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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의 패배
이순신 대신에 통제사가 원균이 1597년 7월에 수군들을 이끌어 왜적을 맞이하여 적의 소굴을 바로 쳤는데, 조선의 6척이
서생포(西生浦)
에 표류했고, 한 척은 침몰했다.
원균이 다시 7월 14일에 배 200여 척을 이끌고 나가서 공산에서 적을 맞이하여 치고는
영등포(永登浦)
에 배를 머무르게 했는데, 16일 밤에 적이 밤에 몰래 숨어 있다가 동이 트자 적선이 와서 사면을 포위하고 공격하니, 조선군이 크게 무너져 원균은 바다에 빠져 사라지고 충청병사 최호도 죽었다. 수군 중에 죽거나 물에 빠진 자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원균이 패배한 것은 원수 권율이 곤장을 치자, 이에 성이 난 원균이 급히 군사를 몰아나가 적의 세력이 많은지 적은지를 고려하지 않고 싸운 탓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고대일록(孤臺日錄)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정경운(鄭慶雲)
주제 : 조선군의 패배
시기 : 1597-07-10 ~ 1597-07-18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거제시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이순신, 원균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원균의 패전
일본군은 1597년에 전쟁을 재개하면서 남해안의 제해권 확보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조선수군의 지휘체계를 와해시키기 위한 책략으로써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다. 이에 일본군 측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첩자인 요시라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보내어 1월 21일에 가토 키요마사가 조선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면서 해상에 매복하면 생포할 수 있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러한 제보를 믿고 이순신에게 출동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를 믿지 않고 출동하지 않자, 조서 조정은 이순신을 파직하고 전 경상우수사 원균을 통제사로 임명하였다.
1597년 7월 초순 일본군은 6백여 척의 선단을 부산에 입항시켰다. 이에 원균은 5월 14일 새벽에 총 백여 척을 이끌고 부산으로 항진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칠천량에서 이를 봉쇄하고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조선 수군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 칠전량해전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일본군은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자, 그들이 정유재란을 개시하면서 구상했던 수륙병진작전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정유(丁酉, 1597) 7월 10일 기해(己亥) 통제사 원균(元均)이 주사(舟師)를 이끌고 왜적을 맞이하여 치면서 적의 소굴을 바로 공격했는데, 우리 배 6척이 서생포(西生浦)에 표류했고, 한 척은 침몰했으며, 나머지 배는 살아 돌아왔다고 들었다. 7월 18일 정미(丁未) 해가 기울 무렵에 박공간(朴公幹)이 서원에 왔고, 황혼에 황덕장(黃德璋)이 의령(宜寧)으로부터 서원에 왔다. 황이 말하기를, “통제사 원균이 14일에 배 200여 척을 끌고 나가서, 공산(公山)에서 적을 맞이하여 치고는 영등포(永登浦)에 배를 머물러 두고 있었습니다. 16일 밤에 적이 와서 밤중에 기습하였으나 배를 묶어 두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이 트자 적선이 와서 사면을 포위하고 공격하니, 아군이 크게 무너졌습니다. 원균(元均)은 바다에 빠져 사라지고 충청 병사 최호(崔浩)도 죽었습니다. 주사(舟師) 중에서 죽거나 물에 빠진 자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은 일이 글렀음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서 포위를 뚫고 나와, 곧바로 한산(寒山)에 다다라 남은 배에다 군사를 싣고 급히 도망하면서 군량과 기계를 전부 태워 버렸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호라! 우리나라가 의지한 것이 수군(주사)이었는데, 원균이 원래 통어할 만한 인재가 아니었음에도, 갑자기 이순신(李舜臣)을 파직하고 원균으로써 대신하게 했고, 원수 권율(權慄)은 원균을 곤장까지 쳤다. 원균이 때문에 성이 나서 급히 군사를 몰아 나가면서 세력의 많고 적음도 고려하지 않고, 계속 바다에 배를 띄워 다 함께 침몰하는 패배를 당하였다. 이는 실로 조정의 정책이 마땅함을 잃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서, 원수의 방략이 어긋나 날마다 함부로 전투를 벌여 일의 기틀을 크게 잃은 것이다. 원균 같은 자야 죽어도 아까울 것 없지만, 나랏일을 어찌하며 백성들은 또 어찌 할 것인가! 온 나라 사람이 한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듣고, 너무나 놀라 모두 이제 다 죽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十日己亥 聞統制使元均領舟師邀擊倭奴直擣賊窟我國船六隻漂流于西生浦一船陷沒餘船生還 十八日丁未 日昳朴公幹來院黃昏黃德璋自宜寧來院 黃之言曰統制使元均十四日領船二一日餘隻邀擊于公山船于永登浦 十六日夜分賊來夜驚繫舟不動 黎明賊船來圍四面攻擊我軍大潰元均陷沒忠淸兵使崔浩死焉 舟師或死或溺不知其數 慶尙右水使裵楔知事不濟引軍潰圍而出經到寒山以餘船載軍而奔軍餉器械盡爲焚之嗚呼 我國之所恃者舟師 而元均本非統御之才而遽罷李舜臣代以元均 元帥權慄决杖元均 均由是憤恚急驅士卒莫念衆寡之勢連泛海上以致淪胥之敗 實由於庙筭之失宜元帥之乖方連日浪戰大失事機如均者死不足 惜國事奈何生民奈何 一國之人聞寒山失守 駭膽慄魄皆懷溘然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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