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 문으로 상여가 나가고 있었다.
“아유, 불쌍해서 어쩐대.”
“이번 사또도 이틀을 못 버티고 돌아가신겨?”
“참말 큰일이네. 어쩌다 이런 일이…”
고을 백성들이 삼삼오오 몰려 혀를 찼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벌어진 참변이었다. 신임 사또가 부임해서 관아에 묵은 다음 날 아침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중이었다. 이번 사또가 오기까지는 석 달이 넘게 걸렸는데 과연 다음 사또가 오긴 할지 걱정이 될 판이었다.
〈경상감영공원 내 징청각(澄淸閣). 관찰사의 관사(官舍)로 사용된 건물이다〉 (출처 : 스토리테마파크)
백이와 목금도 상여가 나가는 광경을 언덕 위에서 보고 있었다. 목금이 백이에게 말을 걸었다.
“관아에 귀신이 있어서 그렇다면서?”
“그럴 리가.”
백이가 코웃음을 쳤다.
“귀신을 쫓을 때 쓰는 주문이 뭔지 알아?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고 한다고.”
“그거야 알지. 율령처럼 급히 행하라는 뜻이잖아.”
“그래, 율령이라는 게 뭐야? 관청의 법이라고. 관청의 법을 행하는 걸로 귀신도 쫓을 수 있는 법인데, 어떤 귀신이 간이 배 밖에 나와서 관청의 장을 해칠 수가 있겠어?”
“흠, 그럴까? 그럼 왜 자꾸 사또가 죽는 걸까?”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 아냐? 지난번 사또도 그렇고 이번 사또도 일흔 살이 다 되었잖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원래 일흔까지 사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야.”
목금이 도리질을 했다.
“아니야. 이상해. 한 번, 두 번은 우연이라고 해도 세 번씩이나 이런 일이 생길 리는 없지.”
백이가 씩 웃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는데 말이야.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야. 네 말처럼 한 번, 두 번으로는 믿지 않아도 세 번이 되면 어, 진짠가보다 그러는 거거든.”
백이가 삼인성호라는 고사성어에 대한 유래를 지루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목금은 하나도 듣지 않고 상여가 나가는 모습만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백이가 문득 눈치채고는 말을 멈췄다.
“야, 너 너무하는 거 아냐? 내가 열심히 설명하는데…”
〈꽃상여와 꼭두〉 (출처 : 본태박물관)
“저기, 저기 좀 봐!”
목금이 한 손으로 백이의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목금이 다른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상여 행렬의 끝이었다. 두 소녀가 서로를 붙들고 상여를 따라가고 있는데 걸어갈 때마다 물 자국이 남았다. 소녀들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 연못이나 개천에 빠지기라도 한 건가? 저렇게 푹 젖어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저러지?”
“그러게. 별일이네. 한 번 가보자.”
“응?”
목금은 백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뛰듯이 내려갔다. 서둘러 상여의 뒤를 쫓는다고 했지만 두 소녀가 언덕을 다 내려왔을 때 상여는 한참 앞으로 간 상태였다.
“이거 봐! 이상해!”
백이가 상여 쪽으로 따라가며 말했다.
“물 자국이 없어!”
정말 그랬다. 철철 흘리고 간 물이 벌써 다 말라버렸을 리가 없는데 물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메마른 길바닥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황토가 휘날렸다.
“빨리 따라가 보자.”
목금이 주먹을 불끈 쥐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서 물에 젖은 두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얘들아, 거기 서!”
목금의 소리에 두 소녀가 우뚝 멈춰 섰다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낯빛이 창백했는데, 두 사람이 무척 닮은 것이 자매인 모양이었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소녀가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가 보여?”
목소리가 음산했다. 따뜻한 봄날이었는데도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봉사도 아닌데 당연히 보이지.”
목금은 부러 쾌활하게 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두 소녀는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눈물은 시뻘건 색이었다. 두 소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자 백이는 너무 놀라 까무러치고 말았다.
“앗, 백이야, 정신 차려!”
목금은 백이를 안아 올려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어깨와 팔을 주물렀다. 동네 사람들도 놀라서 다가왔다.
“백 진사 댁 소저 아닌가! 이를 어쩌나!”
사람들이 한 편으로는 백 진사 댁으로 사람을 보내고 물을 떠오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다행히 백이가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에요! 아기씨 대체 왜 놀라신 거예요?”
