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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로 말을 빌려 타며 임지로 가는 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경주 집경전(集慶殿)의 참봉으로 새로 발령받은 금난수는 사은숙배를 한 후 병조에 들러 마패(馬牌)를 받았다. 마패는 출사(出使), 즉 출장을 가는 관원들이 역원(驛院)에서 역마(驛馬)를 빌려 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증표였다. 마패에는 관원들의 품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마필의 수를 새겨놓았다. 종9품이었던 금난수는 많은 말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지친 말을 갈아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사정에 있어서는 매우 요긴했다.
금난수는 경안역(현 경기도 광주)에서 처남 조목과 사마시 급제 동기인 찰방 박길보(朴吉甫)를 만나 좋은 말을 지급받았다. 경안역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아 이미 만족스러웠건만, 박길보는 다음에 금난수가 들른 덕풍역(현 경기도 하남시)에도 서리 김사호(金士浩)를 보내 금난수를 잘 대접해 줄 것을 연통해 놓았다. 이런 인맥 덕인지, 금난수는 들르는 역마다 매우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아천역, 유춘역, 가흥역을 지나 연원역(현 충청북도 충주)에서도 찰방 민의(閔椅)가 금난수를 반기며 고급 등급의 말과 말구종을 지급해 주었다.
좋은 말을 탄 덕에 피로감 없이 창락역(현 경상북도 영주시)까지 온 금난수는 말을 갈아타지 않고 말 먹이만을 먹인 뒤, 집까지 곧바로 달렸다. 12월 6일에 출발하여 약 이레 만에 집에 도착한 것이다.
임지로 가기 전에 동네의 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금난수는 12월 20일에 경주로 길을 나섰다. 안기역(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하룻밤을 잔 뒤, 12월 22일에는 청로역(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함께 집경전에서 근무하게 될 동료를 만났다. 다시 청경역(현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말을 갈아타고, 12월 25일에야 경주에 도착하였다.
안동에서 경주까지는 사실 닷새나 걸릴 만큼 길이 멀지는 않았으나 가는 길목마다 친지들과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일이 오래 걸렸다. 여기저기에서 대접을 잘 받은 덕분인지 닷새나 되는 여로에도 금난수는 거의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쩐지 경주에서는 제릉에서보다 훨씬 더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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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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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관직생활
시기 : 1581-12-06 ~ 1581-12-2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박길보, 김사호, 민의
참고자료링크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 역마이용문서, 초료장(草料狀)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출장 가는 관원은 초료장(草料狀, 각 역참에서 출장 관원에게 역마·식료 등을 공급하라는 명령서)과 말을 징발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발마공문(發馬公文)을 발급받아 주로 역마를 이용하였다. 이때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다.
1410년(태종 10)에는 이른바 포마기발법(鋪馬起發法)을 실시하였다. 이어 1414년에 공역서인(供譯署印) 대신에 병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마패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철제마패·동제마패로 구분되며, 그 형태는 원형이다.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파손이 심해 1434년(세종 16) 2월에 철로 제조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 반포 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되었다.
마패의 한 면에는 대소 관원의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와 연·월 및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한편 왕족인 경우에는 산유자(山柚子)로 만든 원패(圓牌)로 한 면에는 말의 수, 이면에는 사용할 숫자대로 ‘馬(마)’자만을 새겨 넣어 사용하였다.
마패의 발급 절차는 초기인 1410년 4월의 기록에 의하면 의정부에서 병조에 이문(移文)하면 병조에서 기마문자(起馬文字), 즉 마문(馬文)을 주고, 출사(出使)하는 관원은 승정원에 나아가서 마패를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뒤 중앙의 경우 무릇 왕명을 받들고 다니는 관원은 병조에서 그 등수에 따라 증서 첩문(帖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왕에게 보고해 마패를 발급한다고 규정되었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감사·병사·수사 등이 마패를 지급받아 계문(啓聞)이나 진상(進上) 등 필요한 때에 말을 이용하였다. 군사 사정으로 긴급한 경우는 쌍마(雙馬)를 이용, ‘緊急事(긴급사)’라는 글자를 새겨 주야로 달리게 하였다.
