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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신 배웅하기
정탁(鄭琢)
은 이번에 명나라 사신을 배웅하는
전위사(餞慰使)
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왜영(倭營)에서 홀로 탈출한 사신 이종성(李宗城)은 이제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신은 주상 전하를 20일에 남대문 밖에서 만나 뵙고 벽제관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벽제관으로 미리 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신을 기다렸다. 이날 아들 윤목(允穆)이가 날 따라왔다. 중국 사신을 만나는 기회는 흔한 일이 아니니 윤목이에게도 큰 배움이 될 것이다. 이후 사신이 벽제관에 도착한 건 이틀 뒤의 일이었다. 나름대로 대접을 해본다고 예단을 바쳐 보았지만 반응이 냉랭했다. 잔치를 열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신은 그저 시큰둥한 반응만 할 뿐 어떤 대접에도 응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럴 만도 했다. 복잡한 사정이야 무엇이건 그는 부산의 왜군 본영에서 탈주해서 명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것뿐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도 정사의 그런 행동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명나라 정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잔치며 예단이며 받을 여유가 없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사실 주상 전하께서 사신을 남대문 밖까지 나가 만나는 것도 나로서는 마뜩잖았다. 지금 같이 명나라가 체면을 크게 잃어버린 상황에서, 무거운 격식을 갖추는 게 명나라 사신인들 편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그리 생각하면 사신의 떨떠름한 반응은 모두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인 셈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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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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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정간공일기(貞簡公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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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탁(鄭琢)
주제 : 사신 접대, 전쟁
시기 : 1596-04-20 ~ 1596-04-24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기도 고양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정탁, 정윤목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정윤목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정탁
◆ 중국 사신을 어떻게 맞이할까?
칙사를 보낸다는 통보를 받으면 정부에서는 원접사(遠接使) 일행을 의주(義州)까지 보내어 입국을 환영하고 의주에서 서울까지 칙사가 지나갈 길목에는 따로 선위사(宣慰使)를 5개소에 미리 보내어 잔치를 베풀고 위로케 하였다.
칙사가 벽제관에 이르면 영접사(迎接使) 등을 파견하고, 왕은 왕세자 이하 문무 신하를 거느리고 모화루에 거둥, 영칙의(迎勅儀)에 따라 칙사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경복궁으로 안내해 칙서를 전달받고 다례(茶禮)를 베푼 뒤 태평관에 머물게 하였다. 이때 하마연(下馬宴)을 베풀어 대접하고, 이튿날에는 왕세자 ·종친부(宗親府) ·의정부 및 육조(六曹) 등에서 차례로 연회를 베풀었으며, 돌아갈 때도 수많은 전연(餞宴)을 베풀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정간공일기』 1596년 4월 20일 ~ 1596년 4월 24일 20일 병진. 상이 남대문 밖에서 상천사上天使를 만났다. 21일 정사 22일 무오. 명明나라 사신의 전위사餞慰使로서 벽제관碧蹄館에 갔다. 윤목允穆이 따라왔다. 23일 기미 24일 경신. 중국 사신이 진말辰末에 벽제관에 도착하였다. 예단禮單을 바쳤지만 받지 않고 잔치도 받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에 출발하였다. 이 날 오후 늦게 복명復命하였는데 판윤判尹 신점申點과 도승지 오억령吳億齡이 참여하였다.
이미지
벽제관 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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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신 이종성이 몰래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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