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천만 냥을 들여도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기기한 묘법 - 조선 사신일행의 눈에 비친 불꽃놀이와 서커스
원명원 문 둘을 거쳐 들어갔더니 전각이 있는데, 전각은 모두 2층에, 단청(丹靑, 여러 가지의 고운 빛깔)으로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마치 날아갈 듯 높고 넓었다.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네 글자로 편액을 하고, 침향목(沈香木)으로 난간과 기둥을 했는데, 앞의 기둥은 열둘이었으며, 뜰에도 역시 침향목을 가지고 꽃나무가 뒤얽혀진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드디어 뜰 난간 밖에 일제히 섰다. 조금 후에 뭇 포성이 안으로부터 일제히 울려 퍼지고, 황제가 전각 아래층에 나앉았다. 그리고 무악(舞樂)이 차례로 벌여졌는데, 모두 어제 보던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모자에 깃[羽]을 꽂고 그림 그려진 방패[干]를 짊어지고서 춤추는 자가 있었는데, 간우(干羽)의 춤이 옛날엔 어찌 이와 같았으랴?
전각 뜰에는 높이 서너 발쯤 되는 가목(架木)을 설립하고, 가목에는 마치 사다리 모양과 같이 가로 목(木)을 설치했으며, 맨 위층에는 각각 2개의 가로 목을 설치했는데, 그것은 마치 남여(藍輿) 밑에 가로 댄 나무와 같았다.
가로 목 양단에는 또 자그마한 가로 목을 설치, 그로 하여금 마치 돌쩌귀가 도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유동성 있게끔 하였다.
위층에 가로 목을 설치한 것은 모두 네 군데였다. 그리고 채색 옷을 입은 여덟 사람으로 하여금 검은 실을 엮어서 목에다 걸게 했는데, 바라보니 마치 치렁치렁 늘어뜨린 더벅머리와 같았다.
매양 한 사람씩 두 가로 목 머리에 각기 서서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오고, 하나가 내려오면 하나는 올라가곤 하여, 잇달아 나부껴서 아스라이 허공에 떠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구경꾼 중에는 그만 멍하니 얼이 빠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는 바로 서양 추천(西洋鞦韆)이란 것이었다.
또 뜰 양쪽 가에는 각각 큰 기둥 하나씩을 세우고, 거기에 수놓은 비단을 입혔으며, 그 위에는 여덟 모가 난 채색 처마를 가설했다. 그리고 각 모퉁이엔 마치 우리나라 그네처럼 줄을 드리웠는데, 여덟 사람이 일제히 줄을 붙잡고 몸을 뒤쳐 우쭐거리면 그 기둥은 계속 회전하였으니, 그것 또한 하나의 기이한 구경거리였다.
또 한쪽 가에 한 기둥을 세우고, 한 가닥 긴 줄을 매어 기둥 아래에 비스듬히 버텨놓았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맨발로 버텨 놓은 줄 위에 서서, 더러는 한 발을 오므리기도 하고, 더러는 한 발을 미끄러뜨리기도 하여, 곧 떨어질 듯하였다.
그리고 한 사람은 모자를 벗어서 땅에 던지면, 다른 한 사람은 기둥머리에서 바라보고 섰다가 차고 있던 화살을 뽑아 활을 당겨 쏜다. 그는 그 모자를 과녁으로 삼고 반드시 맞히기를 기약, 화살 셋을 다 쏜 다음에야 그만두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 재주씩 끝마치고 나면 곧 전각 앞에다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면 시신(侍臣,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신하)은 반드시 그들에게 은(銀)과 비단 종류를 나눠 주었다.
모든 등(燈)은 다 바쳐지고 날은 어두워 갔다. 이때 등을 달게 했다. 전각 처마 및 뜰 난간엔 모두 양각등(羊角燈)을 벌여 달았다.
처마 양쪽 곁엔 각각 채붕각(彩棚閣)을 세우고 채붕각 안엔 푸른 돌로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그리고 좌우 전후에도 역시 이 양각등을 다 달았다.
