巖) 김원(金遠, 1595~1621) 형제가 귀미 마을에 정착한 후 400여 년 동안 이곳은 의성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매화 한 그루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큰 나무들이 생담정사를 지키고 있었다. 생담정사 당호 편액 ‘오우당’은 문이 잠겨 있어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생담정사 위에 올라서 그 옛날 이곳에서 김근이 책을 읽고 강학하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봄 가뭄 끝이라 생담정사 앞 미천에 물이 흐르지 않지만 여름 장마 후 넘실거리는 물소리와 책 읽는 소리가 어우러져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 선비 김근을 만나본다. 고독한 유학자의 길이 매화와 소나무, 대나무, 국화, 연꽃 등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노라 말할 것 같다.
생담정사 오우당(五友堂) 편액(출처: 한국의 편액)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걷기 행사”가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 13박 14일 동안 진행되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도산서원까지 총 270Km를 걷는 행사에 아쉽지만 참가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2019년 첫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걷기 행사의 답사기인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를 읽으며 퇴계 선생의 귀향길을 함께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권진호 선생님은 「나의 진휴(眞休)를 막지 마시오」에서 ‘퇴계는 세속의 명리를 벗어나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 마치 고치기 어려운 깊은 병을 지니고 있는 듯하였다. …(중략)…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이다’라고 하며 가장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선 퇴계의 귀향길을 올해도 함께 하셨다.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출처: 푸른역사)
권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퇴계를 평생토록 따라다닌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절정은 107수의 매화시 중 62제 91수를 선별하여 자필로 엮은 『매화시첩(梅花詩帖)』이 아닐까 싶다. ‘매화’의 어떤 모습이 퇴계를 설레게 했을까?
매화가 주인에게 주다 (생략) 지금은 다행히도 낙향 윤허 받았으니此日幸蒙天許退 하물며 내가 꽃 필 봄 아니던가況來當我發春時 주인이 답하다 (생략) 내 이제 약속을 지켜 여기 돌아왔으니此日幸蒙天許退 좋은 때를 저버렸다고 나를 싫어하진 않겠지?況來當我發春時
김기현·안도현 편저,『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늦봄에 도산에 돌아와서 산매화와 주고받다」는 퇴계와 매화가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는 ‘문답시’이다. 매화가 먼저 퇴계에게 말을 걸었다. 매화는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온 퇴계를 반기며 때마침 자신이 꽃을 피웠노라고 고백한다. 퇴계는 그동안 매화를 보러 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달라고 부탁한다. 매화가 꽃 피던 시절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퇴계는 이제라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앞으로 자신도 매화처럼 맑은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도연명의 동산에는 솔과 국화, 대 세 벗뿐이니松菊陶園與竹三 매화 형은 어찌하여 함께 하지 못했는가梅兄胡奈不同參 나는 지금 매화를 넣어서 풍상계(風霜契)를 맺었노니我今倂作風霜契 굳은 절개, 맑은 향기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오苦節淸芬儘飽諳
「도산잡영(陶山雜詠)」 18수 중 하나인 「절우사(節友社)」이다. 김근에게 ‘오우당’이 있다면, 이황에게는 ‘절우사’가 있다. 이황은 ‘샘 위의 산기슭을 파서 암서헌과 마주 보도록 평평하게 단을 쌓고는, 그 위에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불렀다’고 「도산잡영(陶山雜詠) 병기(幷記)」에서 밝혔다.
퇴계 귀향길 걷기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도산서원을 찾았다. 혹 매화가 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시사단(試士壇)이 보이는 도산서원 입구에서부터 도산매(陶山梅)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도산서원 이곳저곳에 핀 매화의 아기자기한 꽃잎들이 흩날릴 때 마음이 들떠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도산서원과 매화
도산서원의 매화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삼경(三徑)’은 중국 한나라의 장후(蔣詡)가 자기 집 정원에 세 개의 좁은 길을 내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하는 말로, ‘은자(隱者)의 앞마당’을 뜻한다. 이황은 도연명이 시에서 매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북풍한설(北風寒雪)에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와 대나무, 늦가을 서리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하는 국화와 함께 매화 역시 세속의 온갖 풍상(風霜) 속에서 변하지 않는 고매한 멋과 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산서당의 암서헌(巖栖軒)에 앉아 절우사에 핀 매화를 바라보니, 퇴계의 매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느껴졌다.
암서헌에서 바라본 절우사와 매화
매화가 외로울까 안타깝게 여긴 하늘이梅花天惜太孤絕 이 꽃 저 꽃 더불어 흰 꽃망울 열었구나且竝羣芳發素葩 난초꽃이 먼저 피네 마네 따지지 말라莫與國香論早晚 순결한 그 영혼은 시절을 다투지 않나니眞貞元不競年華 (생략)
김기현·안도현 편저,『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게 학자로서의 퇴계는 어렵고 조심스러워 저만치 멀리 있는 존재다. 하지만 시인 퇴계는 나에게 성큼 다가와 축 처진 내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주는 아버지 같다. 봄의 전령사로 매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들 눈에는 여러 봄꽃이 핀 후에 늦게 핀 매화가 ‘매화의 한(恨)’이라고 하며 안타까워한다. 퇴계는 먼저 핀 꽃들이 매화를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늦게 핀 매화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가끔 내 인생의 꽃은 도대체 언제쯤 활짝 피는 것인지, 성공한 사람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아직도 언 땅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퇴계의 이 매화시는 살아갈 힘을 준다. 안도현 시인은 『열흘 가는 꽃 없다고 말하지 말라』에서 ‘나는 삶의 꽃을 피우는데 남들의 것과 비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의 꽃이 크고 화려하다고 창피해하면서 주눅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하며 자신의 꽃을 피우는 데 집중하자고 말한다. 퇴계의 매화 시 곳곳에 ‘늦게 피는 매화’에 대한 배려와 헤아림이 나를 위로해준다.
도산서당과 매화
1570년에 이황이 돌아가시고 9년 후 김근이 태어났다. 매화는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온 때에도 여전히 선비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매화를 사랑한다. 매화는 이황과 김근 그리고 모든 선비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품고 있어 닮고 싶은 존재인 듯하다.
‘비워내면 채워지는 것들’ 나는 이 역설이 좋다. 나에게 있어 비우며 채워진 것은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토요일 밤에 마시는 맥주 한 캔은 주중의 고단함을 달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힘을 준다. 화이트 셔츠는 여배우를 빛나게 하는 반사판처럼 내 얼굴을 환하게 해줘서 좋다. 다양한 사람들이 쓴 여러 빛깔의 삶을 엿볼 수 있어 ‘브런치 스토리’의 글이 좋다. 우울한 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그 감미로움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점심 산책 후 같은 팀 선생님과 ‘매심사(梅心舍)에 앉아 나누는 담소는 직장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다. 저녁 식탁에서 아이들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가 좋다. 그리고 하루의 끝, 내 편과 손을 잡고 걷는 강변길과 바람이 나는 좋다.
이황과 김근의 매화시를 읽으며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혹 찰나의 순간 반짝 다가오는 쾌락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것이 찰나의 쾌락이 아닌,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로 날마다 이어지길 바라본다.
한국국학진흥원 매심사(梅心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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