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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파천 소식을 듣다
1592년 5월 16일. 오늘 서울에서 갑사 1명이 도망쳐 이곳 선산 고을로 내려왔다. 전란의 소식을 들어보니 임금이 왜적을 피해 파천길에 오르셨다는 것이다. 이미 4월 그믐날 파천 길에 올랐는데, 5월 3일 무렵에 왜적이 도성에 쳐들어와 남녀 백성들이 달아나느라 서로 밟혀 죽었다고 한다. 이 도망친 갑사는 양근 고을과 충주 고을을 거쳐 산길을 따라 이곳까지 도주해 왔다고 한다.
이 소식이 부내에 전해지자, 민가의 동네마다 놀라서 동요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대년은 정경달의 손을 잡고는 “주상께서 서쪽으로 파천하셨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야한단 말이오.”라며 울부짖었다. 정경달은 성안의 인심이 이렇듯 동요하자, 소식을 전한 사람의 목을 베어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전대년이 있는 힘껏 말리는 바람에 중지하였다.
뜻밖의 소식에 망연자실해 있던 정경달은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도달한 결론은 하나였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헛되이 죽기보다는 차라리 왜적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정경달은 곧 부내의 관원들과 군사들, 그리고 양반들을 모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의 부모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처자식이 사로잡혀 너희들이 죽고자 한다면 차라리 왜적과 한 번 싸우다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자 모인 사람들 역시 결연한 눈빛으로 정경달의 명령에 따르고자 하였다. 그 자리에서 정경달은 허열, 김유일 등의 사람들을 시켜 군사를 모집하도록 하였다. 이미 임금이 파천에 올라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이란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찰나의 순간에 1,000여 명의 군사들이 모였다. 정경달은 이들 천 명의 용사들과 함께 금오산 아래 진을 치고 왜적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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