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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를 피해 안동 집으로 보낸 아내가 마마에 걸리다
근래 하양현감 김경철의 근심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가뭄으로 보리와 밀이 모두 말라버린 것, 그리고 얼마 전부터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부와 하양현 일대에 마마가 퍼져 여러 사람이 마마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등이다.
고민 끝에 김경철은 일단 자신을 따라 하양현에 와 있는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말을 꺼냈을 때 아내는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경철은 거듭 설득했고, 침 치료를 받기 위해 사람을 부르자 아내는 김경철이 침을 다 맞고 나면 떠나겠다고 했다.
4월 26일부터 시작한 김경철의 침 치료가 5월 3일에 끝났는데,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증세가 나아진 듯하였다. 김경철은 바로 다음 날인 5월 4일에 아내의 행차를 출발시켰다. 아들인 갑동이가 모시고 가고, 손자인 쾌득(快得)도 따라갔다. 행차가 떠나가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계속 김경철을 돌아봤다. 김경철은 자신의 오랜 병환으로 아내의 고생이 더욱 많았던 것을 알기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4일에 아내의 행차를 따라갔던 사람과 말은 10일에 돌아왔는데, 여기서 출발한 지 나흘 만에 집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했다. 조카들이 모두 내려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김경철은 다시 약을 먹으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양의 높은 산마다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이틀에 한 번씩 하양현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다 보니 김경철의 병증이 다시 악화하였다. 너무 아픈 날은 직접 산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기우제를 지내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난 6월 14일에 며칠 전 안동 집에 보냈던 태몽(太蒙)이 돌아와서 집안 식구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몸이 아파 종일 신음하고 있고, 며느리의 병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마마에 걸릴까 봐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냈는데, 신음이 나올 정도로 몸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김경철은 여름 고과에서 최하의 평가를 받고 파직되고 말았다. 모함을 받아 파직을 당하게 되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으나 어차피 병이 낫질 않아 여러 번 사직을 청했던 상황이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게다가 아내와 며느리의 병증이 심상치 않아 마음이 온통 집으로 가 있었으니 빨리 정리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즉시 집에 소식을 알리고 곧 출발하겠다고 전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 갑동이 20일에 하양현에 도착했다. 아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17일에 출발하였으나 물에 막혀 이제야 도착했다고 했다. 김경철은 먼저 식구들의 소식을 물었는데, 아내는 계속 아픈 상황인데 두창(頭瘡)과 상풍(傷風)의 병증이라고 했다. 근심과 염려가 끝이 없었다.
김경철은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기 위해 며칠 동안 서둘러서 하양에서의 신변을 정리하고 25일에 아들과 함께 하양을 출발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의 병세를 살펴보고 병이 나을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병도 깊고, 온 가족이 이리 아프니 답답하기만 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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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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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경상도하양현일록(慶尙道河陽縣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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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경철(金敬轍)
주제 : 질병
시기 : 1761-05-04 ~ 1761-06-2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경산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경철, 김갑동, 김쾌득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경철
◆ 인류가 박멸한 유일한 전염병, 두창
두창(痘瘡)은 천연두(天然痘)·손님·마마(媽媽)·포창(疱瘡)·호역(戶疫) 등 많은 병명으로 불리던 전염병으로 1970년대까지 전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할 만큼 인류를 괴롭히던 바이러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이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두창의 잠복기는 7일~17일 정도이고, 증세는 중한 전신증상(오한·발열·두통·요통 등)과 피부 및 점막(粘膜)에 구진(丘疹)·수포(水疱)·농포(膿疱)·가피(痂皮)의 순서로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발진(發疹)이 나타나고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10∼14일에 딱지가 떨어지면서 서서히 깊은 흉터가 남았다. 예방접종으로 면역이 생긴 경우나 소두창의 경우는 임상 증상이 약하게 나타났다. 두창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으며 주민의 면역상태와 외부로부터의 침범정도 여하에 따라서 산발적·지방병적 또는 유행적으로 발생하였는데, 겨울철에 많고 여름철에 가장 적었다. 환자와의 접촉으로 전파되는데 밀접한 접촉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닫힌 실내에서나 떨어진 곳에서도 공기전염이 될 수 있다. 환자의 호흡기 배설물이나 피부나 점막의 병소에서 나온 분비물로 오염된 사람이나 물품으로도 전파되며, 부스럼딱지는 기간이 일정하지 않으나 전염성이 있다. 초기에는 콧구멍에서, 후기에는 피부로 전파된다. 우리나라에 두창이 전염된 시기는 국내 기록에는 자세하지 않고, 경로는 대부분의 전염병이 그러하듯이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건너 우리나라로 들어오거나, 산둥지방(山東地方)부터 황해를 거쳐 들어오는 두 개의 경로를 통하여 전파되었으며,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번역
