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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고을에서도 만세 소리가 울려퍼지다
1919년 2월, 드디어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이 경상도 지역에서도 퍼지고 있었다. 지난 16일에는 예안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하고, 17일에는 안동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 와중에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된다고 한다. 봉화와 영천에서도 또한 만세를 불렀으며, 대구와 동래에서는 서울보다 조금 뒤늦게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이런 만세 열기가 계속된다면, 어쩌면 정말 독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세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자 안동군수 이선호가 도망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조금 잦아들자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서울과 지방의 학교 생도들이 모두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하고, 안동, 금소, 역촌 등의 마을 3백여 호에서는 솥, 물동이 등 살림살이들이 남김없이 다 부서지고 1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일본인들의 만행이라고 한다. 이들 마을 사람들이 일본 병참에 가서 만세를 불렀기 때문에 복수를 한 것이라 한다. 또 인근 은풍 마을에서도 여러 사람이 만세를 불렀는데, 또한 많이들 붙잡혀 갔다고 한다. 영해의 호지촌의 남씨들과 이씨들도 만세 운동에 많이 참여하였는데, 이 일로 혹독한 난리를 당했으며, 수곡마을의 유씨들도 마찬가지라 하였다. 정녕, 독립의 길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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