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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 서로의 짝이 되어 가는 여정

2009년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이례적으로 극장가에서 흥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입니다. 경북 봉화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할아버지와 40여 년을 함께한 ‘늙은 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충렬 감독은 칠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와 나이 든 소의 얼마 남지 않은 동행의 끝을 기록하고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데요. 감독이 카메라를 들었던 이유는 할아버지와 소가 정말 교감하는지를 증명하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서로의 짝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할아버지와 늙은 소를 통해 ‘반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에게 희미한 소의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듣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도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릅니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될까,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를 지었지요.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으면 그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했습니다. 40년을 동고동락하며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 온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무덤덤한 늙은 누렁 소. 웹진 103호 〈조선 시대 반려동물〉을 준비하며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코로나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여 현재는 1,500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시간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짝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아보았습니다.

김경 선생님의 〈조선 문인, 고양이 집사가 되기까지〉에서는 선인들이 고양이와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 왜 그런 관계를 맺었는지 다양한 문인의 글과 그림을 인용하여 흥미롭게 전해주셨습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사냥꾼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곧 문인들에게는 매력적인 관찰 대상이 됩니다. 문인들은 배를 채운 고양이는 더는 음식을 탐하지 않는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햇볕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양이 눈을 보며 느낀 경외와 경계심은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빗대어 표현합니다. 고양이에 대한 관찰은 더 큰 관심으로, 그 관심은 교감을 낳고 어느새 관계는 깊어 갑니다. 세심한 관심과 관찰은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끝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하는지 조선 시대 문인과 그의 고양이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장소영 선생님의 〈민화 속 고양이, 새로운 옷을 입다〉에서는 조지운의 그림 〈유하묘도〉의 고양이를 활용해 다양한 패션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고양이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해서 담아주셨습니다. 버드나무와 까치,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그려진 〈유하묘도〉는 기쁨과 장수를 기원하는데, 이 그림의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서로 조합하고, 반복, 혼합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전통적인 선과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해 주셨습니다. 조지운이 관찰하고 기록한 17세기 고양이를, 2022년 장소영 선생님이 다시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고양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이번 호 웹툰은 〈비둘기가 돌아왔다〉로 비둘기 기르는 재미에 푹 빠진 노상추 이야기로 꾸며졌습니다. 먹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고, 집을 떠나 날아갔다가도 꼭 때가 되면 돌아오는 비둘기를 예찬하며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러다가 집안 어른이 비둘기 한 마리를 뺏어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에게 선물로 주는데, 며칠 만에 새장에 있던 비둘기가 사라져 버립니다. 사라진 비둘기는 무사히 노상추에게로 돌아갔을까요?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정생’이 지난달 시장에서 당한 ‘퍽치기’로 쓰러지더니 잠시 휴식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정생 일기〉가 102호로 마무리되고, 이번 호부터 포천 현감으로 부임한 오달현의 무남독녀 외동딸 ‘산비’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비야’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호기심 많은 열네 살, 곧 시집도 가야 하지만 5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껌딱지가 되어 포천으로 함께 옵니다. 비야는 동헌에 병풍을 치고 그 뒤에서 사또 아빠의 일을 함께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포천 향교 대성전에서 밤마다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를 해결해 달라는 향교 학장의 민원입니다. 그 소리의 정체를 찾아 현장검증이 시작됩니다. 함께 따라가 보시죠.

이수진 작가님의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세 번째 이야기는 〈살인죄로 유배된 ‘하얀 코끼리’와 성 소수자 ‘사방지’의 만남〉입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혐오와 질시의 대상으로 기록된 ‘하얀 코끼리’와 성 소수자 ‘사방지’가 2018년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를 통해 만나게 됩니다. 일본이 동물 외교라는 이유로 인도에서 끌고 와 조선에 선물(?)로 준 코끼리, 이의(二儀:남녀 한몸)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배 보내 노비로 살게 된 ‘사방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생명과 인권에 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번 호의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은 예천군 감천면의 ‘팔우헌(八友軒)’입니다. 팔우헌은 조보양 선생의 호이자 종택 별채의 당호인데요. 여덟 가지 자연을 벗하고 심신을 수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64세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으나 이내 낙향하여 부모를 봉양하며 그가 사랑한 산, 물, 바람, 달,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보양의 여덟 친구가 궁금하시다면 그의 문집을 살짝 펼쳐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겐 어떤 ‘짝’이 있으신가요?
사람, 동물, 식물 등 나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짝’에게 9월에는 더 따스하고, 정성스럽게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합니다.




