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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이슈-저자 인터뷰

이문영, 『정생, 꿈 밖은 위험해!』

Q. 안녕하세요, 이문영 작가님.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신간 출간을 기념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정생, 꿈 밖은 위험해!』는 웹진 《담談》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낸 책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매달 짧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소재를 제공해주는 웹진 담담 덕분이죠. 연재했던 소설을 한 편도 빼지 않고 책에 담았습니다. 다만 순서는 조금 조정이 되었는데요. 이야기의 유기적인 연결을 위해서 조정했습니다. 소설 연재를 모아서 책을 낸 것이 참 오랜만이라 더욱 반가운 마음입니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출판: 서해문집, 2023)


Q. 2018년 4월에 발간된 웹진 《담談》 50호, 「정생의 청량산 유산기」가 ‘양주골 선비 정생’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람, 청량산’이라는 《담談》 주제를 ‘소설’로 풀어내어 허당 훈장 ‘정생’을 만든, 2018년의 작가 노트를 엿볼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그때는 1회성 콩트로 작성되었던 글이었습니다. 저는 역사소설을 여러 편 썼는데 대체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이때 처음 써본 것입니다. 청량산과 유산기에 대한 정보는 웹진 《담談》의 담당자 분께서 친절히 알려주셨기 때문에 스토리만 만들면 되었죠. 청량산에는 많은 전설이 서려 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한꺼번에 보여줄만한 좋은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청량산을 오르다가 그 전설 모두를 만나볼 수 있으면 재밌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대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선 판타지적인 장치도 필요했죠. 이 때문에 ‘꿈’을 동원해서 판타지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기로 했었습니다.


Q. 작가의 말, “정생은 양주골의 서당 훈장으로, 과거에 낙방하고 집 근처 학동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동네 아저씨입니다. 속물 같기도 하고, 허당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좀 괜찮은 사람이기도 합니다.”라고 ‘정생’을 소개했는데요, 양반이나 고매한 선비가 아닌 다소 친근하고 허당스러운 모습의 ‘서당 훈장’ 정생을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2021년 7월 웹진 《담談》 89호에 다시 꽁트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이때 정생이라는 주인공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그만큼 「정생의 청량산 유산기」에 나온 정생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이 아닌 지방, 역사의 주된 주인공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몰락한 양반 가문의 보통 선비인 정생이 만들어진 이유였죠. 조선 왕조 내내 물려받은 양반으로서의 허세도 있고 조선 후기라는 조선 문화의 절정을 지나 조금씩 모든 게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의 조선 살아가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특수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특수한 장소인 것과 마찬가지죠. 한양만이 조선의 모든 문화와 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에 대해서 알아보기에는 지방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만든 가장 직접적인 뿌리입니다. 그 뿌리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Q. 소설에서 ‘꿈’은 우리에게 친근하지만 다소 진부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꿈’이라는 공간적·시간적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생, 꿈 밖은 위험해!』에서 정생이 모든 회차에서 꿈을 꾸지는 않습니다. 뭔가 엉뚱한 착각을 하는 경우도 여러 편이 있죠. ‘꿈’을 꾸는 경우는 ‘꿈’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합니다. 「청량산의 신선들」 편에서는 각기 시대를 달리하는 인물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서, 「염라대왕의 호통」 편에서는 염라대왕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 「다산과의 논쟁」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정약용을 만나기 위한 장치로 사용을 했죠. ‘꿈’에서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물이라는 특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죠. 만날 수 없는 격차를 뛰어넘어서 역사의 현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가락지로 끓인 국」 편처럼 금관가야 이야기를 할 수도 있죠.


