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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에서 저주 사건이 발생하다
1630년 3월 15일, 날씨가 맑았다. 밤이 되어 들으니 임후가 안동으로부터 예안에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안동에서 저주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권상현이 지난 가을부터 병을 얻어서는 증세가 점차 심해지더니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치료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집안을 수색해보니 사람 뼈와 함께 흉악하고 요사스러운 여러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걸 보고 나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저주는 반드시 권익봉이 한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권익봉은 권씨 문중의 서얼이었다.
이 자가 이익으로 권상현의 종을 꾀어서 이와 같은 일을 벌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이 발각되자 사람들이 그 종을 가두어놓았다. 종은 갇힌 곳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는데, 이 역시 권익봉이 교사한 것이었다.
종이 죽자, 종의 부모를 포박하여 관아에 고하니, 종의 부모들이 ‘서얼 권익봉이 우리 자식을 꾀어 이런 요사스러운 저주를 하였다’고 모두 말하였다. 드디어 권익봉 부자를 포박하여 옥에 가두었는데, 권익봉은 자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씨 일문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할 것 없이 모두 연명으로 소장을 관청에 올렸는데, 도촌의 좌수인 권오란 자가 우두머리였다. 권오는 나이가 이미 77세였는데, 일족의 원한을 씻기 위하여 수고로움을 사양치 않았으니 아름다운 일이라 할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권익봉이 권상현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정말로 사소한 일이었다. 지난번 권상현이 삼계서원의 원장이 되었을 때, 권익봉이 오래도록 서원의 곡식을 갚지 않아 밀린 곡식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권상현이 이를 하나하나 바로잡으며 조금도 사적으로 봐주는 게 없었으니 이 일로 권익봉이 그를 크게 원망하였다고 한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로 그를 죽이고자 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흉악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신안 현감을 지낸 김중청이 또한 저주의 독을 맞고는 끝내 회생하지 못하였다. 그 역시 집안에서 인골이 아주 많이 나왔는데, 그의 이복동생인 김득청의 소행이었다. 최근 김득청의 종 춘금이란 계집이 그 일을 김중청의 종에게 몰래 말하여 일이 발각되었다. 그러자 관아에서 이들을 포박하여 갔는데, 김득청의 아들은 곤장 한 대도 치기 전에 사실을 다 말해버렸다고 한다.
그 아비인 김득청이 무덤을 파서 인골을 가져다 놓고 요사한 짓을 했다고 김득청의 셋째 아들과 두 종놈이 일일이 다 자복하였다고 한다.
사람을 해치는데 이런 해괴한 요술까지 동원하다니, 정말로 세상이 말세인 모양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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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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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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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령(金坽)
주제 : 조정의 동향
시기 : 1630-03-15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임후, 권상현, 권익봉, 권오, 김중청, 김득청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권벌 선생을 모신 삼계서원
이 이야기는 삼계서원 원장을 지낸 권상현이 문중의 서얼 권익봉에게 저주를 당하여 목숨이 위태한 지경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삼계서원은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에 있는 서원이다. 1588년(선조 21) 지방유림의 공의로 권벌(權橃)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0년(현종 1) ‘三溪(삼계)’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1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충정사(忠定祠), 8칸의 정일당(精一堂), 각 4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관물루(觀物樓), 환성문(喚惺門), 12칸의 주소(廚所) 등이 있다. 사우인 충정사에는 권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인 정일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등에 사용하고 있다. 동재는 제원(祭員)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2월과 8월 중정일(丁 간지가 들어간 두 번째 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편 이 서원에는 권벌이 소장하였던 책판 500장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경오년(1630, 인조 8) 3월 15일 맑음. 노천蘆川에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고 장편 율시를 덧붙였다. 밤이 되어 들으니, 임후任가 안동에서 광술光述의 집에 왔는데, 이광선李光先 군의 아들도 따라 왔다고 한다. ○ 권상현權尙賢이 지난가을부터 병을 얻어서 점차로 중해지더니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집안을 수색하여 보니 인골人骨과 흉악하고 요사스런 여러 물건들이 없는 게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르길, “이 저주는 반드시 아무개가 한 것이다.”라고 여러 말들이 자자하였는데, 이는 문중의 서얼 아무개를 지칭하는 것이다. 아무개는 이로움으로써 권상현의 종을 꾀어서 같이 일을 벌였다가 이에 이르러 발각되자 그 종을 가두었다. 종은 오두烏頭를 먹고 자살하였는데, 또한 아무개가 교사한 것이다. 종의 부모를 포박하여 관아에 고하니, “서얼 권익봉權益峰이 그의 자식을 꾀어 이런 요사스런 저주를 하였다.”고 모두 말하였다. 익봉 부자를 포박하여 옥에 가두었는데, 익봉은 자복하지 않았다. 권씨 일문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할 것 없이 연명으로 소장을 관청에 올렸다. 도촌道村의 좌수 권오權晤가 우두머리[疏頭]였다. 권오 씨는 이때 나이 77세였는데, 일족의 원한을 씻기 위하여 수고로움을 사양치 않으니 이 또한 아름답다 할 것이다. 임후 또한 이 일 때문에 안동을 거쳐 그 누이의 집에 들렀다. 권공權公이 익봉에게 한 것은 애초 큰일은 아니었다. 지난번 권공이 삼계서원三溪書院의 원장이 되었을 때, 익봉이 오래도록 원곡院穀을 갚지 않아 밀린 세금이 아주 많았었다. 권공이 하나하나 바로잡으며 조금도 사적으로 용납해주지를 않아서 익봉이 크게 원망하였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로 그를 죽이고자 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흉악한 사람은 이렇게 두려운 것이다. 또한 말세의 소치가 아닌 것이 없다. 신안 현감新安縣監을 지낸 김중청金中淸이 몇 년 전에 또한 저주의 독을 맞고는 끝내 회생하지 못하였다. 그의 집을 수색하여 인골을 아주 많이 찾아내었는데, 이복동생 득청得淸의 소행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근일에 득청의 종 춘금春金이 그 일을 신안新安의 종에게 몰래 말하였다. 하늘이 그 속을 이끌어내어 흉악한 자취가 드러나서 관아에 고발되고, 득청 부자를 엄습하여 체포하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다 포박하였다. 곤장 한 대도 치지 않아 득청의 아들이 다 말하였다. 그 아비가 무덤을 파서 인골을 취해 요사를 부렸다고 득청의 셋째 아들과 두 종이 일일이 다 자복하였다. 봉화 수령은 즉시 감사에게 보고하였고, 사람들은 다 시원하게 여겼다. 봉화 수령은 어질고 순하며 청렴결백한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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