편집자 소개

글 : 김민옥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 조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낙안읍성의 역사문화자원과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해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역사 공간의 장소성과 스토리텔링, 타문화 이해와 소통을 위한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이다. 공저로 『영화 춘향전과 한옥』, 『정보혁명』 등이 있고, 「아우서호퍼의 전쟁일기 맥락지식 분석과 스토리테마파크에서의 전유 가능성」, 「글로벌 콘텐츠화를 위한 전통의 복원과 시각적 재현: 영화 〔춘향뎐〕을 중심으로」, 「타문화 이해와 소통 과정을 통한 로컬 지식의 상호작용적 확장: 베른슈토르프의 부탄 영상물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썼다.
“물고기잡이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

오희문, 쇄미록, 1597-04-01 ~

1597년 4월 1일, 낮에 후전리에 사는 별감 김린, 교생 허충, 김애일 등이 오희문을 찾아왔다. 이들과 함께 동쪽 큰 언덕에 올라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 주인인 시중이 국수를 만들어 찾아왔다. 언덕 위 공터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국수를 먹는데, 큰 냇물이 굽이쳐 흘러서 깊은 못을 만들어 놓아 경치가 그만이었다. 언덕의 북쪽은 낭떠러지 절벽이 둘러쳐 있었는데, 이것이 한바퀴 빙 둘러서 반대편에 이 언덕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생긴 것이 마치 누각의 머리같이 생겼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한 낭떠러지라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바람도 조용하고 물결도 잔잔하여 티 하나 없이 맑은데다가, 햇볕도 내려 비치니 상쾌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물속에서 노는 고기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물도 맑았다. 무리지어 노는 물고기떼를 바라보다가, 옆에 따라온 아이에게 그물을 쳐서 몰게 하였는데, 몰기가 무섭게 물고기들이 번득거리고 엎어지는 것이 볼만하였다. 간단히 그물질을 하였는데도 60여 마리나 잡아 올리고, 또 낚시대를 가지고 오게 하여 낚으니 이번에도 40여 마리가 잡혔다.

잡은 생선 중 큰 놈을 골라 뼈를 발라내어 말려 놓고, 남은 잔 생선으로 탕을 만들어 밥과 함께 먹었다. 이런 자리에 술이 없는 것이 몹시 유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아까 잡아 말려놓은 큰 생선이 반이나 없어진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서편에 사는 강아지놈이 사람들이 부산한 틈을 타서 반을 먹어버린 것이었다. 강아지가 몹시도 미웠으나, 어찌하겠는가! 오희문은 뛰어난 경치와 흥겨운 물고기 잡이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과 동고동락한 개 이야기”

장석영, 흑산일록, 1919-08-22

1919년 8월 22일. 장석영은 어제 항소심에서 극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 감옥에서 나왔다. 이곳 대구에서 성주까지는 하룻길이기에 오늘 이곳에서 머물고 내일 집으로 가기로 하고 하루를 묵었다. 밤에 창을 열고 지난 몇 개월을 회상하고 있는데, 어떤 짐승이 창 앞에 마주하여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쫓아도 일어나 도망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전히 거기에 있길래 다시 쫓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장석영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개는 일본인의 개인데 집을 떠나 얼마간 있다가, 댁의 아드님이 아침저녁으로 손수 밥을 짓고 음식을 마련하여 밥그릇을 받들어 감옥으로 가기 전에 이 문을 나서면 곧바로 아드님을 따라갔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일찍이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감옥 문 앞에 이르러 아드님이 문밖에 서서 밥그릇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 이 개도 그 곁을 지키면서 머물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밥그릇이 나와서 아드님이 돌아오면 개도 따라서 돌아왔다가 이 집의 문 앞에 이르러서는 문득 떠났습니다. 하루가 일상이 되어 출옥하는 날에도 여기 와서 지키며 몰아내도 가지 않는 것은, 필시 아드님의 효성에 감동하여 이러한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였고, 장석영 역시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개를 혹 사서 데리고 갈 수 있는지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일본인이 개를 팔 리도 없지만, 판다고 하여도 값을 많이 부를 것이라 만류하였다.

결국 장석영은 개를 사는 것을 포기하였다. 대신 아들에게 떠날 때 강아지를 쓰다듬고 따뜻하게 작별의 정을 보이도록 하였다. 하늘이 만물에게 내려준 감정은 사람과 짐승이 다르지 않을 터인데, 이러한 강아지를 사서 함께 돌아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또한 강아지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아들의 효성을 전해 듣게 된 장석영은 한 번 더 감동을 자아내는 마음이 들었다.