Q. 고종일기(考終日記) 「좀비와 검은 손」 에피소드는 죽은 오진사가 되살아나 아들·딸을 물어뜯으려고 덤벼드는 장면이 실감 나게 묘사되어있는데요, 괴물로 변한 오진사를 “죽어서 음기로 된 도적이라 해서 조음비(弔陰匪), 좀 같은 도적이라고 좀비.”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 깊고, 재미있었습니다. ‘조음비(弔陰匪)’는 작가님의 조어(造語)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새롭게 전달되길 바라며 고심한 단어가 또 있을까요? 덧붙여 이 에피소드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좀비물은 장르소설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에서도 〈부산행〉,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졌죠. 이런 대중적인 인식을 이용해서 조선 시대에 좀비가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황을 만들어본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용재총화』라는 조선 전기에 쓰인 수필집에 나오는 고려 정승 한종유의 일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입니다. 한종유가 어느 날 양손에 검은 칠을 하고 남의 집 빈소에 가서는 미망인이 곡을 하며 “임이여, 임이여, 어디로 가셨나요?”라고 하자 장막 뒤에서 손을 쑥 내밀며 “나 여기 있소”라고 말해서 미망인을 기절초풍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미망인이 놀라 자빠지자 제상에 차려진 음식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고 하죠. 이외에도 『정생, 꿈 밖은 위험해!』에는 조선 시대의 풍속을 전하는 많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머슴 설날’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들 있습니다. 조선의 여러 풍속을 전하는 역할도 이 소설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언문일기(諺文日記) 「궁녀의 비밀편지」 에피소드에 나오는 궁녀의 편지는 마치 예언서나 암호문 같은데요, 이 글을 위해 작가님이 창작해 내신 것인지, 실제 궁녀들이 주고받은 문서인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궁에서 사용한 암호문입니다. ‘당언문(唐諺文)’이라고 부르는 글자입니다. ‘당’은 당나라를 뜻하는데 중국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즉 당나라 글자인 한문과 한글을 뜻하는 언문이 합해진 글자죠. ㄱ부터 ㅎ까지를 숫자 1에서 14까지로 놓고 한자로 쓰는 형식이죠. 사실 암호문으로는 초보적인 것입니다만 처음 보는 사람은 당황할 만한 글자죠. 궁에서 사용한 것이라 써먹기가 쉽지 않았는데, 양주에 조선 시대 능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Q. 어사일기(御史日記) 「중화척의 비밀」 에피소드는 ‘중화척(中和尺)’을 ‘유척(鍮尺)’인 듯 꺼내 암행어사인 척하는 정생 이야기입니다. ‘공직의 덕목’이라고 하는 다소 무거운 《담談》의 주제를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편안하게 술술 읽혀 마치 하룻밤에 써 내려간 이야기 같은데요. 작가님도 글이 막히는 순간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작가님만의 극복 방법이 궁금합니다. 덧붙여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심했던 《담談》 주제가 있다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웹진 《담談》은 매호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어있어서 참 편안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소재는 주어져 있기 때문에 정생이 그 소재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잡아내면 되기 때문에 보통은 《담談》의 주제를 전달받는 순간에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요즘 《담談》에 쓰고 있는 『비야의 사건일지』는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사건 구성에 좀 더 시간이 걸리지만 『정생, 꿈 밖은 위험해!』는 정생을 잠재우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쉬웠습니다.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때는 주제와 관련되는 논문과 책을 찾아봅니다. 학자들이 연구를 살펴보면 뜻밖의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렸던 작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염라대왕의 호통」은 주제가 ‘선비의 공부법’이었습니다. 원고 의뢰는 8월 염천(炎天)에 받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서당 학동과 계곡에 놀러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 계곡에서 어떤 사고가 생기는 것은 어떨까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책을 꺼내 말리는 포쇄를 겹쳐 넣었죠. 포쇄는 《담談》에서 보내준 참고 자료 중에 이야기가 나와서 참고하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공부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책을 보는 이야기를 넣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책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다가 세책가에 대한 논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책’, 즉 책을 빌리는 것을 가지고 서당의 공부와 연결할 것이 없을까 찾아보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관련 논문은 많이 봤는데 건진 게 없는 당황스런 상황이었죠.

