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활용사례

[보도자료] 웹진 '담談' 121호 -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다

글쓴이 : 관리자 [ 2024-03-25 ]



선비가 바라본 고려 거란 전쟁
- 영토 개척의 표본, 영웅을 추숭하다 -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다’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발행하였다.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기존 사극 시청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높은 호응과 지지를 얻고 있다. 어느 특정 역사 인물의 영웅 서사가 아닌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영웅들을 그리며 대중들의 관심을 끈 이 드라마는 고려 시대에 대한 호기심과 판타지를 촉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고려에 가졌던 인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동북 9성을 이룬 윤관을 기리다

<윤관의 9성에 대한 조선 시대 지식인의 인식>에서 이정신 교수(한남대학교)는 고려 숙종과 예종 대에 활약한 문신 윤관(尹瓘, 1040∼1111)에 관한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평가를 담았다.

고려는 현종(顯宗) 대에 거란의 침략을 받은 이후부터 서북방면 진출은 포기하고 동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예종 2년에 윤관은 별무반을 편성하여 완안부 여진을 소탕하고, 9성을 설치하여 여진인을 내보내고 남도 주민을 이주시켜 완전히 고려의 영토로 만들었다. 이로써 고려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통치 질서의 수립뿐 아니라 영토 확장을 통한 농경지 획득이라는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나 화평론을 내세운 고려 조정은 정벌 2년 만에 동북 9성을 반환한다. 하지만 고려가 9성에서 철수한 지 6년 만에 여진은 금나라를 세우고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고려는 9성 반환이 실책이었음을 인식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주요한 대외 정책과 북방 정책을 펼 때 윤관을 소환하며 그의 행적을 평가했다. 세종 대에 4군과 6진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윤관의 9성을 국경 획정(劃定)의 나침반으로 사용했다. 성종 대에 명이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 원군을 요청하자 양성지는 금이 고려를 침입하지 않은 것은 윤관이 9성을 쌓은 선춘령이 경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출병을 반대하였으며, 조위 또한 9성을 반납한 것은 윤관 탓이 아니라 군수품이 부족하여 여진족을 이길 수 없었던 이유를 들어 조선이 명과 연합하여 여진족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9성 위치 비정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후부터 북방 영역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 영토 의식의 확대를 가져왔다. 고구려·발해 이래 윤관의 9성 영역은 고려가 북방으로 진출한 가장 넓은 영역이었기에 윤관이 영토 개척의 화두로서 지속해서 거론되었다.



백두산정계비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농경과 유목의 차이가 불러온 전쟁

<고려와 거란 전쟁-정주와 유목의 충돌>에서 허인욱 교수(한남대학교)는 고려와 거란, 두 나라가 전쟁한 이유를 문화사적으로 풀어낸다.

농사하며 정착 생활을 하는 고려와 달리, 거란은 계속 이동하며 가축을 키우는 유목 문화를 영위했다. 이러한 차이는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간극을 초래했고 그 결과 전쟁이라는 무력 충돌이 나타났다.

유목민의 생존에 문제가 발생하는 때는 가축들에게 풀을 먹일 수 없는 겨울이었다. 그래서 유목민은 생존을 위해 초원 바깥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교환을 했으나 그것도 안 되면 약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관련한 『요사』의 기록에 거란은, 출병은 음력으로 9월을 넘기지 않고 군사를 돌이키는 것은 12월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생활시스템 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거란이 고려를 치기 위해서는 요동과 한반도를 잇는 의주를 통해야만 했는데, 땅이 얼어 단단해져야 도로로 이용할 수 있는 압록강을 건너야만 하는 것도 겨울을 선택한 이유의 하나였다.

거란의 기마를 이용한 빠른 속도전을 막기 위해 고려는 들판을 깨끗하게 비우는 청야(淸野)와 더불어 지형지물을 이용한 수성전(守成戰)을 사용하였다. 속도전을 해야 하는 거란의 입장에서 말에게 먹일 여물의 부족은 큰 타격이었다.