백이네 하녀인 삼월이가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삼월이는 백이를 모시고 나왔다가 상여 구경에 빠져서 다른 곳에 있던 참이었다.
“저 소녀들 때문에…”
백이가 고개를 들어 상여 행렬의 뒤를 바라보았는데, 두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소녀들이요? 어디 사는 누구랍니까? 내가 그냥 다리 몽둥이를 작신…”
삼월이가 흥분해서 말하는데 백이는 듣지도 않고 목금을 바라보았다.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안 보여.”
더는 찾아볼 것도 없었다. 백이가 아직도 몸을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에 삼월이가 백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삼월이는 겨울 이불을 다시 꺼내와 백이를 누에고치처럼 싸놓았다.
“봄철 고뿔이 더 독한 법이에요. 절대 나오시면 안 돼요. 목금 아기씨가 잘 지키세요.”
삼월이가 목금에게 신신당부하고 방을 나갔다. 보아하니 구들에 불도 넣을 태세였다. 하지만 삼월이가 나가자마자 백이는 이불을 홱 걷어치웠다. 목금이 물었다.
“괜찮아?”
“아직도 좀 무섭긴 한데, 이불 덮어쓸 건 아니잖아. 고뿔 같은 건 아니니까. 아까 그 소녀 둘은 귀신이었겠지?”
“그런 것 같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무 흔적도 없고. 너랑 나 말고는 본 사람도 없더라고.”
“그럼 그 자매가 사또를 죽인 걸까?”
“그럴지도…”
백이가 얼굴을 가리고 몸서리를 쳤다.
“으으, 우릴 찾아오면 어떡하지? 아까 피눈물을 죽 흘리는 걸 보니까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귀신이 누군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겠지. 나 좀 나갔다 올게.”
“뭐? 안 돼! 나 혼자 있다가 귀신 오면 어쩌라고? 가지 마. 여기 있어.”
“불돌이 데려다 줄게. 불돌이 있으면 귀신도 못 올 거야.”
“그, 그럴까? 어디 가려고 그러는데?”
“금방 다시 올 테니까 기다려.”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양수지조(陽燧之鳥)〉 (출처 : 동북아역사넷)
목금은 불돌이를 아궁이 밑에서 꺼내 백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양수지조(陽燧之鳥)인 불돌이는 불길을 먹고 살고 불 속에서 지내는 새로 신령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백이와 목금이가 우연히 발견해서 백이네 구들 밑에서 몰래 지내고 있었다.
백이는 불돌이를 꼭 껴안고 덜덜 떨면서 목금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목금이 돌아왔다. 빨리 뛰어오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였다.
“뭐 좀 알아냈어?”
“알아냈어!”
목금이 자리에 철퍼덕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귀신이면 죽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니까 염쟁이 장씨를 찾아갔지. 소녀 둘 염을 한 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아하, 그렇구나. 역시 목금이가 똑똑하다니까.”
“그런데 그런 집이 없더라고. 대신 다른 걸 들었어.”
“어떤 건데?”
“우리 동네는 아니고 강 건너에 있는 갈대촌에서 생긴 일이래. 그 마을에 배 씨 성을 지닌 집이 있었는데 상처한 뒤에 재혼을 했대지. 전 부인하고 사이에 딸이 둘 있었대. 그런데 계모가 이 딸 둘을 심하게 구박했대. 그러다 갑자기 큰 딸이 연못에 빠져 죽고 둘째도 얼마 안 가 언니를 따라 그 연못에 빠져 죽었다지 뭐야.”
“계모가 죽인 건 아니고?”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억울함을 관청에 호소하려고 나타난 건지도 몰라.”
“으으, 하지만 그렇게 나타나면 심약한 사람은 놀래서 죽을 거야.”
백이의 말에 목금이 이마를 탁 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연로한 사또들이 피눈물 흘리는 여자 귀신 둘을 만나니 놀래서 죽을 수밖에.”
백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나도 놀래서 죽을 뻔 했다고.”
목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지?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새 사또가 부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무도 사또를 맡으려 하지 않았는데, 젊은 무관이 호기롭게 나서서 부임을 자처했다고.
“목금아, 너도 들었어? 새 사또 나리가 오신다는데, 또 귀신이 죽이면 어떡하지?”
백이가 걱정이 되어 목금에게 물었다. 목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번 사또 나리는 젊은 무관이라잖아. 담대한 사람이라면 별 일 없을 거야.”