그런데 《담談》의 참고 자료 중에 ‘백곡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꾸준함의 중요성을 배우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 관련도 없지만, 백곡이라는 이름에서 백곡 김득신을 떠올렸습니다. 김득신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더구나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는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면 정생 이야기에 등장하기 딱이죠. 서당 학동들에게 책을 지고 가게 해서 포쇄도 하고 천렵도 하다가 잠이 들어서 염라대왕 김치를 만나게 되는 스토리로 술술 풀리게 됩니다. 이때 공부한 세책가 이야기는 정생의 야행일기- 「흐린 날의 달 구경」에서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Q. ‘하루하루 쌓아 올린 기록들이 역사가 된’ 정생의 마지막 이야기, 「정생, ‘몽유록’을 만나다」를 읽고 ‘스토리테마파크’ 속 일기와 정생의 일기를 기가 막히게 엮은 작가님의 아이디어에 감탄했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에서 제공한 일기 자료 중 ‘정생일기’에 참고한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모든 편에서 스토리테마파크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는 처음 만들어질 때 자문위원으로 참여를 했는데, 작가로서 옛날 한문으로 만들어진 자료를 이용할 때 생기는 어려운 점을 말씀드렸었고, 제 의견도 충실히 반영된 형태로 만들어져서 이용하기가 무척 편합니다. 어려운 단어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고, 현대문으로 풀어쓴 번역과 원문을 직역한 번역 두 가지가 모두 제시되어 이해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죠. 또한 주제별로 잘 분류가 되어 있어서 다양한 측면으로 검토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점도 스토리테마파크의 큰 장점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를 하나만 해보겠습니다. 정생의 연희일기- 「천하제일 주정꾼」은 주제가 ‘조선 시대 BTS’였습니다. 따라서 연희패, 즉 광대들이 등장하는 것은 주제를 보는 순간 확정이 되었죠. 하지만 BTS는 한류의 상징. 즉 해외에서 각광을 받은 아티스트인데 조선 시대에 해외에서 공연을 한 경우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했는데, 스토리테마파크에서 통신사와 마상재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었죠. 통신사들이 갈 때 마상재(말을 타며 하는 곡예)를 하는 병사들이 같이 갔는데, 마상재에서 서커스단의 우리말인 곡마단이라는 말도 나왔으니 딱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생과는 시대가 맞지 않았습니다. 정생의 배경이 되는 순조 때 훨씬 이전이었던 것이죠. 연재물이니만큼 갑자기 정생이 없는 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죠. 둘을 엮어낼 방법을 찾다가 허풍을 떠는 선달을 한 명 등장시키기로 생각했습니다. 정생은 선비라 이런 일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꿈도 박 선달이 꾸게 되었죠.


Q. 스테디셀러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는 올해로 26쇄, 북클럽용으로 찍은 것까지 합치면 총 34쇄를 펴냈습니다. 아이들은 ‘꼬마 마녀’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색과 빛의 원리를 이해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교훈도 얻게 됩니다. 이 책이 유아·초등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또 작가님께 ‘마술 봉’이 있다면 ‘작가’로서 어떤 것을 얻고 싶으신가요?


『색깔을 훔치는 마녀』는 이야기의 발상을 어린이집에 다니던 우리집 딸과 조카로부터 얻었습니다. 아이들 둘이 물감을 다 섞으면 검정색이 된다고 하면서 까르르 웃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떠올렸죠. 그렇게 아이들의 시선에서 가져온 이야기여서 그 수명이 긴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어린이 책으로는 처음 쓴 것이었는데, 비룡소 편집부에서 어린이 책을 쓰는 요령에 대해서 많은 피드백을 주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린이 책을 쓰는 방법도 많이 알게 되었죠.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책이 미술 교육에 유용하기 때문에 미술 학원 등에서 자주 교재로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색의 삼원색과 빛의 삼원색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색깔을 훔치는 마녀』의 마술 봉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뭔가를 빼앗을 수 있다면 악플을 다는 능력을 빼앗아서 다시는 악플을 쓸 수 없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악플은 다른 사람의 분노를 끌어내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 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을 못 살게 만들어서 누리는 행복이란 정말 끔찍한 것인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술 봉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색깔을 훔치는 마녀』 (출판: 비룡소, 2004)