또한 1019년 귀주대첩에서는 비바람을 이용한 고려군의 공격에 거란군이 달아나자 이를 쫓아가 공격을 했다는 『요사』의 기록으로 보면 고려 또한 기마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거란군을 막아내기 위해 고려가 거란의 장점인 기마술을 수용, 습득했음을 알려준다. 이 전쟁에서 완패한 거란은 이후에도 고려와의 무력충돌은 있었지만, 거란이 송에 연합을 요청하는 등 그 기세는 매우 약해졌다.

고려 시대 거란과 전투에 공을 세웠던 이들은 조선 시대에도 추숭되었다. 고려때부터 있었으나 여러 병란으로 사라진 평안도 선천군의 삼충사(三忠祠)를 인조 23년(1645)에 다시 세워 1011년 정월에 거란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 유백부(庾伯符)를 모셨다. 강감찬 장군은 태조대부터 여러 서원에서 배향하고, 묘를 재정비하기도 하였다.


난제와 혼란 속에서도 슬기로웠던 고려 영웅들의 흔적

이외에도 웹진 담談에서는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다’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스토리웹툰 독獨선생전’ 3화 <맑은 냇물엔 한양의 나무들 또렷하고>에서는 고려를 건국할 때 왕건을 도왔던 안동의 공신 김선평·권행·장정필의 위패 위치와 배향 순서를 놓고 100여 년 동안 이어진 두 가문 후손들의 갈등을 독 선생의 씁쓸한 시선으로 담았다.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의 <나라를 뒤집는 재미, 혁명의 드라마>에서는 1937년 초연된 연극 <백화>를 소개한다. 고려 말 평양 기생 백화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내용으로 중세 시대의 여인상을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지만, 연출가의 월북으로 인해 공연 기록이 전무하여 고려를 배경으로 한 이 연극이 재공연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백이와 목금’의 <망허산의 호랑이>에서 목금이는 호환으로 힘들어하는 망허촌 이야기를 듣자, 호랑이를 부렸다는 강감찬 장군을 떠올린다. 강감찬 장군이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 문곡성의 화신이었기에 호랑이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 목금은 이를 응용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 ‘천구(天狗)’를 불러내어 호랑이를 떠나게 하려 하는데, 노승이 나타났고 목금은 그를 통해 호랑이를 사라지게 할 묘책을 쓴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의 <고려 공민왕, 영호루(映湖樓)에 서다>에서는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정자 ‘영호루’를 소개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서 70일간 머무를 때, 영호루에서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군령을 내리는 등 영호루에 올라서 마음을 정비하였다고 전해진다.




보도자료 :
KBS 뉴스, 조선시대 사람들이 본 고려 거란 전쟁 영웅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7707&ref=A)
KBS 대구, 조선시대에도 고려 거란 전쟁 영웅들 추숭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8130)
뉴시스, 조선 선비에게 고려-거란 전쟁은?…"영토 개척 표본, 영웅 추숭"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307_0002651866&cID=10810&pID=10800)
아시아투데이, ‘고려-거란’, 농경과 유목의 차이탓에 전쟁했다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40307010003365&t=1711334412)
쿠키뉴스, 한국국학진흥원, ‘고려거란전쟁’ 이야기 웹진 담 3월호 발행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403070028)
에너지경제, ‘고려거란전쟁’ 지식인들, 고려에 가졌던 인식은? (https://www.ekn.kr/web/view.php?key=20240307026230554)
우리문화신문, 조선 선비가 바라본 고려 거란 전쟁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44580)
스쿨iTV, 조선 선비가 바라본 ‘고려 거란 전쟁’ (http://www.schoolitv.com/article.asp?aid=170977199399459062)
FMTV표준방송, 한국국학진흥원, 조선 선비가 바라본 고려 거란 전쟁 (http://www.fmtv.co.kr/news/view.php?idx=164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