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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행길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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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에 다녀온 자들의 의관 - 한 벌의 봄옷과 갓과 띠, 세련되고 훌륭하다
연경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면
용만관(龍灣館)
에 이르러 모두 옷을 갈아 입는데, 한 벌의 봄옷에다 갓을 쓰고 띠를 띠니 누구나 모두 의관이 매우 훌륭하고 행동이 자연스러워, 다시는 융복(戎服 군복) 차림으로 치달리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신단 일행이 느지막에 진변헌으로 들어가 망신루(望辰樓)에서
투호(投壺)
놀이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마침
부윤(府尹)
이 고을 유생(儒生)들에게
순제(旬題)
를 내주어 한창 답안[試券]을 받아
평점(評點)
하기로 나도 또한 참가하여 증좌하였다.
13일 아침 통군정으로 해서 다시 환학정(喚鶴亭)으로 올라갔다. 정자는 서문 성 모퉁이에 있는데, 자그마하게 지은 단아한 집으로서 겨우 두서너 사람이 앉을 만하였다.
서쪽으론 압록강에 임하고 남쪽으로는 학란봉(鶴卵峯)과 마주했는데, 학란봉은 형상이 마치 알을 품은 학과 같아 자세가 안온하게 펼쳐져 있다. 환학정이란 그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환학정’이란
편액(扁額)
석 자 및 서쪽 처마의 편액 ‘편선루(翩躚樓)’라고 한 것은
판서(判書)
윤사국(尹師國)
의 글씨이다. 노래와 춤을 구경하다가 어두워서야 파하였다.
14일 잠시 흐림. 용만관에서 떠나 소관관(所串館)까지 30리를 가서 점심을 먹고 용천(龍川)까지 50리를 가서
양책관(良策館)
에서 잤다.
서장관은 으레,
연경(燕京)
에 들어가는 일기(日記)와 듣고 본 사건을 써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제야 비로소 끝냈으므로 모두 압록강을 건넌다는
장계(狀啓)
를 써서 띄웠다. 낮에야 떠나 용천관(龍川館)에 이르니, 희미한 달이 벌써 높이 떴다. 청류당에 기생 풍악을 차렸다가 다시
천연정(天淵亭)
으로 올라갔다.
15일 아침 해가 뜨는 시각에 잠을 깨니 빗발이 부슬부슬하는데, 지다 남은 꽃과 여윈 꽃술이 암벽 사이에 윤기(潤氣)를 머금고 있어, 지난겨울의 풍경에 비하여 배나 아름다웠다. 잠시 천연정(天淵亭)에 올라가 풍악을 듣다가 떠났다.
조금 늦게 떠나
철산(鐵山)
으로 가는데 구름과 안개가 차차 걷혀 산봉우리가 첩첩이 나타났다. 용만(龍灣)을 건너면서부터는 점점 산천이 수려함을 볼 수 있었으나 북쪽 산이 고우면서도 웅장한 기세와는 달랐다.
차련관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에는 관 앞에
반송
(소나무)이 있어 울창하고도 우툴두툴하며 높다랗게 우뚝하여 일산과 같았으므로, 명나라 가는 사신들의 시의 소재가 되는 일이 많았다.
동림성(東林城)
을 지나다 보니 길에 아름드리 솔이 많은데 검푸른 빛이 하늘에 닿았으며 어둑하게 칙칙하고 그늘이 져, 지나가기가 마치 굴속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별장(別狀) 정관(鄭觀)은 연경에 들어갈 때의 만상(灣上 : 의주)의 군관(軍官)이었는데 먼저 진(鎭)에 도달하였다가 길에서 맞아 절하고 이어 성으로 들어가기를 청하므로 드디어
장대(將臺)
로 올라갔다. 대가 그다지 높지는 않은데 건물의 제작이 자못 든든하고 크며 편액을 ‘동림수대(東林帥臺)’라 하였다.
대체로 그
성가퀴
는 산을 따라 빙 둘렀지만 그래도 요충(要衝)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식견 있는 사람들이 ‘성을 고쳐 쌓아 그 남쪽 부분을 넓히면
보장(保障)
할 수 있는 요지가 될 것이다.’라고 하나, 애석하게도 건의하여 힘을 들이려는 사람은 없다.
대의 북쪽에
별장(別將)
의 일 보는 곳이 있는데 건물이 역시 정교하고 치밀하며, 또한 창고에 곡식이 만 곡(斛 한 섬)이 넘게 있는데, 선천부(宣川府)에서 관장한다. 성안의 민가는 열두어 호에 지나지 않으나 이익 내는 것이 박하기 때문에 하나도 모여드는 자가 없다. 앞으로
방수(防戍)
하여 막아 내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변란이 생겼을 때, 적에게 식량을 제공하여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될까 걱정스럽다.
정관이 음식 한 상을 차려 대접해 주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계산기정(薊山記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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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상
주제 : 사행, 학문
시기 : 1804-03-12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평안북도 의주군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이해응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중국사신단 서장관의 임무와 역할
조선시대 부경사행(赴京使行) 3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사행직. 중국에 보내던 부경사행의 일행인 정사(正使)·부사(副使)·기록관(記錄官) 등의 3사신 중 기록관으로 외교문서에 관한 직무를 분담하였다. 정4품에서 6품 사이의 관원이 임명되어 1품상위(一品上位)로 결함(結銜)되었다. 서장관은 사행중 매일매일의 사건을 기록하고 돌아온 뒤에는 왕에게 견문한 바를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일행을 감찰하고 도강할 때에 일행의 인마(人馬)·복태를 점검하기도 하는 행대어사(行臺御史)를 겸하였다. 이 직책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행대어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 것으로 겸대는 대외관계에서만 감찰활동을 한 관직이다. 반면 행대어사는 초기에 국경무역에 관여한 것이 시초였으나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국내의 지방에 대한 감찰활동만을 하였다. 한편, 겸대는 서장관에 임명된 관원의 품계에 해당하는 사헌부의 관직을 겸하도록 하였다. 정규사행인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은 정5품이었으나, 진하(進賀)·사은(謝恩)·진주(進奏)·주청(奏請) 등의 임무를 겸할 때는 4품 이상으로 하였으므로, 겸대의 직명은 겸지평(兼持平)·겸장령(兼掌令)·겸집의(兼執義) 등이 되었다. 이들 사헌부 직함을 겸한 서장관은 본래의 기록보존 업무 외에, 사신 일행의 비위를 규찰하고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임무를 띠었다. 중국에 파견되는 정규사행은 수행원들을 포함하여 보통 300인 이상의 대집단을 이루었으므로, 사행의 규율과 품위유지 및 국제간의 문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일정한 감찰활동이 요청되었다. 특히 역관들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불법무역의 단속이 큰 과제였다. 이러한 이유로 서장관에게 임시 사헌부 관직을 주어 규찰업무를 맡도록 하였다. 대간(臺諫)의 임명에는 상피제(相避制)가 적용되었으나 겸대의 경우에는 예외로 하였다. 일본에 파견하는 통신사의 경우에는 명확한 규정이 없으나, 서장관에 해당하는 종사관(從事官)이 겸대의 일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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