Q. ‘상처와 슬픔을 다독이는 소설 창작 안내서’ 『짧은 소설 쓰는 법』에 “가슴에 어떤 응어리를 가진 사람이 작가가 됩니다.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속에 맺혀 있는 것이죠. 그것을 훌륭하게 풀어낼 때 소설이 됩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무엇인지, 아직도 못다 한 ‘꼭 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응어리’는 작가마다 다 다른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고 무거운 어떤 응어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밖으로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사실 응어리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속의 응어리가 글로 바뀌는 과정은 수없이 겪었는데, 그 이야긴 다음 질문에서 답할 수 있겠네요.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는 별개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쓰고 싶은 것은 삼국 통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많이 부족해서 아직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612년 살수대첩에서 시작해서 698년 발해 건국까지 86년간 한 집안이 삼대에 걸쳐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2009년에 냈던 『취리산』이라는 소설은 백제의 부흥 운동을 다룬 소설인데요, 이 소설은 사실은 바로 이 삼국 통일 소설의 일부입니다. 한 권짜리로 만들다가 조금 무리한 결말을 끌어낸 점이 아쉬워서 절판시켰는데, 제대로 수정해서 꼭 다시 내고자 합니다. 이와 별개로 요즘은 『비야의 사건일지』의 산비가 활약하는 장편 추리소설을 쓰고 싶네요.


『짧은 소설 쓰는 법』 (출판: 서해문집, 2021)


Q. ‘어렸을 때 몹시 마르고 약한 아이’였던 작가님은 “아이들하고 싸워 얻어터진 후, 그런 날에는 돌아와 ’복수노트‘를 꺼내들었다.”고 『짧은 소설 쓰는 법』에서 밝혔는데요, 작가님의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소통하는 현재의 ‘복수노트’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단순히 그날의 일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상처는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쾌한 복수를 상상하면 좀더 나아지죠.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면 『아Q정전』의 아Q와 다를 게 없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Q는 자신이 왜 맞았는지, 자신을 때린 인간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맞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건을 들여다보고 분석해야 합니다. 저는 추리소설을 좋아했는데, 완전범죄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합리적인 규칙 아래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렸을 때 복수노트에 그런 모든 것이 담겨있진 않았습니다.

“OOO이 오늘 나를 때렸다. 축구할 때 내가 공을 놓쳤고 그 때문에 한 골을 먹었다고 그런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닌데 단지 내가 빨리 뛰지 못한다고 맞았다. 억울하다. 나중에 꼭 복수할 테다.”

이런 식이었죠. 때린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이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이유죠. 누구도 선천적으로 가진 한계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당장 그런 해결 방법을 쓰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가능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상황을 글로 쓰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순히 나중에 복수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살짝 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쓰기 훈련을 계속 하다보면 이런 사건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도 있게 됩니다.


Q. 작가님이 출간하신 ‘31권’의 동화, 소설, 작법서, 역사책 중, 작가님의 마음속 베스트셀러 3권을 추천하신다면?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쓰는 데 고생한 작품 3개를 꼽는 걸로 대신하죠.

첫 번째로 『유사역사학 비판』(역사비평사)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20여 년 싸워온 유사역사학 문제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과 대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이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사역사학의 해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유사역사학 비판』 (출판: 역사비평사, 2018)


두 번째는 『오리지널 맨』(블랙홀)은 SF 중단편집입니다. 이 책의 단편 중 「하이퍼트라디튬 광산에서 생긴 일」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상태에서 완성을 시키지 못하고 참 오랫동안 고치고 고쳤던 작품입니다. 사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고치고 고치는 소설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생, 꿈 밖은 위험해!』는 참 쉽고 빠르게 쓸 수 있어서 행복했었습니다.


『오리지널 맨』 (출판: 블랙홀, 2019)


마지막으로는 『잠깐 동안 봄이려니』(혜화동)를 들 수 있겠네요.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 속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그저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를 생각하기 쉽겠습니다만, 전근대의 사랑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남겨진 이야기가 지극히 남자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서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았죠. 특히 이미 많은 작가들이 남자의 관점에서 어이없는 성착취를 아름다운 사랑으로 만든 것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에 대한 이야기에서 낮에는 전투를 밤에는 밥을 해야 했다고 하자 독립운동에 페미니즘 묻히지 말라는 항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양녕대군과 어리 이야기는 잘못된 이야기의 총체적 모습 같은 것이죠. 양녕대군은 어리를 성노리개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작가들이 양녕이 어리를 진정으로 사랑했는데 태종이 허락하지 않아서 양녕이 삐뚤어진 것으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도미 부인과 개로왕의 관계도 개로왕이 진심으로 도미 부인을 사랑해서 벌어진 일로 묘사하곤 하는데, 사료를 보면 결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 한편 한편을 담고 있습니다. 쓰는 동안 무척 마음이 힘들었던 책입니다.


