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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두루마기, 대나무 갓, 글자를 수놓은 가사 - 지극한 이치가 갖추어진 승려들의 복식
1793년 8월 22일, 이옥은 북한산 유람 중이었다. 절들을 돌아보니 승려〔緇髡〕 12(十二則)
승려의 옷은 베로 만든 두루마기이거나 푸른 면포로 만든 두루마기이거나 또는 검은 베로 만든 직철(直綴, 윗옷과 아래옷을 하나로 합쳐 꿰맨 장삼) 두루마기였는데, 소매는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였다.
승려들의
갓
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단통모(短桶帽), 포량첨건(布梁簷巾), 폐양립(蔽陽笠, 패랭이) 등이 있고, 대나무 껍질을 짜서 만든 것으로 대립(籉笠)이 있는데, 거기엔 입첨(笠簷)이 있어 사립(絲笠, 명주실로 싸개를 하여 만든 갓)과 비슷하며, 위는 항아리 같은데 그 꼭대기는 병(缾)의 입 모양처럼 되어 있다.
승려들의 띠는 대체로 명주실로 땋은 것이다. 혹 명주실로 땋은 것 중에 붉은 끈을 맨 자는, 옥이나 금으로 만들어 망건의 당줄을 꿰는 작은 고리를 모자에 붙이기도 하였다. 또 아의(鴉衣)를 입고 털로 짠 벙거지를 쓰고, 벙거지 꼭대기에는 홍이(紅毦, ‘이’는 새의 날개에 여러 빛깔로 물들여 군복·말안장·투구·전립 등을 꾸미는 것, 속칭 상모)를 나부끼며, 허리에는 청금대(靑錦岱)를 늘어뜨려 엉치 부분에 이르고, 쟁그랑 쟁그랑 쇳소리를 내며 걷는 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승려로서 군직(軍職)에 있는 자였다. 승려의 염주는 나무로 만들어 옻칠한 것이 많았는데 가난한 자들은 율무로 만든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사는 모양이 보자기 비슷하지만, 타원형이며 비늘을 이어놓듯 만드는데, 옷의 좌우에 월광보살(月光菩薩)이라고 수놓은 글자를 붙였다.
월광보살이라는 글자에는 자주색, 녹색, 푸른색의 끈 세 개를 늘어뜨렸다.
승려의 말에,
“이 옷을 꿰매는 데에는 법도가 있고, 길이는 정해진 치수가 있고, 만들 때는 기탁하는 바가 있어, 감히 잘못되게 할 수도 없고 감히 함부로 다룰 수도 없습니다. 여러 부처님이 비호해 주는 바요, 지극한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승가사에서 붉은 면포로 만든 가사를 한 번 보았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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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중흥유기(重興遊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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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옥(李鈺)
주제 : 놀이와 유람, 유람과 감상
시기 : 1793-08-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옥, 민사응, 김려, 김선, 서치범, 봉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승려의 복식
조선의 승려는 억불정책으로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도첩제로 인하여, 중이 되기 위해서는 도첩(자격증)을 받아야 했다. 또 승군을 두어 산성을 지키거나, 성과 궁을 짓는 노역에 동원되기까지 하여 고달픈 삶을 살았다.
초기불교교단은 무소유의 청정 수도 교단으로 출발하여 후일 승원제도가 확립되면서 인도 전역과 중국,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각 지역의 현실적인 기후 조건과 문화적 전통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의생활의 경우 무더운 기후의 인도에서 형성된 옷의 규정과는 달리, 추운 날씨의 한대 지역인 중국, 한국의 승려복식은 바지, 저고리 위에 편삼(偏衫)이라고 일컫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입게 되었다.
승복은 승려가 입는 의복을 통칭하여 승복이라 하며, 승의(僧衣) 또는 법의(法衣)라고 한다. 원래 부처님은 가사를 제정하여 타 교단과 구별지우면서 수행자의 의복으로 기본을 삼았지만 그 뒤 인도에서는 가사를 사계절 평상복으로 착용하면서 수행자들의 의복을 일컬었다. 중국에서는 기후와 의습 속의 차이에 따라 편삼, 군자, 직철을 입게 되자 이 모두를 법의라 부르며 가사는 편삼 위에 걸치게 되었다. 법복은 처음에 삼의(三衣) 즉 가사만 가리켰으나 후세에는 가사 아래에 편삼, 군자, 직철을 입게 되자 이 모두를 법의라 부른다.
편삼(偏?)은 인도에서는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나라와 중국등에서 나타나는 옷으로, 대의를 우견편단식으로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었을 경우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를 덥기 위해서 입는 것이다. 추운 지방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입었던 옷이 분명하다. 이것은 위내의 한 자락이 왼쪽 어깨를 돌아 오른쪽 어깨로 오면 바로 편삼이 되므로 위내의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편삼으로 볼 수 없는 불의가 많이 착용되는데, 저고리 혹은 두루마기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스님들은 일찍부터 바지, 저고리를 기본으로 입고 그 위에 의식을 행할 때만 장삼과 가사를 걸쳤기 때문에 이러한 착의법이 불상에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중엽부터 고려말까지 천년동안 흑 장삼과 붉은 가사를 받아들여 전통적인 우리 옷 바지저고리 위에 장삼을 입고 가사를 착용하였다. 승복은 대체로 가사, 장삼, 승관(僧冠), 승혜(僧鞋)로 구성된다.
