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의병장 유인석이 요동으로 망명하였다는 소식을 듣다
1898년 4월, 오늘 박주대는 반가운 이름의 소식을 들었다. 바로 호서의병장 유인석의 소식이었다. 두 해 전, 중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 각지의 유림들이 의병을 거병하였다. 그는 그중에서도 의병대장으로 추대 받았던 인물이었다. 나중에 주상께서 직접 의병의 해산을 효유하자 하나 둘 의병들이 해산될 때도 그는 마지막까지 항전을 계속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유인석의 호는 의암인데, 사람됨이 정중하고 또 중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을미년에 거병할 당시 모친상을 당한 와중이었는데도, 나라의 일이 급하다며 의병장으로 나섰다. 비록 부모의 상에 의병을 이끌고 출전한 것은 칭찬할 일은 못되었지만, 서상열, 김백선 등과 더불어 나라 일을 바로잡으려는 충의로움만은 칭찬할 만하였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최근까지 충주에서 의병대를 이끌었는데, 패전하자 원수를 피하여 요동으로 망명하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의병장이기 이전에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학자였는데, 그곳 요동에서도 널리 강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제자들뿐 아니라 요동의 토착인들에게까지 항일의식을 고취시킨다고 한다. 본래 요동사람들은 성품이 매우 거칠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감복하여 불원천리 달려온 사람이 구름 같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의 교육이 차츰 요동을 변화시킨다는 소식이었다.

박주대는 직접 유인석을 만나볼 기회는 극히 적었지만,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그를 매우 신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타국 땅에서 나랏일을 위해 수고하는 그를 생각하며 그의 건강과 무운을 빌었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