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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상소를 올린 용안현감 이정
1759년 9월 6일. 오늘 이평중이 최흥원을 찾아왔다. 그는 품속에서 상소문 한편을 꺼내었는데, 매우 놀라운 소식을 함께 전해주었다. 용안현의 현감인 이정이란 사람이 동궁마마에게 상소를 올리려 하였는데, 승정원에서 이를 제지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이정이란 사람이 자신의 목에 칼을 찔러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상소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 자신이 그 상소문을 가져온 것이라고 하였다.
최흥원은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다. 그리고 상소문의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나라를 근심하는 벼슬아치의 심정이 매우 간절히 녹아 있었다. 최흥원처럼 관직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있는 선비가 감히 그 내용을 뭐라고 평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소감을 묻는 이평중의 질문에, 감히 내가 뭐라 평할 수 없는 글이라고 답하였다.
이평중이 돌아간 후, 최흥원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예전부터 도끼를 들고 상소를 한다든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한다는 고사를 여럿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상소가 막히자 자신의 목에 칼을 찔러 자결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록 그의 죽음이 크게 논란이 되지 못하였으나, 참으로 사람에게 놀랍고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우리 조선에 이런 관료가 있는가……. 최흥원은 어렴풋한 희망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은 나라를 위해 그리할 수 있는지를 반문하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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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역중일기(曆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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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흥원(崔興遠)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759-09-06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최흥원, 이평중, 이정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최흥원
◆ 조선시대 상소를 올리는 선비의 마음가짐
유성한(柳星漢)의 상소를 보고 이에 대한 상소를 준비하면서 저자의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본가에 들어가서 뵙지않고 담장밖에서 건강을 탐문하였다. 이에 어머니가 창문을 열고 아들에게 한양가는 길을 물었다 한다. 이는 전장에 나가면서 결의를 다지듯이 저자의 결의가 굳었음을 은유적으로 이야기 하는것이다.
이보다 앞서 1749년(영조 25)부터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는 1762년(영조 38) 정순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한구와 그 일파인 홍계희, 윤급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이 사도세자에 대한 비행10조목을 상소로 올리게 되어 뒤주에서 아사하는 참변을 당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임금이 되자 안동의 유생 이도현(李道顯)아들 이응원(李應元) 부자가 세자의 원통한 사실을 밝히고 관련자 엄벌을 주청했다가 함께 처형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상소하는 일에 대하여 죽음을 무릅쓰는 듯한 결의를 보이는 것이다. 보통 먼길을 떠나면서 어머니를 뵙고 떠나는 길을 알려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탐문만 한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창문을 열고 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것이다. 작자는 상소하는 일의 정당성을 이야기하였지만 마음의 결의를 다지기 이해 그렇게 말한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9월 6일 맑음. 어머니의 병환이 한결같이 완쾌되지 않으니 애가 타고 두렵다. 이평중李平仲이 찾아와서 용안 현감龍安縣監 이정李瀞이 죽음으로써 동궁에게 진달한 상소 초안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의 죽음이 조용하였으나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놀랍고 두렵게 하였는데, 그 소의 뜻이 과연 식견이 없는 자의 근심□이겠는가. 근심[★憂□]한 것이 초야에 있는 자의 견해로 감히 득실을 논할 내용이 아니다. 의원과 함께 아이 항진恒鎭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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