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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부의 수해를 구제하고자 구제금을 모아 보내기로 하다
1933년 윤5월 13일 아침 훈시 시간에 송기식 선생은 황희 정승과 김종서의 일화를 들려주셨고, 오전에는 법제와 경제로 시험을 쳤는데, 문제는 ‘후견이란 무슨 뜻인가?’와 ‘상속의 두 큰 주요 유언이란 무엇인가?’였다.
오후에는 날이 더워서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이 냇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심상석도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 한시 한 수를 지었다.
녹동서원에 돌아온 후 심상석은 전날 저녁 신문에서 본 조선 남부의 수재 소식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수재민이 46,000명에 이르고, 손해액은 일천만 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였다. 명교학원의 선생님 이하 수강생 모두가 합동으로 구제금 5원을 내어 장차 신문사에 부치기로 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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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녹동일기(鹿洞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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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심상석(沈相碩)
주제 : 수해
시기 : 1933-05-13 (윤)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심상석, 송기식, 김영의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1933년 7월 영남 지방의 수해
1933년 여름, 특히 7월 초부터 영남 지방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 집중 호우로 인해 낙동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이 범람하면서 경상남북도 일대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수해는 당시 기록으로 보아 이전이나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의 자연재해였다. 주요 피해 상황을 보면 인명 피해는 낙동강 유역에서만 13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남부 지방 전체적으로 179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확한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수많은 가옥이 침수되거나 파괴되었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가옥 300여 호가 파괴되기도 했다.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읍내 대부분 지역이 침수되어 안동역 근처는 수심 2m에 달했으며, 300년 이상 된 영호루가 유실되었다. 낙동강 유역에서는 113,983정보(약 1,130㎢)의 농경지가 침수되었고, 남부 지방 전체적으로는 203,138정보(약 2,015㎢)에 달하는 광대한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울산 구시가지에서도 하루 동안 216.9mm의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침수 피해가 발생했는데, 특히 정전으로 배수펌프가 멈춰 피해가 더욱 커졌다. 도로와 철도가 유실되거나 침수되어 교통이 마비되고, 통신망도 끊기는 등 사회 기반 시설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수해 이후 군민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민대회를 열었고, 그 결과 1936년부터 영호강 사방 공사가 시작되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언론사는 수해 현장에 활동사진반을 동원하여 생생한 피해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신문 보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자들에게 현장의 참상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한 시도였다.
◆ 원문 번역
1933년 윤5월 13일 壬申 수요일 오일 맑음 아침에 송 선생이 제생에게 훈시하사 말하시길, “옛날 황방촌黃尨村 희喜가 성품과 도량이 크고 너그러워 비록 가인 노복이라도 꾸짖지 않았다. 김절재金節齋 종서宗瑞와 함께 잘 지냈는데, 절재가 공께 청하여 술자리를 마련하여 공과 함께 마시고 돌아갔는데, 이때는 금주禁酒 기간이었다. 공이 다른 날에 조정에 들어가 절재를 성토했으니 가히 정대한 덕을 볼 수 있다.” 오후에 여러 선생이 더위가 지금 심하므로 강연시간을 미루어 잠깐 냇가의 시원한 곳에 바람을 쐬고자 하여, 제생을 인솔하고 한 곳의 개울물이 흘러 시원한 곳에 이르러 안동주安東周 박장현朴章鉉과 여럿이서 목욕을 하고 잠시 쉬었다. 김 선생님을 따라 호압산사虎壓山寺를 올라가 불상을 보고, 상봉에 올라 북으로 한성을 바라보고, 남으로 인천 바다를 바라보았다. 조금 후에 선생님이 돌아가고자 하거늘 나는 장학천張鶴天 장광주張光珠와 여러 형들의 뒤를 따라 내려와 반천정盤泉亭에 이르니 수석이 아름다웠다. 송 조 선생과 제형이 이미 먼저 올랐다. 서로 목욕도 하고 서로 시를 읊기도 하여 재미가 흡족하였다. 나는 또한 다시 맑은 물에 씻고 약수를 마시니 갑자기 정신이 깨끗함을 느꼈다. 다음으로 문묘를 받들어 살펴보고, 날이 저물어 돌아왔다. 오전에 법제와 경제로 시험을 쳤는데, ‘후견이란 무슨 뜻인가?’ ‘상속의 두 큰 주요 유언이란 무엇인가?’ 서면으로 응답했다. 어제 저녁 신문을 보니 남선南鮮의 수재 소식이 있었는데, 수재민이 46,000명 손해액이 일천만 원이라 듣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였다. 선생님 이하 제생 모두가 합동으로 오 원의 돈을 내어 구제의 뜻을 표하고 장차 신문사에 부치려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각자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산에 올라 한줄기 휘파람 소리로 塵界의 근심을 씻어내니 登臨一嘯滌塵愁, 문득 몸이 사물의 밖에 노님을 깨닫겠도다. 忽覺身從物外遊. 많은 숲 들쭉날쭉 푸른 산에 우뚝하니 萬樹參差山碧立, 하나의 정자 깨끗하고 흐르는 물도 맑구나. 一亭蕭灑水清流. 소매 걷고 반나절 전후를 같이 하니 攜襟半日同前後, 걷고 걸어서 언제쯤 정상에 오를까? 進步何時到上頭. 가슴은 유연히 얻음이 있는 듯하고 胷次悠然如有得, 풍우風雩의 기상을 이 가운데 찾으리. 風雩氣像此中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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