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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지팡이에서 비옷까지, 그러나 잊은 것이 꼭 하나 - 며칠 동안 행장을 꾸리다
1793년 8월 22일, 행장〔行李〕2칙(二則)
이자(李子)는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멀리 교외로 나가는 자를 보니 계획을 거듭하고 돌아올 날짜를 망설이면서 며칠 동안 심신을 허비하여 행장을 꾸렸는데도 매양 미흡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라고 하였으니, 나귀나 말 한 필, 동자로서 행구를 가지고 갈 종자 한 명, 철쭉나무 지팡이 하나, 호리병 하나, 표주박 하나, 반죽(班竹, 얼룩반점이 있는 대나무) 시통(詩筒) 하나, 통 속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시권(詩卷) 하나, 채전축(彩牋軸, 시를 지어 쓰는 무늬 있는 색종이 묶음) 하나, 일인용(一人用) 찬합 하나, 유의(油衣, 비옷) 한 벌, 이불 한 채, 담요 한 장, 담뱃대 하나, 길이가 다섯 자 남짓한 담배통 하나를 준비하였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나섰다. 스스로 잘 정돈되었다고 여겨 흐뭇해했는데 5리쯤 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잊은 것이 붓과 먹과 벼루였다.
일행에게는 짧은 담뱃대 두 개, 허리에 차는 작은 칼 두 개, 담배주머니 셋, 화겸(火鎌, 불을 일으키는 도구) 세 개, 천수필(天水筆) 한 자루, 견지(蠲紙) 세 폭이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 갈아 신을 미투리 한 켤레씩을 신었으며, 손에 접는 부채 하나씩을 쥐었고, 주머니 속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 오십 전뿐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중흥유기(重興遊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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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옥(李鈺)
주제 : 놀이와 유람, 유람과 감상
시기 : 1793-08-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옥, 민사응, 김려, 김선, 서치범, 봉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111호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유산의 풍습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유람행위를 이해하기 위하여, 문헌자료인 ‘산수유람록’에 나타난 선인들의 유람행위와 양상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를,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기록인 ‘지리산 유람록’에서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국문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총 9편의 지리산 유람록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누렸던 산수 유람현상의 일면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산수유람록’에서 확인 가능한 ‘일시, 나이·신분, 동기, 성격, 동행인, 이동 수단, 여정, 숙식, 경비, 준비물, 유흥, 난관, 주객 관계, 유람자의 의식’이라는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만든 뒤, 항목별로 개별 유람록을 분석하여 필요한 정보를 추출한 후,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고찰해보면,
① 일시 ― 시기: 음력 3월 말∼4월 말, 8월 중순∼10월 중순/ 계절: 봄, 가을/ 기간: 5~17일, 관직에 있는 경우는 9일을 넘지 않음
② 나이, 신분 ― 나이: 26∼71세(나이와 유람기간과의 상관관계는 없음)/ 신분: 사대부
③ 동기 ―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 유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해/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속세를 벗어나 은일(隱逸)의 뜻을 펴기 위해
④ 성격 ― 사적인 여가행위/ 관직에 있으면서 임의로 유람/ 대부분 관직이나 사대부의 지위 활용/ 유람 시 公私의 구분을 엄격히 하지 않음/ 재방문인 경우도 많음/ 은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음
⑤ 동행인 ― 지인의 권유와 상호 약속으로 팀을 구성/ 아전, 종자(從者), 요리사, 짐꾼, 기생, 악공, 승려 동행/ 30~4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유람행렬을 이룸
⑥ 이동 수단 ― 도보, 말, 노새, 배, 藍輿(남여, 가마)/ 승려의 등에 업혀/ 허리에 끈을 묶고 승려에게 끌려/ 하루 평균 20~50리의 산길을 이동
⑦ 여정(旅程) ― 대부분 인근 지역(근거리)에서 접근하여 산에 오름/ 선유(仙遊)를 희구하거나 은둔의 뜻이 있는 자 외에는 모두 천왕봉에 오름
