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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전란중의 굶주림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전 국토는 황폐화되고 농민들은 전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농토는 모두 버려져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 봄, 춘궁기가 되자 굶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리를 심으려 해도 남자들은 왜적을 막기 위한 군대에 차출되어 나아가고, 향촌에 남은 것은 지난 전염병 유행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여성들뿐이었다. 금난수의 집은 그나마 조금 사정이 나았다. 비록 향병으로 나아간 사람들을 위해 군량미를 대느라 전처럼 풍족하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굶지는 않을 정도였다.
이런 금난수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령(開寧, 현 경북 김천)에서부터 온 김익휘(金益輝)는 염치불구하고 그의 어버이를 위해 양식을 나누어 달라 청하였다. 자기 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로한 어버이를 위해서라는 말에 금난수는 빠듯한 살림을 나누어 주었다. 어찌 이런 전란 중에 홀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여름이 되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춘궁기에 종자까지 모두 먹어버린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자연히 수확할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의 곡식을 훔치는 좀도둑도 발생하여 문제가 되었다.
결국 8월 3일에는 관아의 창고를 열어 진휼미(賑恤米)를 분배하였다. 관아의 곡식은 곧 나라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순찰사에게 올려야 했다. 구휼을 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농민들을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 한다고 해도 당장의 양식을 구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한 해 동안 충분한 양식을 재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 해인 1594년 봄에는 사족들도 굶기 시작하였다. 금난수의 처남 조목은 자신의 서자 조수붕을 보내와 자신의 궁색함을 구휼해 달라고 청하였다. 처남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체면을 고려하여 한참 동안 굶으며 참다가 가솔들을 위하여 겨우 청한 것일 터였다. 금난수는 그를 딱하게 여기며 곡식을 보내 주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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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성재일기(惺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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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금난수(琴蘭秀)
주제 : 전쟁, 기아
시기 : 1593-03-02 ~ 1594-03-09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금난수, 김익휘, 조목, 조수붕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조목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금난수
◆ 임진왜란, 그 난리 속에서 백성들은
이 당시 조선의 양극화는 뚜렷했다. 한편으로는 왜적들에게 물자를 약탈당하거나 쫓겨 유리걸식(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빌어먹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전히 왜적들의 눈을 피해 농사를 지었다. 특히 도세순 일가가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세순 일가가 논밭의 도지를 받아갔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다른 사람들 역시 농사를 지었다는 것으로, 아직은 조선의 경제력이나 구조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1592년 겨울부터는 식량난에 쪼들리고, 조선 전체는 1593년부터 계속하여 흉년이 든다. 게다가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물자도 많이 징발되어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다. 심지어 그 당시 ‘왜적은 얼레빗이고 명나라 군대는 참빗이다’는 말도 나오게 된다. 즉 물자의 약탈이 왜적보다 명나라 군대가 심했다는 것이다. 1592년 가을 왜적들은 조선의 의병에게 여러 차례 피해를 보았으며, 겁을 먹어 진을 치고 모여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은 차츰 활동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강제 노역을 당하는 백성들도 많았다. 특히 이 해에 왜로 끌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죽천 박광전은 세자 광해군에게 올리는 시무책에서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전쟁도 이길 수 있음을 호소했다.
그리하여 박광전은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가비상 사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먹을 식량 마련임을 강조한다. 권농사를 임명하여 농사를 장려하고, 세금 감면과 탐관오리들의 수탈을 단속하여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건의를 하고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一步)직전이었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에는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계사년(1593년) 봄에 큰 흉년이 들어서 각 도의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니 집을 잃고 굶주려서 죽은 시체가 서로 이어졌으며,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고, 산중의 풀잎과 소나무·느릅나무의 껍질과 뿌리도 먹어 모두 다 없어졌다.'
1593년 12월 25일의 '난중잡록'에는 국가재정도 바닥났음을 토로하고 있다.
