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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을 믿다가 역모에 연루된 사람들
끔찍한 날이었다. 노상추를 비롯한 문무백관은 서수문 밖에 차례로 늘어서 역모를 꾀한 죄인 이율(李瑮)이 능지처참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다음날에는 술사 주경채(朱絅采)가 모래밭에서 목이 베였다. 이율을 역모죄로 고발한 것은 전 현감 김이용(金履容)이었다. 그는 현재 관직이 없었기에 전 판서 김종수(金鍾秀)와 훈련대장 구선복(具善復)을 통해 조정에 역모를 알렸다.
김이용은 자신의 사촌이 이율과 친하게 지냈기에 자신도 그와 교제하였으나, 이율이 가진 불순한 사상들 때문에 오래 가까이 지내기는 꺼려졌다고 미리 선을 그으면서 그의 불순한 사상에 대해 왕에게 진술하기 시작하였다. 이율이 어느 날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사주팔자를 잘 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에 김이용은 이율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사주팔자를 점쳐달라고 하였다. 이율이 가져온 김이용의 사주풀이는 ‘이 사주팔자는 마땅히 사업(事業)이 있을 것이다. 10년 동안 쭈그리고 고생하다가 하루아침에 제후로 봉해지게 된다. 흉악한 해(害)가 사방으로 이를 것이니, 남방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김이용은 제후로 봉해지는 것은 무엇이며, 흉악한 해는 또 무엇이냐고 이율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율은 “제후로 봉해진다는 말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상한 사람의 말을 들으니, 내년 이후에는 도적들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인데, 북쪽의 도적들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나라가 장차 셋으로 갈라진다고 하니, 나는 장차 가족을 데리고 일찌감치 난리를 피하려고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김이용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고 물었지만 이율에게 답을 들을 수는 없었고, 하동에 갔을 때 유가(劉哥), 정가(鄭哥), 김가(金哥) 세 사람이 난리가 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들과 연관이 있는 듯한 양(梁)씨 성을 가진 사람은 서울에 살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 ‘잔악한 것들을 없앤다.’ 등 《수호지(水滸志)》에 나오는 송강(宋江)의 말을 편지에 써서 보냈으며, 홍국영의 사촌 동생이 얽혀 있는 듯하였다.
또한 하동에는 250살이라고 하는 도인 이현성(李玄晟)이 있어서, 군사를 일으킬 방향을 지시하고, 500년 된 사슴과 400년 된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녹정(鹿精)과 웅정(熊精)이 있다고 했다. 녹정이 말하기를 ‘동국(東國)은 말기에 셋으로 갈라져 100여 년간 싸우다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다. 통일할 사람은 정가(鄭哥) 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 싸움은 나주(羅州)에서 먼저 일어난다. 유가(劉哥), 이가(李哥), 구가(具哥) 성을 가진 세 사람이 거사하여 반정(反正)할 텐데, 거사 시기는 을사년 7, 8월이 아니면 병오년 정월이나 2월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김이용의 증언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도인이니 진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정감록」과 「진정비결(眞淨秘訣)」의 전복적 내용이 비밀스럽게 퍼져나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대도독 등의 자리에 올려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했다는 사람들의 명단이 나왔다. 왕은 전국의 지방관들에게 이 사건을 면밀히 수사하도록 지시하였다. 하지만 대규모 군사 조직은 실상이 없는 허무한 것들이었다.
왕은 이율을 심문하고는, 대대로 녹을 먹던 집안의 후손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하며 능지처참을 선고하였다. 일종의 본보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정감록」 신앙은 늘 조정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역모사건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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