『잠깐 동안 봄이려니』 (출판: 혜화동, 2021)



Q. 작가님의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역사 속으로 숑숑』, 『유사 역사학 비판』 등은 모두 역사 이야기입니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또한 소설로 전하는 역사 이야기이고요. ‘역사’는 작가님의 ‘뮤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역사책 집필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어렸을 때 위인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계 위인전도 재미있었고 한국 위인전도 재미있었죠. 그런데 한국 위인전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계백 편을 읽으면 김유신이 아주 나쁜 놈으로 나오는데, 김유신 편을 읽으면 김유신이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정몽주 편을 읽으면 이성계가 나쁜 놈으로 나오는데, 이성계 편을 읽으면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대체 어떤 게 진실일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해서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학과를 나왔는데요. 소설을 쓰려면 사학과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역사에서 소재를 찾고 싶었거든요. 역사책을 쓰는 건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환단고기』라는 희대의 위서를 파헤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한번 발을 들이자 영영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소설을 쓸 시간을 엄청나게 빼앗기고 말았죠.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웹진 《담談》은 제게 소설을 쓸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주는 좋은 매체입니다. 역사책이나 소설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역사책은 소설과는 달리 고증이 아주 중요하죠. 소설은 잘 모르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고, 과감한 비약을 할 수도 있지만 역사책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한 문장을 만드는데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여러 논문과 사료를 뒤지며 검증 작업을 하죠. 진도를 빨리 나가지 못할 때는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출판: 페이퍼로드, 2021)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출판: 위즈덤하우스, 2022)

『역사 속으로 숑숑』 (출판: 토토북, 2008)



Q. 8월에 출간된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에 대한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역사산책)는 『고교 독서평설』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열두 편의 글을 베이스로 해서 그동안 여러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서 낸 책입니다. 모았다고는 해도 거의 전부 새로 써야 했습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는 많이들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것이 목적인 역사책이죠. 쉽고 재미있게 썼지만 사실 마냥 가벼운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예로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을 한번 볼까요? 주초위왕은 조광조를 모함하기 위해서 간신들이 잎에 꿀을 발라 놓고 벌레가 꿀을 먹으면서 잎사귀에 주초위왕, 즉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글이 새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벌레는 꿀을 먹지 않습니다. 또한 ‘주초위왕(走肖爲王)’ 같은 복잡한 글자 모양을 잎사귀에 만들어낸다는 말도 안 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라고 이런 이야기를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는 간신들이 한 짓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는 식의 순환논증일 뿐입니다. 벌어지지도 않았던 이 이야기를 빼고 냉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면 대체 왕이 왜 이런 간신들의 모함에 쉽게 넘어갔을까 하는 점을 의심해야 합니다. 결국 사건의 중심에는 왕이 있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하죠. 전근대 시대에는 왕에게 잘못이 없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왕을 빼내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던 거죠. 우리는 너무 쉽게 재미가 있다는 이유로 잘못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재미를 빼앗아버리는 재밌는 책이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입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출판: 역사산책, 2023)


