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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주서가 될 사람을 고르는데 인재가 없다
1631년 10월 7일, 저녁 밖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성이염이 김령을 찾아왔다. 이유인즉, 그의 형인 성이성이 본인 다음으로 주서가 될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을 의논하기 위하여 동생을 보낸 것이었다. 지난번 이여익과 성이성이 나란히 주서가 되었는데, 영남 사람들만 잇달아 주서가 된다고 비아냥거리는 여론이 비등하자 둘 다 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여익은 곧 다시 제수되어 상경하였고, 성이성은 다시 조정에 복귀하지 않았다. 주서는 보통 체직되면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천거하도록 되어 있는데, 성이성이 천거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령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영남 쪽에서 김령이 아는 선비들 중 주서 직을 역임할 만한 사람이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 급제자들로 윤집, 채충원, 이괴, 홍주일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막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막 급제한 이들은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 홍문관에 분관 배치되어 권지(權知)로 근무한 이후 정식 관직으로 발령받는 것이 법도였다. 그런데 이들은 분관도 채 되지 않은 이들이었으니, 천거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한참 고민하던 김령의 머릿속에 김숭조가 떠올랐다. 그러나 김령은 평소 김숭조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데, 일의 형편상 그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김령은 김숭조의 이름을 언급하며 추천 명단에 넣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이후에는 더 이상 떠오르는 인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김령이 한 가지 제안을 더 하였는데, 최근 황호란 인물이 장인을 뵙기 위하여 안동에 와 있는데, 그 사람을 만나보고 의논해 보면 어떻겠냐고 한 것이다. 성이염도 그 제안이 괜찮았는지 김령의 말을 수긍하고는 그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당쟁으로 인해 영남 사람들의 조정 진출이 막힌 지 오래되었는데, 이렇듯 기회가 있어 좋은 자리에 진출할 기회가 있음에도 추천할 사람이 없으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대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한탄하지 말고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뜻을 펼칠 준비를 하는 것이 오늘날 영남의 젊은 선비들이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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