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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영화에 담긴 결혼, 그리고 사랑 이야기

정준호

인간이 만든 가장 선한 풍속: 결혼

십 수 년 전 한 외국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매우 인상 깊다. 그가 보기에 “가장 한국적인 영화는 임권택의 <춘향전>이 아니라 전지현이 나오는 <엽기적인 그녀>”라는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야 말로 빤한 전통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는 뜻이었다. 지금 보면 억지웃음을 끌어내는 조잡한 에피소드를 남발하긴 했지만, 한 시대상을 꼼꼼하게 잡아낸 기록으로 외국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을 법하다. 어떻게 하면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고전을 만들 수 있을까? <엽기적인 그녀>는 과연 모범일까?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으로 매일 저녁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와 만난 지 올해로 8년째가 되었다. 나는 오페라가 음악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작곡가는 자신의 가장 큰 역량을 오페라라는 극예술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그 역할은 영화로 넘어왔다. 오페라라는 말자체가 ‘오푸스’(작품)의 복수(複數)로 곧 종합예술을 말한다. 그것이 19세기까지는 음악가에게 주도권이 있었다면 20세기 이후로는 감독에게 권한이 넘어와 ‘영화’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결국 영화는 오페라의 연장선상에서 내 중요 관심사가 된 지 오래이다.

나의 글감인 ‘짝’과 ‘결혼’은 오랫동안 오페라와 영화의 핵심 소재였다. 원고 의뢰를 받고 가장 핵심적인 작품을 떠올려 보았다. 반사적으로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맹목적으로 사용되는 두 음악이 생각났다. 거의 모든 신부가 바그너의 <로엔그린>(1850) 가운데 나오는 ‘혼례의 합창’에 맞춰 입장한다. 주례사와 각종 ‘이벤트’로 어설픈 통과의례를 치른 신랑신부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1842) 가운데 ‘축혼 행진곡’에 맞춰 식장을 나간다. 아마 바그너와 멘델스존이 살아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료 수입을 챙기기도 멋쩍지 않았을까? 아니, 사용료를 내야 한 대도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썼을까?

바그너나 멘델스존의 작품 속에서처럼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결혼식 장면은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 가운데 나오는 유대 전통 혼례이다. 부모가 정해준대로 결혼하던 전통을 세 딸은 모두 거부한다. 첫째 딸은 부자인 홀아비 푸주한 대신 어릴 적 소꿉친구인 가난뱅이 재봉사를 택한다. 둘째는 한술 더 떠 외지인인 볼셰비키 혁명가를 따라시베리아 유배지로 떠난다. 셋째 딸이 유대인이 아닌 슬라브인과 야반도주하는 대목에 이르면 가장은 잃어버린 권위에 망연자실한다. 이 허허로운 사실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끌어안는 모습은 잔잔하지만 뭉클한 감동을 불러온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큰딸의 결혼식 장면이다. ‘선라이즈 선셋’이라는 노래와 함께 유대교의 전통 혼례가 흘러간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에게 결혼 예식의 성스러움을 각인해 준다. 우리도 전통예식을 치를 수 있는 장소가 여럿 있고, 서양식 결혼 때에도 폐백을 따로 드린다. 사주를 주고받고 이바지 음식을 준비하지만 대개가 깊은 뜻을 모르거나 전통과 무관한 허례허식으로 흐르기 일쑤이다.

체면이라는 것이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결혼 문화를 만든 것이다. 오페라나 영화에도 이런 이야기는 종종 눈에 띈다. <신부의 아버지>라는 제목의 영화는 1950년에 스펜서 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버지와 신부로 열연한 뒤, 1991년에 스티브 마틴과 다이앤 키튼이 딸을 시집보내는 이야기로 리메이크 되었다.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어 허탈한 아버지의 마음이 영화의 골자인데,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혼수이다. 사위는 별 능력 없지만 시댁의 재력이 대단한지라 아버지는 체면을 잃고 싶지 않아 무리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수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았던 혼수 문제가 서양에서도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초 사대부인 김택룡이 쓴 『조성당일기』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다양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중매자를 통해 양가의 의향을 나누고 사주단자와 택일단자를 주고받는 것은 오늘날에도 흔한 풍속이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혼례를 올린 뒤 처가에서 머물다가 신부를 본가로 데려가는 풍습도 오늘날 신혼여행 뒤에 처가를 찾는 식으로 지켜지기도 한다.

김택룡은 혼수를 마련하려고 쌀을 내다팔고 백방으로 도움을 청하는 내용도 기록했다. 혼례에 쓸 물건을 새로 들이지 않고 품앗이로 빌려 쓰는 대목도 찾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유학자인 김택룡이 소경 점쟁이에게 결혼이 빚을 길흉을 묻고 그것을 바라고 막을 수 있는 날을 받아오게 하는 대목이다. 교회를 다니는 집안에서 남편 몰래 궁합을 보고 점을 치는 아내의 이야기는 요즘에도 빈번하다.

