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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는 목화 집안에는 돼지
그리 점잖은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으나 집안 살림 경영은 힘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노상추의 집안 살림은 그리 넉넉지 않았고 가끔은 곤궁하다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였다. 노상추가 서울에 올라가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집안을 돌본 것은 조카들과 아들이었다. 이들이 해 놓은 집안일이 노상추의 눈에는 영 마뜩잖았다. 그래서 노상추는 집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집안 살림을 효율적으로 경영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농사란 것은 사람이 아무리 애쓴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흉작을 면키 어려웠다. 올해도 목화가 흉작이었다. 처음 시장가격은 30근에 1백 동이었다. 모름지기 흉작이라면 그 가격도 오르기 마련이건만 올해 목화는 너무나도 헐값이었다. 듣자 하니 수령이 농민들에게 성전(城錢)을 빌려주고 3할의 이자를 거두기로 하였는데, 시장이 한 번 열릴 때마다 이자를 마구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농민들이 이자를 내기 위해 목화를 마구 팔아야 해서 목화 값이 헐값이 된 것이다. 덕분에 노상추의 목화 값도 똥값이 되었다.
노상추는 목화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상수리나무와 잣나무를 심어서 도토리와 잣을 수확해 보기로 했다. 조카 기엽을 수월산에 보내서 상수리를 심어놓은 것을 살펴보게 했고, 또 집 뒤 언덕에 심어놓은 잣나무도 살펴보았다. 상수리는 심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수확할 것이 없었으나 잣나무는 열매를 맺어서 18송이를 딸 수 있었다. 이 잣나무는 무술년(1778) 봄에 대곡사 인근 잣나무 숲에서 딴 잣을 심어놓은 것이었다. 벌써 25년이 흘렀는데, 크게 자란 잣나무가 17그루이다. 노상추는 수확한 잣을 사당에 올렸다.
또 돼지도 한 번 쳐 보기로 했다. 많이 길러서 그 고기를 팔면 어떨까 싶어서 돼지우리도 지었는데 과연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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