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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손님대접에 거덜 나는 살림살이
노상추가 부임한 가덕진에는 연일 손님이 드나들었다. 외직에 부임하면 으레 손님을 치르게 되었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전에 부임했던 갑산은 워낙 멀고 길이 험해서 그런지 손님이 자주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있는 가덕도는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왜선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노상추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먼 친척과 지인, 그리고 승려들까지 모두 일부러 배를 타고 가덕도까지 들어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노상추를 따라 섬에 들어와 한동안 함께 지내고 있는 아들 익엽은 공무로 바쁜 아버지 대신 손님들을 명승지로 인도하였다. 고향에 있는 암자에서 온 승려들과 손님 두 사람을 데리고 큰 항구와 천수대를 구경시켰는데, 노상추는 한창 관사를 허물고 새로 짓는 공사를 감독하느라 따라가지 못했다. 손님 중 무과 급제자들은 역시 왜선이 궁금한지 일부러 천성까지 가서 정박해 있는 왜선 두 척을 구경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승려들도 보고 싶은 것이 많은지 통영에 가고 싶다고 해서 노상추는 병교가 합험을 하러 타고 가는 배를 함께 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사돈 손진악과 손해경도 일부러 바다를 구경하러 찾아왔다. 그래도 의리가 있어서 오는 길에 노상추의 고향집이 있는 화림에 들러서 집 소식을 알아보고 전해주었다. 집안은 모두 평안하다고 한다. 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노상추는 연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마침 달빛도 아주 밝았다. 그래서 아이 6, 7명도 함께 데리고 두 친구와 함께 진남루에 올라 악공들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그대로 배를 타고 호수도 돌았다.
친구들이 돌아가자 노상추는 방으로 조용히 감색을 불렀다. 그리고는 손님 접대에 사용한 비용을 정산해 보도록 했다. 감색은 이리저리 계산하더니 원래 진에 책정된 비용보다 400금이나 초과해서 사용했다고 말하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많은 손님을 접대하느라 노상추는 매일같이 쓰는 일기도 건성으로 썼다. 봄철 이후로 찾아온 손님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50명 정도 된다. 많은 손님이 찾아주어 기쁘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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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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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812-08-01 ~ 1812-08-27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부산광역시 강서구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노익엽, 손진악, 손해경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 조선시대 수령의 손님접대
박계숙이 홍원현의 수령인 김충민과 같은 도 출신이라 하여 환대를 받은 장면이다. 조선시대에는 본래 출생지인 거주지를 떠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양반의 경우 관직에 진출하여 서울에 거주하게 되거나 혹은 다른 지역의 수령으로 가는 경우가 있고, 무관이라면 변방지역에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정치적 이유로 유배를 가게 되거나, 기타 개인적인 이유로 여행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때문에 이런 외지에서 동향인을 만나면 서로 매우 반기고 환대하는 일이 많았다.
보통은 같은 고을 출신을 동향 출신이라고 하였지만, 같은 도 출신 정도만 되어도 동향인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의 경우, 지역 사회에서 혼맥과 학맥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오늘날보다 훨씬 지역 사회 내에서 인적 관계망이 촘촘하고 복잡하였다. 때문에 양반 신분 내에서 같은 도 출신이라 한다면 꼭 개인간에 안면이 없다 하더라도 집안이나 학문적 관계로 묶여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김충민은 홍원현 수령의 신분으로 이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고 있는데, 조선시대 수령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빈객을 접대하는 일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수령들의 일기 등을 살펴보면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을 만나 접대한 일이었다. 공무를 위하여 해당 지역에 들른 관원, 수령 개인을 만나보기 위해 온 친구나 가족, 수령에게 청탁을 하기 위하여 서울의 지인들이 보낸 사람들, 인근 군현의 수령들, 군사업무 협조 등을 위하여 인근 병영이나 수영 등에서 건너온 군지휘관들 등 빈객의 구성원은 매우 다양하였고 성격 역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혼재해 있었다. 박계숙의 경우는 신분이 비록 군관이라고는 하나, 숙박이나 식량 지급을 넘어서 기생을 동반한 연회를 열어준 것 등을 봤을 때 역시 동향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특별히 후대한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번역
