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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이슈

디지털 세계 속 ‘초실감’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을 돌아보며

선인들은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무사를 기원하는 고사(告祀)를 지내어 혹시 모를 재액을 방비하였습니다. 이번 스토리이슈에서는 고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재개관한 한국국학진흥원의 세계기록유산 체험전시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월 1일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을 재개관하였습니다. 앞서 작년인 2020년 7월에 한차례 개관하였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일반에게 공개가 계속 늦춰졌고,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재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한 세계기록유산을 VR과 AR 등의 초실감 디지털 기술로 생생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VR 게임: 목판과 현판을 지켜라!





전시관에서 가장 먼저 체험해 볼 수 있는 VR 기술은 터치스크린과 VR 헤드셋, 컨트롤러를 활용하여 악당을 잡아 세계기록유산을 지키는 게임입니다. 고무공을 던지거나 발을 굴러 목판을 망치는 괴물을 직접 잡거나, 컨트롤러를 조작해 현판을 파괴하는 괴물을 총으로 쏴 퇴치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판각스피드 게임 등 여러 가지 방식의 게임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기록유산을 지키는 신나는 모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관람객들이 세계기록유산을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목판 개방형 수장고



국채보상운동 AR 전시



다음으로, VR과 AR,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영상 체험들도 인상적입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자랑인 목판과 현판의 실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동시에 태블릿 PC를 활용한 AR 기술로 관련 설명을 상세하게 청취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서 실물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머리에 내용이 쏙쏙! 국채보상운동, 만인소, 한국의 유교책판과 같은 한국국학진흥원의 주요 기록유산들도 같은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으니, 모두 놓치지 말고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책판 제작과정’ 애니메이션 영상



특히, 책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터치하여’ 책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확인해봅니다. 나아가 키오스크와 VR 헤드셋을 활용하여 광활한 장판각의 모습을 실제처럼 탐방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기록유산 생생아카이브는 손 모션을 이용하여 현판과 목판의 3D 화면을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왼쪽으로 돌려보고,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크기도 늘렸다가 줄였다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현판과 목판의 앞뒤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장판각 탐방 키오스크



세계기록유산 생생저장소



지금까지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한국국학진흥원에 방문하여 체험전시관에서 세계기록유산을 VR과 AR로 경험해보시면 어떨까요? 초실감 디지털 기술을 통해 세계기록유산을 보다 가깝게 만나며 공부도 재미도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건 안비밀~




“매해의 마지막을 구나로 장식하며 추억에 젖다”

김령, 계암일록,
1603-12-30~ 1608-12-30

1603년 12월 30일, 한 해가 다 지나갔다. 김령은 어버이가 모두 살아 계실 때를 추억해 보니 슬프고 사모하는 마음이 그지없었다. 그는 입으로 율시(律詩) 한 수를 읊었다. 내일 제사 때문에 제수 음식을 살펴보고 초저녁에는 구나(驅儺)를 행했다. 자개·이지 등과 옛날에 한 약속이 있어서 후조당(後凋堂)에 모여서 대화했다. 닭이 운 뒤 각자 흩어졌다.
1606년 12월 30일, 김령은 초저녁에 구나(驅儺)를 행했다. 병중에 있다 보니 옛날 어버이 계실 적의 성대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김령은 자신도 모르게 느꺼움이 사무쳐 슬퍼졌다.
1607년 12월 27일, 김령은 밥을 먹은 뒤 방잠에 가서 큰 배소(拜掃)를 행했다. 나례(儺禮) 행사의 북소리를 들으니 옛날 일이 생각났다.
1608년 12월 30일, 추위가 심했다. 김령은 저물녘에 설월당에서 외가의 절제(節祭)를 지냈다. 한해가 이미 다 지나갔다.
옛날, 어버이를 모시고 즐겁게 지내던 시절과 아이 적에 장난치며 뛰어놀던 추억이 떠올랐다. 느꺼움에 탄복되고 탄복되었다. 김령은 밤에 구나(驅儺)를 행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년 김령의 소회와 아이들의 구나(驅儺)”



바람이 세차게 부는 1623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김령은 여러 어른에게 감사 편지를 써드렸다. 그리고 정오경에 부모님께 절제(節祭)를 올렸다. 늦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한 해의 마무리를 했다.
마을 아이들은 보잘것없으나마 구나(驅儺)를 하였다. 김령은 한 해의 끝을 보내며 점점 노경(老境)으로 접어드는 감회에 젖었다. 옛 추억이 엊그제 일 같아 스스로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상께서 전염병을 막을 제사를 지내라 명하시다”

최흥원, 역중일기, 1746-05-22

1746년 5월 22일, 흐린 날이었다. 요사이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났는데, 그 때문인지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대구부 시장에 보낸 종은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질 못했다.
요사이 주상께서 민간에 역병이 도는 것을 아시고는 이를 치료할 벽온단을 나누어 하사하셨다고 한다. 또한 낭관과 감사를 파견하여 여귀에게 올리는 제사, 여제를 지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주상의 성은이 이에 이르렀으니 신료들과 백성들은 마땅히 감격하여 은혜를 갚을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고을에서는 세금 거두는 것을 어찌나 화급하게 독촉하는지, 온 고을이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서울에 계신 주상은 백성들이 전염병에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일선 관리들과 향리들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에만 골몰하고 백성들의 삶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어찌 이것이 관리로서 임금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 하겠는가! 최흥원이 보기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여귀보다, 세금을 독촉하는 관리들이 백성들에겐 더 무서운 존재 같았다.

“1846년의 설날 - 세배와 차례, 성묘 그리고 한해 운수 점치기”

서찬규, 임재일기,
1846-01-01~ 1849-01-01

오늘은 1846년 1월 1일, 정사(丁巳)년 설날이다. 매해 그러했듯 서찬규는 닭이 울 무렵 할머님과 부모님께 세배하고, 날이 샐 무렵 절 차례를 지냈다. 서실로 나와서 덕우와 함께 시초점을 쳤는데 서지췌(噬之萃) 괘가 나왔다. 오후에는 신제(新堤) 북쪽 산언덕의 선영에 가서 성묘했다. 5대 조비(祖妣) 영양 이씨(永陽李氏), 조비 월성 손씨(月城孫氏), 증조비 동래 정씨(東萊鄭氏), 숙부 등 모두 네 분의 묘소가 여기에 있다. 1849년(헌종15년) 1월 1일에는 감기 때문에 차례에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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