Q. 따로 보면 단편, 함께 보면 장편인 매력적인 연작소설, 『정생, 꿈 밖은 위험해!』를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청소년 독자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정생, 꿈 밖은 위험해!』는 주인공이 중년 남성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같은 또래의 이야기가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을 가지고 쓰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야기 자체가 웹진 《담談》의 주제를 전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소설의 정의는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당한 소설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착각 중의 하나가 청소년 소설은 청소년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개 성장소설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청소년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만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읽는 이른바 ‘세계 명작’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책은 청소년 때 많이 읽는 책이지만 청소년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청소년 소설을 한국의 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장소설로만 한정한다면 청소년 소설은 아주 협소한 틀 안에 갇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다양한 세계를 접하고 다양한 문화를 봐야 합니다. 『정생, 꿈 밖은 위험해!』는 쉽고 재밌게 쓰인 소설로 청소년들에게 조선이라는 세계를 소개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데요,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요새는 『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가제)를 쓰고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의 다음 편으로 통일신라와 발해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책입니다. 또 『비야의 사건일지』(가제)도 쓰는 중입니다. 기존에 《담談》에 연재한 꽁트를 단편 소설 분량으로 늘려서 본격적인 추리소설로 재단장하고 있습니다. 포천 현감의 딸 산비가 고을의 여러 사건을 천재적인 머리로 해결하는 소설입니다. 또한 《담談》에서 허락해주신다면 『비야의 사건일지』 다음으로 판타지 역사 소설을 연재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가상의 조선 어느 마을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괴한 사건을 다룹니다. 마을 소녀 두 친구가 주인공인데, 한 명은 동네 세책가의 딸이고, 한 명은 보부상 집 딸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우리나라 전래의 여러 괴물들과 신비한 존재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런 존재들이 이 두 소녀에게는 종종 나타나고 소녀 둘은 이 신비한 존재와 함께 많은 모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선 시대의 신앙과 믿음,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담談》에 쓰지 못해도 언젠가는 써보리라 마음 먹고 있습니다.


이문영 작가님




“어느 땅에나 도박의 폐단이 존재하다”

미상, 계산기정,
1803-12-12 ~ 1803-12-13

1803년 12월 12일, 대릉하보(大凌河堡) 30리를 가서 말에 풀을 먹이고 쌍양점(雙陽店) 20리를 가서 묵었다.

대릉하(大陵河)는 퍽 넓고 크다. 바다에서 80리 떨어져 있고 삼면이 다 큰 들판이다. 곧 명말(明末)의 전쟁터이다.

명 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군중을 거느리고 적군과 항거하는데, 하루는 큰바람이 급작스럽게 일어나 나는 모래가 하늘에 가득해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적병이 진지 앞에 닥쳐와 채 대오를 정비하기도 전에 단숨에 붕괴되었다. 그래서 유정은 마침내 그 일로 죽었고 그의 휘하 수십 만의 무리들이 뒤이어 죽었는데, 언제나 구름 끼고 흐린 때가 되면 답답하고 억울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대릉하보의 마을은 대릉하에서 5리가 떨어진 곳으로, 민가와 점포의 번성함이 신민참(新民站)과 맞먹을 정도다. 이곳에는 식품으로 어차과(魚鹺苽)가 있어 별미로 친다.

대릉하보(大凌河堡)에서 앞으로 10여 리를 가면 길 왼쪽 평원에 사동비(四同碑)가 있다. 명 나라의 도독 첨사(都督僉事) 왕평(王平)과 왕종성(王宗盛)의 묘비이다. 만력(萬曆) 연간에 왕씨의 부자 형제가 충절을 세워 마침내 비석을 건립하여 일문(一門)의 충렬을 포창하였는데, 무덤 네 모퉁이에 각각 비석 하나씩을 세웠기 때문에 사동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뒤쪽의 두 비석은 뽑아가 버리고 단지 귀부(龜趺)만 남아 있는데, 앞쪽의 두 비석에는 각각 명도독 첨사 왕공휘모지묘(明都督僉事王公諱某之墓)라고 씌어져 있다.

비석에는 자획을 긁어 버린 흔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틀림없이 본래 공적을 기술한 글이 있었으나, 그 어구가 당시의 기휘에 저촉되었기 때문에 혹 뽑아 긁어 버린 것이리라.

서북쪽으로 금주위(錦州衛)까지 20리 사이에는 지나온 여관이나 관청에 ‘금지도박(禁止賭博)’ 네 글자가 많이 씌어져 있다. 도박의 폐단이 우리나라와 똑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송산보(松山堡)는 소릉하(小凌河) 서쪽 15리 지점에 있다. 옛 성터가 있는데 적루(敵樓)를 두었던 곳이다. 《심양일기(瀋陽日記)》, ‘신사년(1641, 인조 19) 중추 보름에 세자(世子)와 대군(大君)이 심양에서 출발하여 무릇 6일 만에 가로놓여진 한 언덕에 이르러 금주성(錦州城)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호행인(護行人)이 말하기를 ‘한족(漢族)의 장수 조대수(祖大壽)가 이 성을 굳게 지켜 성 밖에 화포(火砲)를 많이 묻었으며, 유림(柳琳)도 그 동쪽 모퉁이에 있었으나, 청나라 사람들이 몽고병과 함께 전진(戰陣)을 치고 불을 놓았으며 성안에서도 그것에 맞서 포를 쏘아 포탄이 여러 차례 세자막에 떨어졌는데, 포탄이 거위알 크기만 하므로 흙담을 쌓아 가리우다가 후에는 또 송산(松山) 서쪽 10리 가량에다 막차(幕次)를 옮겼다.’고 하였다.