또, 양쪽 변두리엔 처마가 날아갈 듯이 얹힌 큰 기둥 하나를 세우고, 8면에는 여덟 줄로 수십 층 등을 달았는데, 등들은 바람에 건들거려 찌걱찌걱 소리가 났다.
또, 비문(碑門) 모양으로 가목(架木) 하나를 설치하고 하나의 큰 상자를 달았으며, 상자 밑에는 화승(火繩)을 드리워서 불을 붙였다. 불이 타서 화승이 다하면, 상자 밑의 한 판자가 열려서 저절로 떨어지고 상자 속에서 한 덩어리 종이 뭉치가 날아나 쪼개져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하여 갑자기 채색 옷 입은 선동(仙童)단영(丹楹)ㆍ화사(畫榭)ㆍ기이한 동물과 새들이 첩첩이 생겨 나왔다. 그는 모두 등의 형태가 동일치 않은 것들이었는데, 뭐라고 형언할 수 없었다.
어느덧 큰 화광이 저절로 훨훨 타서 일시에 수많은 등 속이 밝아졌다. 그것은 마치 수은(水銀)이 잇달아 공중에 흩어져 떨어진 것과 같았다.
또, 불이 다 타면 먼저 나온 것은 모두 뜰에 떨어지고, 또 앞서처럼 층층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는 더러 병처럼 생긴 등도, 수박처럼 생긴 등도, 동이처럼 생긴 등도 있었다.
북 속에서는 매양 하나씩 쏟아져 내렸는데, 그 수효는 모두 10여 개 이상이었고, 줄 수는 대범 10여 줄이었다. 이와 같은 것이 또 3, 4층이었고, 게다가 다시 모진 북을 번갈아 달았으니, 한 북 속에 수천 등을 장치해 놓았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또, 양쪽 가의 가목엔 각각 큰 궤짝을 달았는데, 궤짝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은 형상이 마치 경쇠[磬]를 벌여 놓은 시렁과 같았다. 불빛은 휘영청하게 밝고 층층 대열은 질서정연하였으니, 참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1칸 채각(彩閣, 아름답게 단청한 누각)을 설립하고 비단폭으로 전면을 가렸다. 그리하여 그것을 일제히 걷을라치면, 등불이 확 비치므로 사람의 얼굴은 마치 신선처럼 깨끗하고 밝았으며, 그들은 옷 위에다 온몸 가득히 유리옥패(琉璃玉佩)를 부착하였다. 또, 뜰 앞에 벌여 선 자들은 각기 홍원등(紅園燈)을 받들었고, 매양 한 가목을 한 등에 설립했다. 그들의 궤기(跪起)진퇴(進退)하는 동작은 마치 헌수(獻壽)하는 형상과 동일하였다.
또, 100여 인이 각기 모난 등 하나씩을 받들고는, 혹은 벌여 서기도 하고 혹은 꿇어앉기도 하고, 혹은 대열을 나눠서 두루 다니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또, 벌여 놓은 탁자 위로 올라가서 층층이 벌여 선 다음, 맨 위의 머리엔 등 하나를 받들었는데, 형상은 마치 사람 머리와 같았으며, 그 좌우에선 차례로 전신(全身)의 형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등을 받든 자들은 모두 ‘가경 만만세(嘉慶萬萬歲)’ 하고 외쳤다.
또, 탑등(塔燈), 칠보등(七寶燈)이라는 게 있었는데, 칠보등에 켜진 불은 마치 금빛이 나는 실이나 여러 빛깔의 등과 같았다.
또, 낙화(落火) 놀이를 했는데, 마치 화살 통 모양처럼 생긴 붉은 지통(紙筒)을 뜰에 벌여 세운 다음, 화승을 지통 입에다 태우니, 불은 지통 속으로부터 훨훨 일어났으며, 우당탕하는 소리는 마치 우레 치는 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 불꽃이 이리저리 날아 흩어지고 다시 뜰에 떨어졌다. 그 광경은 마치 풍로(風爐)가 공중으로부터 엎어져서 흩어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아마 그 비용을 계산한다면 비단 10만 냥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천만 냥을 들인다 하더라도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은 그 기기한 묘법이었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