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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계에서 따돌림 당하다
조카 정엽(珽燁)과 성곡동회(省谷洞會)에 갔다. 이왕 고향에 내려왔으니 이번 기회에 성곡동의 계 좌목(座目)에 이름을 올리고자 한 것이었다.
동사(洞舍)
에는 상존위 조명여(趙命汝), 박지원(朴之源), 도완모(都完謨)가 모여 있었다. 노상추가 다른 계원들은 언제 오느냐고 묻자 다른 계원들은 오지 않을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 계모임은 아무래도 파투 난 듯하다.
낭패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노상추에게 인척 정유건(鄭惟健)과 정유경(鄭惟儆) 형제가 와서는 다른 계원들이 노상추가 계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계원인 김이옥(金理玉), 김수옥(金粹玉), 윤형로(尹衡老)가 계모임에 오지 않은 것이었다. 두 김씨는 노상추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윤형로는 들에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리 추가로 계원을 받지 말자고 뜻을 모아 결정했다고 한다.
노상추는 어이가 없었다. 부친 노철과 형 노상식이 이미 50년 전에 계에 이름을 올렸고, 노상추도 계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29년 전에 상존위를 역임했다. 그리고 노상추의 역할을 조카 정엽이 대신한 것도 28년에 이른다. 노상추보다도 늦게 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감히 노상추가 계에 이름을 올리고 말고를 결정하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
이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관련이야기
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계
시기 : 1802-10-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구미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노정엽, 조명여, 박지원, 도완모, 정유건, 정유경, 김이옥, 김수옥, 윤형로, 노철, 노상식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 조선시대의 동회
동(洞)을 단위로 그 곳에 거주하는 구성원 상호간의 친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행했던 것이 동약(洞約)이며, 동계(洞契)나 동회(洞會)는 다른 명칭일 뿐 그 시행내용은 거의 비슷하였다. 동계의 주 내용은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경조사에는 서로 부조를 하는 것으로, 기본 모습은 오늘날 친척들의 계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유교 규범과 지역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사회 규범을 마련하여 마을의 질서와 공동 이익을 추구하려 하였다.
즉, 동(洞)은 공동의 생활공간으로 개인이 과도하게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다른 주민들의 생활기반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동계에서는 사적 이익 추구를 규제함으로써 동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단순한 상부상조와 상호간의 화목을 넘어 동네 규약을 제정하여 서로 지킴으로써 이를 어길 시에는 극벌을 시행하여 동(洞)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였다.
아래는 예안 온계에서 시행한 동계의 내용이다.
1. 혼인과 과거급제 : 백미 5되, 닭과 꿩 중 1마리씩 수합한다.
2. 부모 처자 본인 상(喪) : 백미 5되, 상지(喪紙) 1권을 수합한다. 각각 장정 2명을 내어 2일씩 부역한다. 가마니 3개, 새끼 40파(把), 덮개풀 20파(把)씩을 수합한다.
3. 매년 답청과 중구일마다 강신 모임을 연다.
4. 술 : 백미 5되와 고기값 2말씩을 수합하여 집에서 빚어 준비한다.
(박현순, 『벌과 상으로 지방사회를 통치한 향약』 참조 및 재인용, 『조선 양반의 일생』, 글항아리, 2009)
◆ 원문 번역
임술일기 1802년(순조2) 10월 22일(경신)註 011 볕이 남. 조카 정엽珽燁과 성곡동회省谷洞會에 갔다. 나의 이번 행차는 본동 좌목座目에 이름을 올려서 대대로 닦아온 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미 동사洞舍에 도착했는데 상존위 조명여趙命汝【흠재欽哉】, 박지원朴之源【백봉伯逢】, 도완모都完謨【완지完之】 세 사람이 와서 모였다. 기타의 계원은 모두 오지 않았다. 인척 정유건鄭惟健과 정유경鄭惟儆 종형제가 와서 동네 여론을 처음으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입록入錄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김이옥金理玉, 김수옥金粹玉, 윤형로尹衡老가 오지 않았는데, 두 김 씨는 집에 틀어박혀 있고 윤은 들에 있었다. 저들의 거조를 보니 참으로 지극히 해괴하다. 또 추가로 입록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이미 완의完議했다고 하니, 진실로 지극히 해괴하다. 부형이 입록된 지가 이미 50년에 이르고, 나도 역시 일을 도와서 외람되게 상존위를 역임한 것도 29년이다. 종질宗侄이 대행한 지도 지금 28년에 이른다. 그런데 을미년(1775) 이후에 추가로 입록된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 주장하는가. 매우 통탄스럽고 해괴하다. 주인의 만류를 돌아보지도 않고 정유경이 터를 정하여 조성해 놓은 곳을 가서 보았다. 이 터는 바로 김호찬金虎燦【병여炳汝】의 옛터이다. 조카 정엽과 함께 문동文洞으로 갔다. 정유건과 정유숙鄭惟俶 인척이 동행하여 독산獨山으로 내려가서 이사里社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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