⑧ 숙식 ― 지리산 밖의 왕로(往路)·귀로(歸路)에서는 민가·현창(縣倉)·역관(驛館)·관사에서 숙식/ 산중에서는 절·암자·사당·움막에서 숙식/ 가을 산에서 다래·배·홍시를 먹음
⑨ 경비 ― 자비가 기본/ 돈이나 식량을 얼마간씩 추렴하였을 것으로 추정/ 숙식을 제공한 곳에 쌀을 남기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유람 도중 현지 선비·백성·지인·승려·수령들로부터 쌀·술·음식·노자 등을 제공 받음
⑩ 준비물, 장비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수친서(壽親書)』를 보고 필요한 도구를 준비/ 짚신, 미투리, 행전(行纏), 대지팡이, 도롱이, 삿갓, / 옷, 솜옷, 갖옷/ 피리, 시집, 문방사우/ 이불, 베개, 방석/ 쌀가루
⑪ 유흥(遊興) ― 종이나 악공들의 악기(생황, 피리, 태평소, 비파, 북) 연주/ 기녀의 창/ 음주가무/ 시작(詩作)
⑫ 난관(難關) ― 구토, 설사, 감기/ 양식과 말 먹이가 모자람/ 갈증/ 추위
⑬ 주객(主客) 관계 ― 손님: 사대부/ 주인: 백성, 승려/ 승려의 역할: 유람 안내, 문화자원 해설, 숙식 제공, 남녀(藍輿)를 멤/ guests는 관직이나 사대부의 지위를 직·간접적으로 활용/ 승려는 세금과 부역을 감해 받기 위해 사대부에게 편의를 제공/ 대규모의 유람행렬은 현지 백성과 승려들에게 접대의 부담을 주고 폐를 끼침/ 관직에 있는 자는 유람을 하면서 현지 백성들의 이목에 신경을 씀
⑭ 유람자의 인식, 의식 ― 은일의식(隱逸意識)/ 유자(儒者)의 본분을 강조한 선유(仙遊)/ 유교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불교와 무속의 허탄함 비판/ 애민의식(愛民意識)/ 지리산을 관광의 대상뿐 아니라 생활과 은거의 공간으로 인식/ 자아성찰(自我 省察)과 심성수양(心性修養) 의식
등으로 조선 사대부들의 산수유람 행태를 알 수 있다.
지방관이나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산수를 유람할 때 동행도 많았고 가마꾼의 도움을 받거나 노새·암말을 타고 갔으며, 산 밑에 이르러서는 젊은 승려들이 메는 담여에 올라 산허리까지 이르렀다. 숙소로는 사대부들의 경우 관현의 숙소를 이용하거나 촌민의 집을 빌렸지만, 방랑자 김시습(金時習)처럼 가난한 선비들의 경우는 종자만 데리고 가거나 노숙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몽인의 『두류산 유람록』을 보면 동행한 사람들은 각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고 새끼로 동여매고 길을 갔다. 또『수친서(壽親書)』,『양로서(養老書)』와 같은 여행지침서를 참고하여 여행준비물을 갖추었다.
대개, 여행 준비물로는 짚신·나막신·도롱이·삿갓·배로 만든 행정·솜옷·지팡이·쌀·김치·간장·말린 꿩고기·미숫가루·홍시·꿀·대래·베개·방석·종이·벼루·붓·먹·시집 등이다. 눈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짚신을 신었었다. 또한 옷·이불·베개·방석 등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이미 그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 작성한 유람록과 지도, 그리고 독서할 서적을 챙겼다. 바랑은 오늘의 냅색의 근원이요, 지팡이는 피켈, 행정은 스패츠이었다. 정구(鄭逑)는 1579년 9월 10일 가야산 유람을 떠나면서 쌀 한 말, 술 한 통, 반찬 한 합, 과일 한 바구니와 책 몇 권을 꾸려 나섰다.
◆ 원문 번역
행장〔行李〕2칙(二則)
이자(李子)는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멀리 교외로 나가는 자를 보니 계획을 거듭하고 돌아올 날짜를 망설이면서 며칠 동안 심신을 허비하여 행장을 꾸렸는데도 매양 미흡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라고 하였으니, 나귀나 말 한 필, 동자로서 행구를 가지고 갈 종자 한 명, 척촉장(躑躅杖) 하나, 호리병 하나, 표주박 하나, 반죽(班竹) 시통(詩筒) 하나, 통 속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시권(詩卷) 하나, 채전축(彩牋軸) 하나, 일인용(一人用) 찬합 하나, 유의(油衣) 한 벌, 이불 한 채, 담요 한 장, 담뱃대 하나, 길이가 다섯 자 남짓한 담배통 하나를 준비하였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나섰다. 스스로 잘 정돈되었다고 여겨 흐뭇해했는데 5리쯤 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잊은 것이 붓과 먹과 벼루였다.
일행에게는 짧은 담뱃대 두 개, 허리에 차는 작은 칼 두 개, 담배주머니 셋, 화겸(火鎌) 세 개, 천수필(天水筆) 한 자루, 견지(蠲紙) 세 폭이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 갈아 신을 미투리 한 켤레씩을 신었으며, 손에 접는 부채 하나씩을 쥐었고, 주머니 속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 오십 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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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고 《나귀를 탄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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