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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말(馬)을 사다
1607년 1월 13일, 김광계는 아침 일찍 하인을 데리고 마시장에 나가 말을 한 마리 구입해서 돌아왔다. 이전에 타고 다니던 말은 늙어서 그런지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았다.
김광계는 다른 양반들처럼 늘 말을 타고 다녔다.
제천 할아버지
댁을 갈 때도, 재종숙들 집에 갈 때도, 향교에 갈 때도, 서원에 갈 때도, 향시를 보러 갈 때도,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도 언제나 그는 그 말에 짐을 싣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다녔다. 그런데 2년 전 겨울 이른 아침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넌 적이 있는데, 말의 배까지 차디찬 물이 차올라서 김광계의 바지가 다 젖고, 말도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이십일 정도 지나서 김광계는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서울로 가면서 그 말에다가 짐을 싣고 타고 갔었다. 그 때 말의 걸음이 매우 느려 같이 가던 친구들을 따라 가지 못하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예 길에 드러눕고 말아서 말고삐를 잡았던 하인과 김광계가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그 후로 1년여를 더 부렸으나 이젠 더 이상 안 되겠어서 큰맘을 먹고 새로 말을 산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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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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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매원일기(梅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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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광계(金光繼)
주제 : 말
시기 : 1607-01-13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광계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광계
◆ 조선시대 교통수단 말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장거리 여행에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말이었다. 말을 이용하면 도보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덜들고, 따라서 더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었다. 南孝溫 · 권업 · 朴聖源 등의 금강산유산기에는 하루 이동거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하루에 말을 타고 대개 평탄한 길에서는 100리, 산길에서는 60리 정도를 이동하였다.
한편 도보로 이동한 경우에는 지리산에서 남효온은 하루에 40리 내외를 걸었고, 이호윤은 가야산을 향해 가면서 하루 50리 내외를 걸었다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l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였는지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746년에 만들어진 『續大典』에 명시된 “周尺 6尺을 1步로 하고, 360보를 1里로 하며, 30리를 1 식息으로 한다.” 라는 규정에 따르면, 1리는 2,160척인 것이다. 주척 1척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20cm에서 2lcm 사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척 l 척을 20.81cm로 환산하면, 1리는 대략 450m에 해당하며 10리는 약 4.5km 인 것이다.
그렇다면 금강산유람에 나선 사람들이 하루에 평균 100리를 이동한 것은 약 45km를 간 것이므로, 말을 타고 이동한 것치고는 먼 거리가 아니다. 이것은 당시에 사대부들이 나들이를 할 때, 혼자 빠르게 말을 달려가기보다는 노복이 고삐를 잡은 채 천천히 걸어가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문신들은 말을 타고 외출할 때 대부분 견마잡이를 데리고 다녔다. 1764년에 백두산을 여행한 朴琮은 말만 있고 마부가 없어 출발 이튿날에 鏡城府에 도착하여 견마잡이를 고용하였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은 여행에 말이 필요하고, 말이 구비되면 견마잡이가 필요한 조선시대의 이러한 상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말이 상당히 비싸서 말을 소유하지 못 한 사대부들이 적지 않았으며, 이들이 유람에 나설 때에는 말을 빌려 타야 했다. 또한 말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 느리거나 힘이 약하면 여행 중간에 다른 말을 빌리는 경우도 흔하였다.
한편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출발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한마리의 말을 이용하였다. 한 마리의 말로 여행을 할 때에는 말을 잘 먹이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오늘날 자동차에 연료가 필요하듯이 말도 매일 꼴을 잘 먹어야 지치지 않고 잘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사적인 유람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가장 잘 먹일 수 있는 驛에 들러 말을 먹였으며,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店幕, 즉 酒幕이나 민가를 이용해 말을 먹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쉴 때 말도 같이 꼴을 먹이고 쉬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여행에 이용한 말은 상당히 다양하였다. 그 소속에 따라 개인이 소유한 말은 물론이고 역에 소속된 역마, 지방관아에 소속된 쇄마, 그리고 지방관아에서 민간으로부터 징발한 말인 雇馬가 이용된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용도에 따라 사람이 타는 말, 즉 騎馬와 짐을 싣는 말, 즉 卜馬의 구분이 있었다. 즉 기마는 사람을 태우는 데만, 복마는 화물을 운반하는 데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역에 배치된 역마도 上等·中等·下等馬로 구분하였는데, 기마는 중등마, 복마는 하등마로 관리되었다. 유람여행에는 주로 기마가 이용되었으나, 많은 짐을 가지고 가야 했던 백두산유람에는 복마도 많이 동원되었다. 김지남의 『북정록』에는 “馱馬 한 필에 싣는 양이 곡식 7말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하나가 더 갈 때 마다 태마의 수는 더 많이 늘었다.”고 적혀 있다. 복마는 기마에 비해 그 가치가 훨씬 적었던 것 같다. 귀양가는 길에 3냥을 주고 l박 2일 동안 기마를 빌렸다는 권복은 귀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5전을 주고 복마는 빌렸다고 기록해 놓았다.
◆ 원문 정보
十三日 朝買馬. 權鶴瑞來謁.
◆ 원문 번역
정미년(1607, 선조40) 1월 13일 아침에 말을 샀다. 권학서權鶴瑞가 와서 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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