곧, 인용하기에 따라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한 미풍양속이나 배꼽 잡을 소동거리로 각색할 수 있는 대목이 많으며, 서양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해될 만한 소재인 것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나 <신부의 아버지>와 같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또는 각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재해석될 때 우리에게도 멘델스존이나 바그너를 대체할 음악과 예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결혼이라는 그릇에 담을 본질: 사랑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홍역을 감수하고 치르는 결혼에 당사자들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없다. 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러브스토리는 무엇일까. 『로미오와 줄리엣』(1597)을 첫손꼽아도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셰익스피어가 쓴 이 희곡은 다른 장르의 예술로 숱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는 실제로 영국 극단이 공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여주인공에 반해 구애한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그에게 숙명과도 같은 이 희곡은 성악이 추가된 드라마 교향곡(1839)으로 작곡되었다. 같은 프랑스의 샤를 구노가 쓴 것(1867)이 오페라로는 제일 유명하다. 러시아의 차이콥스키는 관현악만으로 된 환상서곡(1880)을 썼다. 그의 후배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쓴 발레(1935)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코 체피렐리라는 이탈리아 명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을 기억할 것이다. 올리비아 허시라는 소녀는 이 영화를 통해 뭇 남성의 애를 태우는 청춘스타가 되었다. 리어나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스는 <로미오 줄리엣>(1996)이라는 바즈 루어먼 감독의 영화로 새 옷을 입었다.

그런가 하면 고트프리트 켈러라는 스위스 작가는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고, 영국 작곡가 딜리어스는 이를 오페라(1901)로 만들었다. 이 슬픈 러브스토리의 가장 독창적인 변형은 역시 레너드 번스타인의 천재적인 음악이 빛을 발하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일 것이다. 중세 이탈리아 베로나의 두 앙숙 집안 이야기를 뉴욕 뒷골목 토박이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사회의 반목으로 옮겨온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그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부터 왔음을 알게 하는 몇몇 핵심 장면이 있다. 줄리엣 집에서 열리는 가면무도회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고교 졸업 무도회가 된다. 두 사람이 달빛 아래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장면은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가 압권이다. 작곡가는 여기서 나온 중력을 거부하는 발레 음악을 마지막 줄리엣의 무덤 장면에 다시 사용한다. 이번에 죽음의 음악은 중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은 음악으로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유일하게 줄리엣의 무덤 장면이 아니라 로렌스 수사의 훈계로 끝을 맺는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형제애”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정신의 한축이 아닌가! 숱한 명장면을 어설픈 글로 묘사하기에 지면이 아깝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상응하는 우리 이야기는 <춘향전>이 아닐까. 판소리다섯마당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고, 신상옥, 임권택 외에도 숱한 감독이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방자전>이라는 획기적인 재해석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춘향전>은 정말 아름답다. 광한루의 첫 만남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에 뒤지지 않고, 두 사람의 첫날밤은 눈부신 ‘19금’이다. 이몽룡이 운에 맞춰 지어내는 시 한 수는 셰익스피어의 어떤 현란한 수사법과도 당당히 겨룰 만하다.

변학도라는 존재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지는 데 꼭 필요한 시련을 제공한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이몽룡이 어사로 돌아왔다고 해도 사대부가 천기(賤妓)의 딸과 혼인하려는 뜻이 호락호락 이루어졌을까. 춘향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랑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 시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춘향전>은 십여 년 전 TV에서 우연히 본 창작물이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세트를 만들어 녹화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시 찾아볼 수가 없어 더 감질이 난다. 한중일 삼국 전통 극예술을 가지고 만든 이 <춘향전>은 뼈대를 셋으로 나눴다. 첫 번째 두 주인공이 광한루에서 만나는 장면은 중국의 경극(京劇)으로 만들었다. 영화 <패왕별희>를 통해 유명해진 ‘베이징 오페라’ 말이다. 제2막은 춘향이 변학도에게 곤혹을 치르고 어사가 된 이몽룡이 걸인으로 분장해 옥중 춘향을 찾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일본의 가무극 노(能)로 만들었다. 당연히 첫 두 막은 중국말과 일본말로 공연하지만, 남원 광한루를 중국 정자(亭子)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칼을 쓰고 옥중에서 이몽룡을 맞이하는 춘향이 기모노를 입고 일본말로 노래한다고 해도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 창극으로 연출된 제3막에서 이몽룡은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끼어들어 학정을 꾸짖는 시를 짓고 어사출도를 외친다. 사태가 진정되고 관아에 높이 앉은 어사가 잠시 춘향을 떠보는 이야기의 정교함이라니! 이내 남원 관아는 열녀의 탄생을 찬양하는 축제 마당이 된다.

우연히 보게 된 행운이 늘 다시 보고픈 그리움을 남긴다. 단번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 예술가들이 연례적으로 공연해도 좋을 멋진 교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일본과 중국에도 우리가 한 막을 담당할 좋은 고전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런 작품들을 계속해서 현대적으로 각색해 그 핵심 가치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야 마땅하다. 나졸들이 물밀 듯이 등장하는 암행어사 출도 장면만큼 가슴 후련한 것이 이 답답한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말이다. 무엇보다 짝과 결혼이라는 영원한 소재가 <춘향전>이라는 불멸의 고전을 통해 새로이 옷을 입게 되길 고대한다. 무릇 고전이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창조되어야 생명력을 잃지 않게 마련이다.


작가소개

정준호 (kbs FM 실황음악 진행자)
표정훈 교수
1972년생.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나왔고 클래식음악 전문지 「그라모폰 코리아」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서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KBS클래식FM 「FM 실황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스트라빈스키》, 《이젠하임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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