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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에 돌림병을 피할 곳이 없게 되다
1756년 4월 2일. 최흥원이 머무는 곳에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함께 머무는 사촌 통숙이 병이 들었는데, 증후가 틀림없는 돌림병이었다. 최흥원은 사촌 아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한편으로는 최흥원 자신은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였으나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환후는 그나마 심해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는 집의 처소도 불안하였는데, 그 집의 주인이 돌림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림병을 피해서 어머니는 다른 집에, 최흥원도 임시 처소에 나와 있는데 병을 피해간 곳마다 환자가 하나씩 누워 있는 셈이니 과연 병을 피하는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생각에 오후 늦은 시간에 중심 마을로 길을 나섰는데, 길에서 무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런데 할아버지 이야기로, 오늘 아침 서숙모께서 갑자기 작고하셨다는 것이다. 아! 이 무슨 재앙이길래 돌림병이 이 지경까지 극성이란 말인가! 이야기를 듣고 낙담하여 다시 처소로 돌아가니 사촌 통숙은 숨결이 막혀 곧 죽을듯한 형상이었다. 천지사방이 돌림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황망스러워, 최흥원은 한숨을 쉬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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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역중일기(曆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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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흥원(崔興遠)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56-04-02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최흥원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최흥원
◆ 조선시대 전염병과 대책
전염병은 병독(病毒)이 전염되는 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고 불러 왔다. 이 중 역(疫)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여(癘)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결국 오늘날의 처지에서 볼 때 역려란 좋지 않은 전염병이라고 해석되며 악성유행병을 의미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자 전염병 발생에 관한 기록은 더욱 자세하게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에 크게 발생해서 문제되었던 질병을 보면 두창(痘瘡)·홍역·콜레라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질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중국대륙은 물론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유행되어왔다. 실제로 두창은 4~5세기경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각국에 크게 퍼졌으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되어 아시아 전체에 공통된 질병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점차 역병을 두창이나 홍역 같은 발진을 수반하는 전염병과 말라리아 및 콜레라를 구별해서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개별적인 전염병의 기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즉 조선시대 사람들은 발진을 일으키는 질병을 두창·수두(水痘)·마진·풍진·홍역으로 구별할 수 있었으며, 장티푸스와 발진티푸스를 의미하는 온역과 해병(咳病) 등이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병명만으로 과거의 전염병 유행을 구체적으로 감별하기는 어려우며 사관(史官)에 따라서는 혼동해서 기록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점차 전염병이 구체화되고 세분화되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개국 후 처음으로 발생한 역병은 1396년(태조 5) 3월에 발생한 전염병이다. 특히 “경축성 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소집한 인부들에게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1525년(중종 20)에 이르자 조정에서는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기 위하여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지어 반포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수록해서 알리도록 힘썼다.
1550년(명종 5)에 이르자 말라리아가 크게 돌고 황달이 심해져 조선 정부는 『황달학질치료방(黃疸瘧疾治療方)』을 만들어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계속 전염병이 돌자 광해군 때에 이르러 새로운 『벽온방(辟瘟方)』과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발행되었으며, 효종 때에 이르자 또다시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전염병의 발생에 즈음해서 많은 사람들은 우선 역귀 때문에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불교에 의한 인과응보설이나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운기불화설(運氣不和說)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유행은 귀신의 조화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드렸다. 실제로 여제에 쓰였던 제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의서를 보면 계절이나 기후의 변화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일단 환자를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궁궐도 마찬가지고, 지방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에 나오는 유곡이나 금곡은 아마도 환자를 격리시켰던 곳이 아닌가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환자를 격리시켜 두고 의원들을 보내어 처방을 하거나 약을 먹였던 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4월 1일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동풍이 조금 잦아들었다. 어머니의 환후는 크게 심해지지 않았으나 주인이 앓기 때문에 매우 걱정이 된다. 종지촌의 장사를 보기 위하여 저물녘에 중심에 갔는데, 사촌 통숙이 또 크게 앓으며 이미 사흘이나 누워 있었다. 홀로 촌집 방에 누워 있기에 차마 잠시라도 떠날 수 없었으나 어머니께서 근심하실까봐 하는 수 없이 북계에 돌아와 잤다. 4월 2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사촌 통숙이 줄곧 앓고 있으니, 틀림없이 역질일 것이다.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머니의 환후 소식을 듣지 못하니, 답답하고 걱정이 되는 마음 견딜 수 없다. 새벽에 계집종을 급히 보냈다. 계집종이 돌아와 어머니의 환후가 심해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어 천만다행이나 주인의 병은 매우 위중하다고 하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중심으로 길을 나섰다. 길에서 무태無怠 할아버지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갑자기 서숙모庶叔母가 오늘 아침에 작고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애통하다. 이것이 무슨 재앙이기에 이 지경까지 치우침이 심한가. 사촌 통숙을 보러가니 숨결이 막혀 죽은 듯이 가망이 없는 같아 기름으로 대변을 나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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