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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우리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오늘은 『중용혹문』을 강독했다. 강독이 마치자 유희춘은 어제 경연에서 제기한 조운 문제가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는지, 오늘도 선조에게 조운선의 규격 문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조운 운영의 문제는 총체적이었다.

유희춘은 조군(漕軍)의 폐단은 그들을 구휼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조군의 생활이 어렵게 때문에 그들에게 일정한 특별 지원을 해 주면 충분히 자신의 직분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선박의 문제가 있었다. 선박은 조군 문제 해결과는 방향이 달랐다. 문제는 간단했는데 500석의 배를 건조할 것인지, 아니면 1000석의 배를 건조할 것인지를 선택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이때 검토관 윤탁연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도 1000석의 배를 시험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접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 중인 선박을 조운 운영에 그대로 쓰는 것에는 반대했다. 윤탁연은 배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전을 보면 1000석의 배가 운영되었다는 것은 잘 알았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강남은 조선과 달랐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1000곡(斛)을 날랐다고 하는데 1곡(斛)은 1석(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석(石)의 크고 작음이 강남과 우리나라는 같지 않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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