조선시대 승복은 조선초에 일본에 전해 준 목록으로도 추정할 수 있는데, 대홍라가사 (大紅羅袈裟)를 일본에 전한 것으로 미루어 붉은 가사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때 의금령(衣禁令)에 “승려의 의복은 흑색 사용을 금하였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대체로 시색(?色: 회색 비슷한 거므스름한 색)을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색은 승복의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 승려들의 장삼과 평복 및 소지품에 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고승대덕 영탱중 ‘제월당대선사진영’을 보면 흑색으로 된 소매가 넓은 장삼에 홍색 가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분적으로는 흑색 전통의 승복을 입기도 한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영탱의 경우, 회색 장삼에 홍색 가사를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청색이나 갈색의 장삼에 가사는 붉은 색을 하고 있다. 이때의 승복은 대홍라 가사·자라괘자·남색라 장삼·자사·피승혜가 있었다. 장삼은 법의로 상의하상을 허리에서 연결한 것이다. 모자에는 승관·송낙·고깔·굴갓·대삿갓 등이 있으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쓰지 않았다. 신은 검소하게 짚신이나 삼신을 많이 신었고 가죽신도 신었다.
구체적으로 승복을 보면 회색 장삼위에 붉은색 가사를 착용하고 머리에는 연꽃 모양으로 만든 연화관을 쓰고 넓은 소매의 장삼을 회색 사(紗)나 베로 만들어 가사는 마포(麻布)에 괴색(壞色)을 염색하여 사용하였으나, 후에 와서는 비단이나 사(紗) 등으로 만들었다. 오른쪽 어깨에 걸치는 가사는 108쪽의 천으로 만들었으며 목에 건 염주 역시 108개의 구슬로 만든다.
현재 한국 승려들이 의식을 집전할 때 입는 옷을 보면 내의(속옷)와 바지, 저고리(東方)에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수한다. 우리나라에서의 가사는 승복 위에 입는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옷이 되었다. 여기서 가사를 제외한 장삼, 동방, 바지는 한국의 전통적 복식이며 가사만이 부처님 당시의 복식이다. 포괄적으로 보면 오늘날의 승복은 출가수행자의 옷이긴 하나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들이 입던 옷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현재 조선시대 가사의 원형을 가장 가깝게 계승하고 있는 종단은 태고종의 가사이다. 가사, 장삼, 동방 등 승복을 제외한 모자, 신발에서는 현대의 다양한 공산품이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모자와 신발을 착용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 원문 번역
승려의 옷은 베로 만든 두루마기이거나 푸른 면포로 만든 두루마기이거나 또는 검은 베로 만든 직철(直綴) 두루마기였는데, 소매는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였다. 승려들의 갓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단통모(短桶帽), 포량첨건(布梁簷巾), 폐양립(蔽陽笠)[ 패랭이 ]등이 있고, 대나무 껍질을 짜서 만든 것으로 대립(籉笠)이 있는데 거기엔 입첨(笠簷)이 있어 사립(絲笠)과 비슷하며, 위는 항아리 같은데 그 꼭대기는 병(缾)의 입 모양처럼 되어 있다. 승려들의 띠는 대체로 명주실로 땋은 것이다. 혹 명주실로 땋은 것 중에 붉은 끈을 맨 자는 옥권(玉圈) 또는 금권(金圈)을 모자에 붙이기도 하였다. 또 아의(鴉衣)를 입고 털로 짠 벙거지를 쓰고, 벙거지 꼭대기에는 홍이(紅毦)를 나부끼며, 허리에는 청금대(靑錦岱)를 늘어뜨려 엉치 부분에 이르고, 쟁그랑 쟁그랑 쇳소리를 내며 걷는 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승려로서 군직(軍職)에 있는 자였다. 승려의 염주는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것이 많았는데 가난한 자들은 율무로 만든 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사는 모양이 보자기 비슷하지만 타원형이며 비늘을 이어놓듯 만드는데, 옷의 좌우에 월광보살(月光菩薩)이라고 수놓은 글자를 붙였다. 월광보살이라는 글자에는 자주색, 녹색, 푸른색의 끈 세 개를 늘어뜨렸다. 승려의 말에,
“이 옷을 꿰매는 데에는 법도가 있고, 길이는 정해진 치수가 있고, 만들 때에는 기탁하는 바가 있어, 감히 잘못되게 할 수도 없고 감히 함부로 다룰 수도 없습니다. 여러 부처님이 비호해 주는 바요, 지극한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승가사에서 붉은 면포로 만든 가사를 한 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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