산마루부터 평지까지 다 참호를 판 것이 토성(土城)의 형상 같았는데 청나라 사람들이 포위 진지를 쌓았던 자리다. 조대락(祖大樂)이 총병(摠兵)으로 성을 지켜 2년 동안 포위되었다가, 임오년(1642, 인조 20) 2월, 총병 왕정신(王廷臣)의 내응으로 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성안의 사람들은 다 도륙되었는데 오직 친절한 장관(將官) 13인만이 죽지 않았다. 조대락과 군문(軍門) 홍승주(洪承疇)는 다 잡혔는데 조대락은 곧 항복하였고 홍승주는 처음에는 굽히지 않다가 심양에 이르러서 역시 항복했다고 한다. 보루 위에는 봉화대가 있고 연기와 불을 피우던 곳이 아직도 뚜렷하게 보인다.

관마산(官馬山) 아래에 큰 무덤 둘이 있는데, 이것은 경관(京觀)이다. 옛날의 싸움터였는데 지금은 목장이 되었다. 산 뒤에는 본래 몽고 부락이 있었는데, 몽고 족속들은 거처하는 가옥이 없고 좋은 물과 풀이 있는 데로 가서 머물러 살곤 한다. 명대 말기에 한번은 이들이 비바람같이 급작스레 닥쳐와 남의 부녀자를 약탈해 가 버려서 주민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여 다른 데로 이전해 버렸다.

행산보(杏山堡)는 역시 명대 말기에 백전을 거듭한 싸움터다. 관군(官軍)이 이곳에서 크게 패전하여 마을 집들이 아직도 쓸쓸하고 들판의 기색은 황량하다. 그래서 자연 보는 것마다 처참한 기분을 억누를 수 없다.

이곳에서부터 남쪽에는 발해(渤海)가 있는데, 넘쳐흐를 듯하게 높다. 바다 남쪽이 곧 산동(山東)의 여러 읍들로 옛날의 제(齊) 나라와 노(魯) 나라의 땅이다. 동쪽은 우리나라 황해도 연안과 서로 통하니 숭정(崇禎) 이후에 명 나라로 들어가던 길이다. 고교보(高橋堡)의 마을도 역시 번화하여 송산보(松山堡)와 서로 맞설 정도다. 병신년(1776)에 사신 일행이 왕씨(王氏) 성을 가진 점사에 투숙했는데, 밤중에 뜻밖에 은 1000냥을 잃어버려 형부(刑部)에다 일러 왕씨 일가를 체포 심문했다.

왕씨의 처는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사실 은을 훔치지는 않았고, 다만 처녀[室女] 때에 한 사나이와 간통했으니, 죄를 감히 모면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자백하였다. 건륭 황제(乾隆皇帝)가 그 말을 듣고 그녀가 숨김이 없는 것을 가상하게 여겨 왕씨의 식구를 전부 풀어 주고 그 처에게 옷 한 벌을 내리고 역(驛)의 수레에 태워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그 일이 지금까지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마을에는 관제묘(關帝廟)가 있는데, 꽤 현저하게 영이(靈異)하여 밤중의 음산한 기가 내릴 때에는 번번이 병마의 치닫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수투전으로 악명이 자자한 자, 감옥에 갇히다”

투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김령, 계암일록,
1607-06-05 (윤) ~ 1607-06-10 (윤)

1607년 윤6월 5일, 권경흥(權景興)의 사건을 듣고 섬뜩했다.