한편 마패를 파손한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1511년(중종 6) 12월의 기록에 보이는 상서원의 서리(書吏)로 근무하던 최맹손(崔孟孫)과 같이 마패를 도둑질해 기마(起馬)의 목적 이외의 주식(酒食)과 바꾸어먹는 사례가 허다하였다.
이와 같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역마의 남승 폐단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의 왕조가 바뀌면 대개 자호 즉 연호를 바꾸었으므로 마패 또한 자주 개조되었다.
◆ 원문 번역
12월 6일 숙배를 하고, 대궐로 이봉원과 김계하를 찾아보았다. 병조에서 말을 내고 상서원에서 마패를 받아 동대문을 나섰다. 이군미와 박거중朴居中이 나와서 전별을 해주었다. 12월 7일 경안역에서 찰방 박길보朴吉甫를 만났다. 곧 조사경 형과 사마시 동년이다. 좋은 말을 지급해 주고 매우 정성스럽게 대접해주었다. 또 서리書吏 김사호金士浩를 보내어 덕풍역德豊驛에서 자도록 해주었다. 12월 8일 아천역衙川驛에서 말 먹이를 먹이고 유춘역留春驛 서리 김사호 집에서 잤다. 12월 9일 가흥역可興驛 역관에 투숙하였다. 12월 10일 연원역連源驛에 당도하였다. 찰방 민의閔椅 백주伯周가 아주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고급 등급의 말 및 말구종을 지급해주었다. 김사강을 찾아보고 황강에서 잤다. 12월 11일 수산守山에 당도하여 말 먹이를 먹이고 장림長林 김장수金長守 집에서 잤다. 12월 12일 창락역昌樂驛에서 말 먹이를 먹였다. 이예李禮 천질天秩과 이한李(礻+旱) 천서天瑞를 만났다. 이인로李仁老를 찾아보고 영천榮川에서 잤다. 12월 13일 지나는 길에 온계에 들러 인사를 하고 저녁에 집에 당도하였다. 12월 20일 길을 나섰다. 지나는 길에 오천에 들러 김백영金伯榮 영공을 뵈었다. 이정수李廷秀가 박원백朴元伯과 이영도李詠道와 함께 금협지 집에 와서 모여 전별을 해주었다. 김경보金景甫도 술을 들고 오고 김해金垓와 이순도李純道도 동참하였다. 보현甫峴 충거冲擧 형 집에 당도하니, 손기숙孫記叔과 안여지安汝止가 와서 모였다. 안기역安奇驛에 투숙하였다. 찰방이 나와 맞이하였다. 12월 21일 지나는 길에 남백수南伯綏 형 집을 찾아보았다. 최덕연崔德演 자흡子洽, 최덕제崔德濟 거천巨川, 권득중權得中 평숙平叔, 권대유權大猷 경승景升, 이복원李復元, 권윤중權允中 시중時中이 보러왔다. 권응생權應生이 향소의 술을 들고 와서 모였다. 12월 22일 청로역靑路驛에 당도하여 동료를 만났다. 금곡역金谷驛에서 잤다. 12월 23일 신녕新寧에 당도하니 고을 수령 이응인李應仁이 나와 맞이해주었다. 이응인은 곧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의 양자이다. 박형朴珩 중옥仲玉도 모였다. 영천永川에 들어가니 고을 수령 주박周博 약지約之가 나와 맞이해주었다. 남쪽 마루방에서 잤다. 12월 24일 새벽에 길을 나서서 청경역靑境驛에서 말을 바꾸었다. 안강安康에 투숙하였다. 12월 25일 임소任所에 당도하여 숙배肅拜를 하였다. 간직間直 박훈朴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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