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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의 묘가 도굴당하다
1868년 4월, 박득녕은 또 한 번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서양인들이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날 충청남도 덕산에 상륙하여서 남연군 묘를 도굴하였는데,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고 다만 군기와 양곡을 약취하여 갔다고 한다. 서로 전쟁하는 사이어도 적장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였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는데, 저들은 과연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인 듯하였다.

이후에 이들 오랑캐들이 운현궁에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그 내용인즉 ‘당신이 산 사람을 살해한 것보다 우리가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 아버지 무덤을 파려고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간다. 뒷날을 기약한다.’ 라는 것이다. 이 서한을 본 대원군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일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영종도 순찰사가 남연군 도굴단에 참가했던 괴수 두 명을 붙잡아서 참살하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를 큰 경사라 칭찬하였는데, 도굴단의 대표는 서양 오랑캐이거늘 하수인 한 둘을 참살했다 하여 경사라 칭하다니,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였다.

윤 5월이 되자 왕의 교지가 내려왔다. ‘이번에 일어난 덕산군의 참변은 비단 조정뿐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통탄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 이들 해적을 섬멸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두 등용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대원군의 조치였다. 박득녕은 과연 이러한 전교가 저들 서양 오랑캐를 잡는데 도움이 될 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저들 서양인들이 점점 조선에서 방종하는 것은 참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과연 이 난국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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