'전란이 난 지 2년에 군사와 백성이 생업을 잃고, 적의 분탕질이 극히 심하여 저장한 물자가 잿더미가 되니 국가의 경비를 조달할 길이 없으므로 이에 모속사(募粟使)·조도사(調度使) 등을 각 도에 보내어 온갖 방법으로 곡식을 모집하는데, 공명첩(空名帖)을 많이 만들어 유사(有司)에게 나누어 주며 그것을 살 사람을 모집하였다.'
한편 박광전이 시무책을 올린 4개월 후인 1594년 4월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난중잡록'과 '연려실기술'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민간이 곤궁하여 큰 소 값이 쌀 세 말에 불과하고 세목(細木)값이 좁쌀 두어 되 미만이었으며, 의복과 진귀한 물건도 팔리지 않고,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러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감히 마음 놓고 다니지도 못하였다. 굶주려서 죽은 시체가 길에 깔렸는데 굶주린 백성들이 다투어 그 고기를 먹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뼈를 발라서 즙을 내어 마시기도 하였는데 사람의 고기를 먹은 자는 발길을 돌리기 전에 모두 죽었다. 슬프도다! 처음에는 왜적의 분탕질을 당하고 나중에는 탐관오리가 긁어먹고 이제는 흉년마저 겹치고 부역은 중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런 극도의 피폐한 상황에서 박광전의 건의가 선조 임금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것인지 마침내 선조 임금은 애통교서(哀痛敎書)를 선포한다. 이 글은 난중잡록 1594년 4월의 일기에 나와 있다.
'왕은 이렇듯 이르노라. 무릇 백성들은 나의 애통한 말을 들으라. 덕이 없는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오랜 동안의 편안함에 마음을 놓고 잘 다스려진 줄 알고, 백성이 아래에서 원망하여도 내가 듣지 못하고 하늘이 위에서 성내어도 내가 알지 못하여, 화란(禍亂)이 일어난 지 3년이 되었으니 내가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찌 돌리리.
아! 흉한 칼날이 지나는 곳에 백골이 산과 같고 천리가 텅 비어 민가의 연기가 끊어졌으니 칼날 아래 죽은 불쌍한 우리 백성이 몇 만 명이며, 유리(流離)하는 사람이 눈앞에 가득 찼으나 구휼할 방책이 없어 구덩이에 자빠지고 개울에 엎어져 서로 깔고 베게 하였으니 굶어서 죽은 불쌍한 우리 백성이 몇 만 명인가?
살아 있는 자도 찔리고 상한 목숨은 굶주리지 않은 이가 없어 쓸은 듯한 땅에 맨몸으로 서서 살아갈 수가 없는데도 토색질과 학대는 평소보다 배나 되고, 재물이 다 되었는데도 세금은 더 많으며, 힘은 점점 다해가는데 부역은 더 과중하니 불쌍한 우리 백성이 어찌 조정에서 부득이 한 조치임을 생각할 겨를이 있으리오.
아! 사내아이를 가지고 곡식과 바꾼다는 것을 옛말로만 들었는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식을 버리니 어찌하여 백성이 도적이 되지 않겠는가? 풀뿌리로 연명한다는 것을 옛말로만 들었는데 오늘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으니 어찌하여 백성이 도적이 되지 않겠는가? 모두 나의 은택이 내려가지 아니하고 나의 어루만짐이 잘못되어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다. 말이 이에 미치니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을 면목이 없다. 내가 깊이 불쌍히 여기니, 그 아픔이 내 몸에 있는 것 같구나.
아마도 나의 명을 받든 사신이 교만하고 횡포하거나 지방을 지키는 수령들이 토색하여 우리 백성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관원을 잘못 쓴 것도 역시 나의 죄이다. 백성은 나를 허물함이 마땅하니, 내가 어찌 사양하랴.