윤 6월 10일, 몹시 더웠다. 심부름꾼이 영천에서 돌아왔다. 그가 전해준 전 형의 편지를 보았다. 편지에 권경흥이 팔목(수투전)으로 악명이 자자하여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살인으로 이어진 동전 던지기 놀이”

증수무원록(增修無冤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노상추, 노상추일기,
1794-02-26 ~ 1794-03-12

산창(山倉), 대관창(大館倉), 남창(南倉)을 돌며 환곡을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파발꾼이 헐레벌떡 달려와 중군(中軍)의 고목(告目)을 노상추에게 바쳤다. 고목에는 “어제 본창(本倉)에서 환곡을 나눠줄 때 북면(北面) 송정리(松亭里)의 아동 김세황(金世况)과 읍내의 향교 남자종 장삼득(張三得)의 아들 장천항(張天恒)이 함께 동전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서로 싸웠다고 합니다. 그때 장천항이 기왓장 돌로 김세황을 때렸습니다. 김세황은 한나절이 지난 신시(오후 3~5시)에 죽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경악한 노상추는 바로 검안소로 나아갔다. 김세황의 시신을 직접 조사하니, 얼굴 전체에 특별한 상처는 없으나 머리 살갗과 귓바퀴 근처 뺨에 오목하게 함몰된 부분이 있었다. 상처의 길이는 손가락이 두 개 들어갈 정도였고, 넓이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였다. 노상추는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冤錄)』을 뒤져 비슷한 상처의 모양을 찾아보았다. 책에는 구타를 당해서 즉시 죽었을 때 이런 상처 구멍이 난다고 적혀 있었다.

노상추가 검시를 끝내고 관아로 돌아오자 죽은 김세황의 부모가 공초를 올렸다. 기타 여러 사람에게도 이와 관련한 공초를 받았는데, 김세황을 때려서 죽게 한 범인은 장천항이라고 증언한 것이 모두 일치했다. 노상추는 이를 참고하여 옥안(獄案)을 작성하고 파발로 이웃 고을인 창성부(昌城府)로 보내 창성부사의 복검(覆檢)을 요청했다.

다음날 오후에 창성부사가 삭주부로 와서 복검을 하였다. 전례대로 두 부사는 만나지 않고 말만 전하였다. 그런데 하인을 32명이나 거느리고 온 창성부사가 거만하게 구는 꼴이 같잖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옥사는 함께 처리해야 하긴 했으니, 싫어도 싫은 티를 다 낼 수는 없었다. 그저 요즘 새기고 있는, 화내면 더 곤란해진다는 뜻인 ‘분사난(憤思難)’이라는 글자만을 떠올리며 참아보았다.

노상추는 복검 결과까지 종합하여 옥안을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하였다. 보름 만에 돌아온 처분 내용은, “이 옥사만큼 잔인한 것이 없지만 처형할 나이에 차지 않았으니 1등을 감해 차율(次律)을 적용해서 장(杖) 1백으로 죄를 결정하여 희천군(熙川郡)에서 3천 리 떨어진 곳에 정배하라.”라는 것이었다. 범인인 장천항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터라 처벌을 1등 감하였다고는 하지만, 과연 장 1백 대를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장을 맞은 몸으로 3천 리나 유배 가면서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둑과 장기에 이성을 잃은 사람”

장기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노상추, 노상추일기,
1808-05-09 ~ 1808-05-24

요즘 노상추가 묵고 있는 여관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둑과 장기가 대유행이었다. 같은 여관에 묵는 사람 중에는 바둑에 넋을 잃고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빠진 사람도 있었다. 비단 이 집에서만 유행인 것은 아니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바둑과 장기에 푹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여 앉으면 바둑판과 장기판을 펴고,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며 훈수를 두곤 했다.

이렇게 바둑과 장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건만, 노상추는 바둑알과 장기말에 손도 대질 않았다. 잡기는 군자가 익힐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상추 집안이 3대가 무업에 종사하는 집안이니 노상추도 으레 바둑 등의 잡기를 즐길 것이라 여기지만 노상추는 바둑과 장기가 저포(杼浦)나 다름없는 못된 습속이라 여겼다. 오늘도 장동원(張東源) 령(令) 등 여러 사람이 모여서 바둑을 온종일 두었다. 장동원 령이 노상추에게도 같이 바둑을 두자고 권했으나 노상추가 거절하자 사람들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재미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어찌 바둑에서 재미를 찾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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