“아, 그럴까?”
“걱정되면 미리 좀 살펴볼까?”
“살펴보다니, 어떻게?”
“망허정에 올라가면 사또 나리가 부임할 때 모습을 볼 수 있어.”
“에이, 거기선 보이긴 해도 콩알만 하게 보일 텐데?”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나한텐 이게 있다고.”
〈1700년대 제작된 천리경(千里鏡)〉 (출처 : 실학박물관)
목금이 척 내민 것은 둥근 원통이었다. 고급스럽게 보였지만 백이로서는 뭔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끝이 유리로 막혀있네. 이게 뭐야?”
“이게 바로 천리경이야.”
“우와! 천리경! 저 멀리 있는 것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는 그 물건이라고?”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소녀는 이 천리경 덕분에 젊은 무관 출신 사또의 모습을 산꼭대기에 있는 망허정에서 잘 볼 수 있었다. 신임 사또는 콧날이 오뚝하고 눈이 커다란 미남이었다. 백이가 두 손을 그러쥐고 외쳤다.
“아, 안 돼. 저렇게 잘생긴 분을 돌아가실 위험에 처하게 하는 건!”
목금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오늘 밤 출동이다!”
“뭐? 어딜?”
“어디긴 관아지. 그 귀신 자매를 우리가 먼저 만나는 거야.”
하지만 백이는 그 말에 바로 졸도할 듯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목금이 말을 바꿨다.
“그, 그래. 내가 먼저 만날게.”
백이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목금은 그날 밤 몰래 관아로 숨어들었다. 관아 주방으로 통하는 뒷문은 늘 열려 있기 때문에 거길 통해서 들어가 관아 안에 있는 작은 연못 옆에 몸을 숨겼다. 물귀신이 된 자매니까 연못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자정이 되자 정말 물속에서 허연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자매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얀 소복에 풀어헤친 머리로 사또가 있는 침소로 향했다. 목금이 뛰어가 두 자매 앞을 가로막았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두 자매의 영혼이 부사를 찾아오는 내용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을 소재로 한 영화 《장화, 홍련》〉 (출처 : 청어람)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두 자매가 또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목금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억울한 사정을 사또 나리께 호소하려는 거죠?”
언니 귀신이 대답했다.
“맞아요.”
“그럼 그런 모습으로 가면 안 돼요.”
“우리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알리는 모습인걸요.”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가면 사람들이 놀래서 죽는단 말이에요!”
“아…”
두 자매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목금이 주머니에서 빗과 끈을 꺼냈다.
“이리 와 봐요. 내가 잘 묶어줄 테니.”
목금이 단정히 두 사람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손수건을 꺼내 피눈물도 깨끗이 닦아냈다.
“자, 이제 사또 나리께 가보세요.”
두 자매는 목금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사또 침소로 갔다. 사또는 잠을 자지 않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금은 조금 멀리 숨어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지켜보았다.
“너희가 올 줄 알고 있었다.”
사또는 기대보다 무섭지 않게 나타난 자매의 모습에 오히려 놀란 모양이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근엄하게 말했다.
“배씨 집의 자매들이겠지? 너희 사연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조사를 했느니라. 계모가 언니를 모함해 낙태한 것으로 꾸미고 연못에 빠뜨려 죽였겠다? 동생은 언니를 따라 죽었고.”
두 자매는 사또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신임 사또가 언제 이런 것을 다 준비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사또가 말했다.
<수령칠사(守令七事)가 기재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출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상 전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에게는 일곱 가지 지켜야 할 임무가 있다. 이를 수령칠사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없게 하는 것이니라. 내가 진상을 모두 알았으니 너희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다. 다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
언니 귀신이 말했다.
“그리만 된다면 저희가 어찌 또 이렇게 나타나겠습니까? 사또 나리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자매는 사또에게 큰절을 올리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사또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거기 숨어있는 낭자, 이리 나오시오.”
하지만 목금은 꼼짝하지 않았다.
“허허, 하긴 낭자는 이승의 사람이니 야밤에 외간 남자를 만날 수 없겠구려. 아무튼 낭자가 보내 준 서한 때문에 우리 고을의 횡액을 막을 수 있었소이다. 내 깊이 감사드리오.”
사또는 벌떡 일어나 무관답게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깊이 읍을 올렸다. 목금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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