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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은 길재의 유허를 찾다
1857년 송달수는 경상도 선산 고을에 도착하였다. 세상에 알려지길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가 바로 여기에 은거하였다고 하였다. 금오산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석벽이 깎은 듯이 서서 발붙일 곳이 없어 어떻게 기어 올라가야 할지 난감한 길이 한참을 이어졌다. 거기서 몇 리를 가니 채미정이 있었다. 채미정 옆에 야은 길재의 유허비가 서 있었다.
유허비에는 숙종이 지은 어제시가 있었는데, 야은을 위해 읊은 것으로서 따로 누각 하나를 채미정 뒤에 만들어 봉안해 두었다. 빽빽한 대나무와 소나무가 채미정을 푸르게 두르고 있었으니, 사람과 사물이 모두 높은 절개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였다.
채미정에서 20리쯤 떨어진 곳에는 오산서원이 있었다. 이 곳 서원에서는 야은만 제사를 모시는데, 조정에서 편액을 하사한 서원이었다.
사당을 참배하고 절하기를 마치고는 사당을 둘러보니 오른쪽 가장자리 산기슭에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양청천이 쓴 글씨를 베껴 바위에 새긴 것이었는데, 필력에 힘이 있어 볼 만하였다. 뒤에는 유성룡의 글을 음기로 새겼다.
사당 앞에서 바라보이는 곳에는 야은의 묘가 있었고, 언덕 너머에는 여헌 장현광의 묘소가 있었다. 일찍이 선조인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와 보고 감흥을 일으켰단 이야기를 들었으니, 단지 선현의 유풍 때문만이 아니라 뛰어난 경치 역시 한몫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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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남유일기(南遊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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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달수(宋達洙)
주제 : 명승유람
시기 : ( 미상 )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송달수, 채미정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선비 야은 길재
이 이야기는 송달수가 경상도 선산에 남아있는 길재의 유적지를 찾아보고 난 감흥을 적은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은 길재(1353~1419)는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아버지는 지금주사(知錦州事) 길원진(吉元進)이며, 어머니는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증된 김희적(金希迪)의 딸이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혔고, 개경에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 당대 일류 성리학자들에게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386년 34의 비교적 늦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과거 합격 이후에는 훗날의 태종인 이방원과 한마을에 살면서 서로 함께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1389년 나라의 국운이 다했다는 것을 예감하고는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이유로 고향인 선산으로 내려갔다. 이후 우왕의 부고를 듣고는 3년상을 행하였다. 조선 개국 이후 이방원이 그를 불러 관직을 제수하려 하였으나 글을 올려 두 왕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니, 이방원은 그 절의를 갸륵하게 여겨 예를 다해 대접해 주고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이방원이 왕으로 즉위한 이후 그가 사는 곳이 외지고 토지가 척박하다 하여 토지를 내려주었으나 그는 필요한 만큼만 받고 나머지는 모두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학문과 강학에 몰두하였는데, 그를 흠모하는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김숙자였다. 김숙자는 김종직의 아버지였고, 김종직은 이후 사림파의 기원이 되는 김굉필, 정여창 등의 선배였다. 즉 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 정여창-조광조로 이어지는 학맥이 이후 조선 사림의 학문적 시원이었던 셈이다. 저서로는 『야은집』과 『야은속집(冶隱續集)』이 있으며, 그밖에 그의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전해지고 있다. 사후에 오산서원에 배향되었는데, 오산서원은 1868년 대원군 시기 서원훼철령으로 인하여 철거되었고, 현재는 복원된 건물들이 경상북도 구미시에 남아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초7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북문北門을 경유하여 내려가니 그 험함이 서문西門의 갑절이었다. 10여리를 가서 대혜창大惠倉에 이르렀다. 좌측 가장자리 산기슭에 석굴石窟이 있었으니, 세상에 전하기를 길야은吉冶隱이 여기에 은거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석벽石壁이 깎은 듯이 서서 발붙일 곳이 없어 몸을 지탱하여 어떻게 기어 올라가할 지 알지 못했다. 또 몇 리를 가니 채미정采薇亭이 있었다. 채미정 가에 야은冶隱 유허비遺墟碑가 서 있었는데, 대개 야은은 고려高麗가 망한 후에 금오산金鰲山에 숨었으니, 여기가 그 땅이었다. 숙종의 어제시御製詩가 있었는데, 야은冶隱을 위해 읊은 것으로 따로 누각 하나를 채미정 뒤에 얽어서 봉안했다. 빽빽한 대나무와 긴 소나무가 채미정을 둘러 푸르렀으니, 사물과 사람이 그 고절高節을 함께 할 만하였다. 동남쪽으로 20여리를 가서 오산서원烏山書院에 이르렀다. 야은만 제사지냈는데, 조정에서 편액을 하사하였다. 우러러보고 절하고 마치고는 묘우廟宇의 오른쪽 가장자리 수십무數十武 산기슭에 비석이 있었다. 길이가 2장丈이고 앞에 ‘지주중류砥柱中流’ 네 개의 큰 글자를 새겼는데, 민중閩中 양청전楊晴天의 글씨를 베껴 바위에 새긴 것이었으며, 필력筆力이 힘이 있어 볼 만하였다. 뒤에는 음기陰記를 새겼는데 유서애柳西崖가 지은 것으로, 이것은 곧 세상에서 칭하는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였다. 사당 앞에 서로 바라보는 곳에 야은의 묘가 있었고, 언덕 너머에 장여헌張旅軒의 묘가 있었다. 문정선조文正先祖가 또한 일찍이 여기에 이르러 우러러 돌아보고 감흥을 일으켰으니, 단지 선현先賢의 유풍遺風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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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숙종비의 왕릉
야은 길재 묘
야은 길재 묘 장명등
야은 길재 묘비 정면
야은 길재 묘비 후면
야은 길재 봉분 좌측면
야은 길재 묘 문인석
야은 길재 묘 양석
청풍재 현판
청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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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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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 흥기문 현판
채미정 흥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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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 경모각 정면
채미정 경모각 현판
채미정 유허비
채미정 유허비각
채미정
채미정 구인재 현판1
채미정 구인재 현판2
채미정 구인재
채미정 하마비
지주중류비각 현판
지주중류비 정면
지주중류비각 정면
지주중류비각 전경
지주중류비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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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 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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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 금오서원중수기1
금오서원 금오서원읍청루중...
금오서원 서원중수기2
금오서원 금오서원중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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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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