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청국인이 조선에 표류하다
1734년 9월 20일, 청국의 절강성(浙江省)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나던 중에 충청도 태안에 표류했다. 늦은 여름이었던지 태풍의 크나큰 위력을 피하지 못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서울로 압송되어 남별궁(南別宮)에 머물렀다. 이들은 태안에 표류하여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숙식을 조선정부로부터 제공받았다. 그들은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청국인이 조선에 표류했다는 소식은 서울 전역으로 퍼졌다. 이들을 만나보고픈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권상일의 친구가 그들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왕(王)이라는 성을 가진 청국인과 만났다. 그런데 안타깝게 대화가 통하지 못했다. 왕씨 청국인은 다행히 글을 쓸 줄 알았다.

그는 절강성인 것으로 보아 혹 왕희지(王羲之)의 후예가 아닌지 물었다. 이에 왕씨 청국인은 왕희지와 왕단(王旦) 모두 자신의 조상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권상일의 친구 입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청국인이 아니었다. 다시 그가 묻기를 ‘조선사람들은 악양루(岳陽樓), 동정호(洞庭湖), 소주, 항주 등의 명승지를 보고 싶어 하지만 가볼 도리가 없는데 그곳의 경치는 어떠하오?’라고 묻자 왕씨 청국인은 도리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대의 나라에 금강산이 있어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한 번 보기를 원하는데 하필 멀리서 구할 것이 있겠소. ……’라고.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