임신일기 1812년(순조 12) 8월 초1일(신축) 볕이 남. 등에 난 종기가 아직 낫지 않았으므로 이날 아침의 망궐례望闕禮를 정지하라고 분부하였다. 관사의 행랑 4칸이 바야흐로 무너질 우려가 있고 또 동헌의 동쪽을 가리므로 동쪽을 밝게 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날 옛 관사를 헐고 터를 열었다. 이날 늦게 와서 머문 손님 및 두 승려가 왜선 및 천수대天秀臺를 살펴보기 위해서 갔는데, 선달 아이도 함께 갔다. 이날 저물녘에 군사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8월 초3일(계묘) 볕이 남. 이날 행랑에 들보를 올렸다. 늦게 선달 아이가 두 명의 손님과 두 명의 승려, 한 명의 늙은 남자종과 함께 대항大項을 구경하며 놀았다. 이날 저물 무렵에는 옥포玉浦 만호의 초간장初看狀이 도착했고 어스름 무렵에는 문정장問情狀이 도착했으므로 통영統營에 보고하고, 다대포多大浦에 전달하여 통지하였다. 8월 초10일(경술) 볕이 남. 이날 영천榮川의 김영억金永億 군君이 돌아갔다. 저녁에 인동仁同의 선달 장우성張羽成, 선달 장유문張有聞이 들어왔다. 이날 관아 건물의 공사를 마쳤으므로 와장瓦匠 및 미장이[土手], 목수木手를 전부 해산시켜 보냈다. 승려 법홍法弘 및 남자종 명돌命乭이 종이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8월 11일(신해) 볕이 남. 이날 선달 장우성張羽成, 선달 장유문張有聞 두 사람이 천성天城에 가서 왜의 대선大船 2척이 정박하고 있는 곳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8월 12일(임자) 볕이 남. 이날 장우성張羽成 선달, 장유문張有聞 선달 두 사람이 모두 돌아갔다. 오후에 영엽永燁과 승려 법홍法弘이 천성天城의 강어귀에 가서 왜선을 구경하였다. 오늘부터 상동헌上東軒의 안벽과 바깥벽의 도배塗排 및 장판壯板을 까는 일을 시작하였다. 8월 14일(갑인) 흐리고 비가 뿌림. 이날 성휘性輝 선사와 법홍法弘 선사가 통영統營을 구경하기 위해서 병교兵校가 합험合驗을 하러 가는 배를 타고 함께 갔다. 8월 15일(을묘) 볕이 남. 이날이 바로 추석날이지만 바닷속의 섬에서 이날을 보내고 있으므로, 고향 쪽의 언덕을 바라보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이날부터 상동헌에 거처하였다. 이날 저녁에 율리栗里의 사돈 손진악孫鎭岳, 친구 손해경孫海慶이 바다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는데, 들으니 화림華林에 들러서 잤다고 하므로 우리 집안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날 밤에 달빛이 매우 밝기에 관례를 치렀거나 치르지 않은 아이 6, 7명을 데리고 두 친구와 함께 진남루鎭南樓에 올라가서 악공들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담소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마쳤는데,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다. 8월 16일(병진) 볕이 남. 이날 대변정待變亭에서 좌기하여 백일장을 설행했는데, 사포수와 화포수에 대한 시사試射와 시방試放도 아울러 행하였다. 두 친구가 이곳에 와서 종일 거문고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놀았는데, 천성天城 만호 최학륜崔學崙도 함께 모여서 놀았다. 날이 저물자 배를 타고 대변정 동쪽 호수가를 돌았고 달이 동산 위로 떠오르자 호수를 돌아서 진鎭으로 향하였다. 전후 좌우에 횃불을 세우는 일은 법대로 하지 않더라도 어찌 동파적벽東坡赤壁에서 배 띄우고 노는 것만 못하겠는가. 뭍에 내릴 즈음에 천성 만호가 달빛 속에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나도 관례를 치렀거나 치르지 않은 아이 5, 6명과 두 친구를 데리고 그대로 관아로 돌아왔다. 8월 17일(정사) 볕이 남. 오늘과 내일 이틀은 국기일과 서로 겹치므로 천수대天秀臺로 가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8월 18일(무오) 볕이 남. 날씨가 청명하고 깨끗하므로 손여호孫汝浩와 선달이 대항大項에 나가서 해상의 풍경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8월 19일(기미) 비가 오기도 하고 볕이 나기도 하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맑음. 이날 두 친구를 위해 천수대天秀臺에서 놀았다. 고개를 넘어서 금방 천성진天城鎭 관아에 도착했는데, 거기에서 천수대로 갔다. 서풍이 그치고 동풍이 크게 불어서 잠수군이 전복을 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한탄스러웠다. 이 천수대의 모습은 이 곳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산처럼 보인다. 그 높이는 수백 척에 가까우며 동남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쪽은 거제도巨濟島와 인접해 있고 서쪽은 통영統營의 항구와 통하며 산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점점이 떠서 바다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런 풍광을 구경하니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천수대 위에서 풍악이 울려지자 은연중에 날개가 돋아나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니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서 기울 즈음에 대변정에 도착하니 천성장天城將이 점심밥을 가지고 와서 바치고 말하기를, ‘어제는 밤에 배를 타고 유람했으니 오늘은 낮에 배를 타고 유람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내가 승낙하였다. 천성 만호가 다락배를 이미 대기시켜 유람을 거행할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으며, 배에 타자 풍악이 울렸다. 천성진 앞의 호수 안을 배로 돌면서 놀았다. 어느덧 해가 지자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물가를 둘러싸니 마치 수군 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횃불의 수는 3백자루에 불과했지만, 바다를 비추는 불빛이 또한 하나의 장관이었다. 이어서 밤이 되니 고개를 넘어 가덕진으로 돌아왔다. 8월 20일(경신) 볕이 남. 친구 손진악孫鎭岳과 손해경孫海慶 두 사람이 선달과 함께 대항大項에 나가 바다와 산의 경치를 구경하고 저물녘에 관아로 돌아왔다. 8월 21일(신유) 벽엽璧燁이 늙은 남자종 위남渭男을 거느리고 나루를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 해당 감색으로 하여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사용한 비용을 회계하게 하니 원래 책정된 비용보다 400금金이나 더 지출되었다. 8월 24일(갑자) 볕이 남.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에 골몰하는 바람에 일기를 날마다 전부 기록하지 못하고, 나중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날의 일도 상세히 기록할 수가 없다. 8월 27일(정묘) 볕이 남. 봄철 이후로 먼 곳에 살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친밀하거나 소원한 친지로서 방문한 손님을 세어보니 50명 정도 되는데, 날마다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달마다 계속되고 있으니, 기쁘면서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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