“고양이를 골린 이야기를 듣고 포복절도하다”

변상벽(卞相璧), 〈영모도(翎毛圖)〉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권별, 죽소부군일기, 1625-01-21 ~

1625년 1월 21일, (권별의 병세가) 종일 오락가락하며 일정치 않았다.

계집종들에게 각기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하였다. 그 중 ‘정공(鄭公)이 고양이를 골린 일’에 미쳐서는 모르는 사이에 포복절도하였다.

“닭의 발톱에 얼굴을 다쳐 숙모의 상여도 따라가지 못하다”

남붕, 해주일록,
1922-10-16 ~ 1922-10-19

1922년 10월 16일, 남붕은 숙모의 장례가 내일 있어서, 종일 조문객을 접대하였다. 그런데 전날 밤에 남붕의 집에서 기르는 닭을 도둑고양이가 물어가는 일이 있었다. 남붕은 놀라 흩어진 남은 닭들을 잡아다가 닭 둥지 속에 다시 넣어 두었다. 그래서 이날 아침에 닭을 살펴보려고 둥지 문을 열어 보았는데 문을 열자마자 닭 한 마리가 갑자기 둥지 밖으로 날아가며 남붕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닭의 발톱이 남붕의 눈 아랫부분을 할퀸 것이다.

남붕은 상처가 바람을 맞으면 부스럼이 되는 것을 염려하여 약을 바르고 나가는 일을 삼갔다. 다음날 새벽에 영구를 마을 밖으로 전송하였는데 하필이면 바람이 거세 얼굴에 바람을 맞을까봐 장지까지 따라가지도 못하였다. 숙모와 조카의 심정과 처지에 있어서 매우 애통하고 한스러운 심정이었다.

그 다음날에는 해가 저물 때에, 윤초(允初) 아재의 모친 장사가 내일 있기 때문에 곡을 하러 가야 했는데, 상처 때문에 세수도 하지 못하고 다녀왔다.

10월 19일에는 숙모의 빈소에 가서 재우(再虞)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얼굴이 상처로 부어서 상여를 따라가지는 못 하였다.

“소를 가둔 죄로 파직당한 나무송(羅茂松)의 이야기”

김령, 계암일록, 1631-08-30 ~

1631년 8월 30일, 날씨는 종일 맑다가 흐리기를 반복하고, 늦가을 동풍이 몹시 쌀쌀하였다. 저녁 무렵 김령은 전에 예안 현감이었던 담양에 사는 나무송(羅茂松)이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그가 파직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매우 온당치 않은 일이었다.

지난 봄 2월 무렵 김시익의 여자 종의 남편이 다른 사람의 소를 훔친 일이 있었다. 본래 흰 점을 가진 소였는데, 소를 훔친 자는 이후 일이 들킬까 염려하여 소의 흰 점을 검게 물들였다. 김시익의 또 다른 종 논복이란 놈도 소를 훔친 자와 한통속이었다. 이들은 소가 새로 생긴 것을 관아에 고하고 입안(立案)까지 하였다.

그런데 소의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관아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사연을 듣고 난 후 당시 예안 현감이었던 나무송은 곧 소를 데려다가 물로 씻어보도록 명령하였다. 과연 소 주인의 말대로 검은 부분이 물에 씻기자 곧 흰빛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무송은 소를 훔친 자를 옥에 가둔 뒤에, 경상도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형을 가하여 심문하였다. 또 장물인 소도 관아에 가두었다가 곧바로 소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소의 주인은 현감의 처사에 매우 감사해하고 소를 돌려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무송과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 사헌부 관원이 나무송이 소를 가두었다는 것을 문제 삼아 죄로 삼은 것이다. 억울한 소 주인에게 소를 돌려준 것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 분명한데, 소를 가두었다는 것을 문제 삼아 나무송의 허물이라고 윽박지르니 나무송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일로 나무송이 파직당하기에 이르렀으니, 한 고을의 수령이 소 한 마리를 잠시 가두었다가 봉변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나무송은 아직도 그때의 분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듯하였다. 현명한 송사로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고도 이러한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니, 김령은 진심으로 나무송의 처지가 딱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소를 가둔 것을 문제 삼아 현감을 파직시킬 기발한 생각은 대체 누가 했는지, 그 궁색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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