신사년辛巳年(1761년, 영조 37) 5월 4일 맑음. 집사람의 행차가 출발하였는데, 갑甲이가 모시고 가고, 쾌快가 따라갔다. 아중衙中이 텅 비었다. 병중의 회포가 더욱 근심스럽고 어지럽다. 6월 14일 맑음. 태몽太蒙이 왔는데, 집사람이 신음하는 증세가 있고, 며느리의 병도 차도가 없다고 하니, 염려스럽다. 비는 끝내 흡족하지 않았고, 물이 높은 곳에는 모내기를 할 수 없고, 보리는 종자를 찾을 수 없다고 하니, 경탄을 이기지 못하겠다. 앞으로의 생계는 대책이 없다고 할 수 있으니, 지금의 상황은 신을辛乙의 해와 다름없다고 한다. 유순백柳淳伯 어르신이 대사간이 되고, 이맹윤李孟潤은 옥당玉堂 동벽東壁이 되었는데 춘방장관春 坊長官을 계속 겸임하고, 권자강權子剛은 또 복직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조예皂隸가 쇠실로부터 돌아와서, 문안편지를 받았다. 15일 흐림. 여름 고과(夏課)를 보니 거수居水가 나왔다. 그 조목에 “유약하여 교활한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기도하기를 제사지내지 않는 듯이 하였다(柔未戢猾 禱如不祭).”라고 적혀있었다. 이는 고을 사람 두세 명이 장중권張重權이라는 놈을 꾀어 부추겨서 영문에 모함하는 소장을 내었기 때문인데, 윗 구절은 이 일을 지적한 것이다. 아래 구절은 내 병이 생사에 걸려 있어서, 9차례 기우제를 지냈지만, 친히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하인청下人廳으로 나가서 묵었다. 사람을 집에 보내어 기별을 하였다. 어두워지자 겸임兼任 경산현령慶山縣令 이이병李㶊炳이 말을 달려 도착 하여, 바로 인신印信·병부兵符·열쇠를 찾고, 각 창고를 봉하기를 별똥별의 불꽃보다 더 급하게 하고 호령號令이 민첩하여 바람이 일어났다. 가소롭다. 19일 흐리다가, 밤에 비가 옴. 관차官次를 떠난 뒤부터, 병세가 날마다 점점 더 좋아져서, 역증逆症·염식厭食·두통 등의 증세가 모두 줄어들었다. 20일 아침에 비가 내렸다가 늦게 개었고, 저물녘에는 맑음. 아이가 들어와서, 17일에 출발하였으나 물에 막혀 이제야 도착했다고 한다. 집 사람에게 두창頭瘡과 상풍傷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염려스럽다. 사창司倉에서는 양맥兩麥을 다 받았다고 한다. 사람을 해평海平에 보냈다. 22일 맑음. 사창司倉의 보리 환곡을 민호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병이 더 나아졌다. 상지上枝 사람이 돌아갔고, 해평海平에 갔던 사람은 돌아왔다. 25일 흐리고 바람이 붐. 출발하여, 신녕주막新寧酒幕에서 점심을 먹었고, 주쉬主倅 서회수徐晦修가 나와서 작별하였다. 금곡역촌金谷驛村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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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 손자가 먼저 안동 집으로 가다
1760-04-15
경상북도 경산시
2
유장(由狀)을 보내 휴가를 청하다
1760-05-01
경상북도 경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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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포제관으로 차임되다
1760-07-21
경상북도 경산시, 대구시
4
아들이 본가에 있던 아내를 모셔 오다
1760-08-19
경상북도 경산시
5
신녕현감 서회수와 은해사의 단풍을 구경하다
1760-09-20
경상북도 경산시, 영천시
6
왕세손의 관례를 축하하는 교문이 당도하다
1761-04-18
경상북도 경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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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가 돌아 아내를 본가로 보내다
176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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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으로 보리와 밀이 마르고 황모까지 들었으니 흉년...
176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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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에 종자마저 부족하다
176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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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의 후임으로 이귀응이 하양현감으로 정해지다
176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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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하다
176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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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내던 주변 사람들의 승진 소식을 듣다
176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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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을 모함했던 자를 경산현령이 그냥 풀어주었다는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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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집안 아이들이 감시와 동당시를 보러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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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도 아프고 아내의 병도 깊으니 심란하기만 하다
176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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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종두법을 시행하다
1875-02-06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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