아! 우리 생민(生民)은 모두 나의 아들이니, 내가 비록 임금답지 못하나 어찌 차마 앉아서 보고 안정시킬 방책을 생각하지 아니하랴. 각 도의 민력(民力)이 이미 다 되었으니 일에 따라 진상(進上, 지방의 특산물을 궁중에 바치는 것)을 감면하고, 군사의 곤궁하기가 이미 극도에 달하였으니 과번(過番)한 자는 영원히 그 가포(價布)를 면제하겠으며, 지방의 수령이 이 어려운 때를 당하여 탐욕과 혹독함이 더욱 심하니 적발하여 엄중히 다스리겠으며, 군량과 쇄마(刷馬)의 일은 모두 색리(色吏)에 맡겼더니 원망이 길에 가득하였으니 재량해 변통하여 균일하게 하기를 힘쓰겠으며, 군사를 정예하기를 힘써야 하고 군사가 많기를 힘쓸 필요가 없으니 뽑혀 온 군사 중에서 정예하지 못한 자는 모두 제대시키고 소요스런 폐단이 없도록 하겠으며, 공(功)에 대하여 상을 주는 것은 마땅히 때를 넘기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문서가 날로 쌓여 심사하기가 더디어 공을 세운 사람이 조정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하게 되니, 감사가 즉시 보고하도록 하여 포상이 지체됨이 없도록 하겠노라.
백성의 곤궁함이 이때와 같음이 없어서 이미 거꾸로 매달린 듯한 원망이 극에 달하였으니 어찌 제거해야 할 폐단이 없겠느냐? 조속히 강구하여 백성이 평안하도록 힘쓰겠노라. 아! 무릇 우리 백성들은 나의 지난 허물을 용서하고 내가 장래에 새로워질 것을 허락하여 지금은 우선 참고 견디어 장차 태평할 때에 각기 생업을 편안히 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이에 교시하노니 잘 알 것으로 믿노라.'
그런데 선조 임금의 '애통교서' 발표에도 불구하고 민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수탈은 여전한 듯하다. 임금의 교서가 발표된 지 두 달 정도 된 1594년 5월 27일의 난중잡록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이 더욱 심하여 골육(骨肉, 부모형제)이 각기 힘들어서 길가는 사람 보듯 하였다. 내가 마침 성안에 이르렀을 때에 명나라 병사 한 사람이 술에 취하고 배가 불러 지나가다가 길 가운데서 구토를 하자, 굶주린 백성들이 일시에 달려가서 머리를 맞대고 주워 먹었는데 약한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물러서서 울기만 하였다. 명나라 도독 유정(劉綎)이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쌓인 것을 보고 참혹히 여겨 구휼소를 동문 밖에 설치하니, 굶주린 백성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천백 명의 무리가 거기에 힘입어 조금 연명하다가 그 뒤에 모두 그 옆에서 죽었다.'
1594년 6월 3일의 '난중잡록' 일기도 참담하다.
'전일에는 민간이 비록 궁색하였으나 혹 곡식을 저장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소·말·잡물을 팔고 바꿀 곳이 있었고 또 관곡(官穀)을 내어 놓아 여러 곳에서 팔기도 하더니, 지금은 공사(公私)가 함께 고갈되어 시장에 한 되의 쌀도 없었다.'
이때에 소와 말이 있는 자는 명나라 병사에게 팔았다. 이때 명나라 병사가 하루에 수백 마리의 소를 도살하였으므로 사방 경내에 소·말·닭·개가 거의 다 없어졌다.
◆ 원문 번역
1593년 3월 2일 진사 배용길裵龍吉 명서明瑞ㆍ진사 박건朴楗 자한子閑ㆍ대구에 사는 생원 이윤우李潤雨 무백茂伯【아이 개愷와 동년同年이다.】이 보러왔다. 개령開寧에 사는 김익휘金益輝가 어버이를 위하여 양식을 요구하였다. 6월 15일 성안에 있으면서 관아 창고를 열고 보리 환자還子를 받아들였다. 7월 21일 동하東下의 여러 사람이 초적草賊을 금하는 일을 원정院亭에 모여 의논하였다. 8월 3일 굶주린 사람들에게 진휼미賑恤米를 분배하여 지급한 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순찰사에게 보냈다. 1594년 3월 9일 조 월천이 수붕壽朋을 보내와 궁색함을 구휼해달라고 청하기에 곡식 말을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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