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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뭄과 눈병으로 모내기에 어려움을 겪다
1925년 윤4월 18일. 저녁 즈음 남붕은 들로 나가서 벼 묘판을 살펴보았다. 머지않아 모내기를 해야 해서 적당하게 자랐는지 살펴보러 나간 것이다. 다행히 묘판의 모는 2~3일 정도 지나면 모내기를 해도 될 정도로 자랐지만 날씨가 탈을 부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지만 올해 농사도 수월하진 않을 것 같아 남붕은 근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남붕은 자신의 농사 이외에도 종중의 농사도 살펴야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논과 밭을 다니느라 무척 일이 많았다. 게다가 올해는 여러 달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해야 할 시기에 강단(江端) 논에 댈 봇물이 없어 애를 태웠다. 부득이 지난달 12일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이 족친인 범일(範一) 아저씨 집의 논을 빌려 모판을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개량모범종(改良模範種)으로 4두락분을 먼저 만든 것일 뿐이고, 나머지는 모판을 만들 곳이 없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일꾼을 불러 강단(江端)의 논에 모내기를 시작하긴 했는데, 여러 일이 분주한 데다 요 며칠 눈병이 나서 모내기를 감독하지 못했다. 23일에는 일을 마치려고 했으나 아침부터 날이 흐린 게 아무래도 비가 올 듯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까지 훼방을 놓고 말았으니, 여러 가지 일이 순조로운 것이 없다.
다행히 다음날은 날이 매우 맑았다. 게다가 눈병도 조금은 호전되어 일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강단 논의 모내기는 일꾼 세 사람을 써서 하였다. 그동안 쓴 일꾼이 모두 스무 명인데, 전보다 7~8인이 늘어난 것은 못줄을 대면서 모내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저녁때까지도 일을 마치지 못하여 이웃 논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을 빌려서 강단 논의 모내기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담배를 사주어 사례하였는데, 그 값이 30전이었다.
강단의 논은 모내기를 마쳤지만, 다른 곳의 논도 걱정이었다. 가뭄이 심해 모내기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행히 28일에 단비가 내렸다. 이 비로 가물었던 논에 모내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며칠 후 날씨가 좋아서 아침을 먹은 뒤에 봉후(峰後) 논에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일을 시켜놓고 잡무가 있어 수하(水下)에 갔다가 다시 봉후 논에 모내기하는 것을 감독하고 저녁때 집에 돌아왔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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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해주일록(海洲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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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남붕(南鵬)
주제 : 모내기
시기 : 1925-04-12 (윤) ~ 1925-05-0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영덕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남붕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련 배경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원문 번역
1925년 4월 12일 무자 날이 맑았다. 비가 온 뒤 갠 날이 매우 상쾌하였으나, 오랫동안 가물던 나머지 냇물이 이어 흐르지 않아 봇도랑에 물이 없어 모판이 이루어지지 못하니, 하늘의 뜻이 마침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벽에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우고, 또 「선진편」을 외우니, 창이 이미 밝았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안연편」을 외우다가 마치지 못하였다. 아침 뒤에 남포南浦 숙부와 공선孔善 족조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공선 씨가 전에 평해平海에 갔을 때 부탁한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대개 나의 종5대조의 후계를 세우는 것을 평해 신기新基에 사는 종친에게 말하였다고 한 것이다. 괴시의 맹원孟元 족숙이 찾아왔다. 그저께 그의 사형인 박씨 친구 집에 왔다가 박이 데려다주고 간 것이다. 맹원 씨가 정오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먹은 뒤에 헤어져 갔다. 이 종친은 상당히 지식이 있고 뜻이 고상한데, 다만 과단성이 부족하여 아직 속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사헌白士憲 어른도 와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후사를 세우는 바른 길에 대하여 일러주었는데, 이 어른이 나에게 인척 형으로서 아들이 없어 그 종손자를 가지고 한 세대를 건너뛰어 후계자를 세우려고 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의리에 맞지 않다고 반대하고 다시 아들 항렬에서 가려 세우라고 하였다. 이 어른이 내 의견을 따라줄지 모르겠다. 오후에 번포樊浦 족조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선영에 큰 변고를 만나서 위안례(慰安禮)를 행한 일 때문이었다. 이날 오후에 범일範一 씨 집 논에 모판을 만들었다. 대개 여러 달 비가 오지 않고 강단江端에는 봇물이 없어 부득이 논을 빌렸다. 그러나 이 또한 개량모범종改良模範種으로 4두락 분을 먼저 만든 것일 뿐이고, 나머지는 할 만한 곳이 없으니 어찌 하랴! 밤에 공선 씨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1925년 윤 4월 18일 갑자 날이 맑았다. 새벽에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웠다. 또 「학이편」을 다 외웠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위정편」을 다 외웠다. 아침 뒤에 권 생질 등이 서협西峽으로 떠났다. 「팔일편」을 외웠다. 오후에 퇴계 선생의 시에 주석을 달았다. 보았다. 「이인편」,「공야장편」을 외웠다. 저녁에 들로 나가서 벼 묘판을 보았는데, 멀지 않아 모내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합당한지를 살핀 것이다. 밤에 「옹야편」을 조금 외웠다. 1925년 윤 4월 23일 기사 날이 흐렸다. 새벽에 일어나니 창이 이미 밝았다. 대개 밤이 매우 짧을 뿐만이 아니라, 지난밤에 오랫동안 앉아있었기 때문인가? 눈과 코가 아프기 때문인가? 4,5개월 안에 처음 과실을 범하였다.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웠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아침 뒤에 족친들을 수정守亭 초상집으로 보내려고 계사소繼嗣所 회계에서 돈 14원을 내고 향촉과 종이를 갖추었는데, 비가 와서 가지 못하였다. 강단江端의 논에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비가 훼방을 놓고 말았으니, 여러 가지 일이 지장을 받았다. 이날 눈병이 심하여 책을 보고 읽는 것을 다 그만두었다. 저녁에 누워있었으나 이런 점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여 밤잠을 설치기에 이르렀고, 더욱이 몸을 단속하고 살필 수 없으니 한탄스럽다. 1925년 윤 4월 24일 경오 날이 매우 맑았다. 새벽에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웠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창이 밝아서야 일어났다. 아이들에게 눈의 혹을 빼내게 하니 눈을 뜨는 데 조금 도움이 되는 듯하였다. 아침 뒤에 족친들을 수일정守一亭으로 보냈으니, 부조 물품을 보내고 조문하기 위함이었다. 가산佳山 존장과 향중의 노인들이 남면南面의 번포樊浦와 와구瓦邱 등지로 놀러갔다가 와서 마을에서 묵었기 때문에 가서 뵈었다. 다 마치지 못한 강단 논의 모내기를 일꾼 세 사람을 써서 하였다. 전후로 쓴 일꾼이 모두 20인데, 전에 비해 7~8인이 늘어난 것은 못줄을 대면서 모내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저녁때까지도 일이 남았으므로 이웃 논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을 빌려서 마치고 담배를 사주어 사례하였는데, 그 값이 30전이었다. 이날 눈병이 조금 나았으나 아직 책을 볼 수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오후에 남포南浦 족숙, 건숙叔及, 아우와 모여 회를 먹으면서 문중의 일을 간략하게 논의하였다. 저녁에 수일정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상가에서 부조 물품을 받아주지 않아 서로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이웃에 사는 우현禹玄 씨 집에 물품을 두고 왔다고 하였다. 밤에 「안연편」을 ‘덕을 높이고 의혹을 분변함[崇德辨惑]’에서부터 편 끝까지 외웠다. 또 「자로편」을 하루치 과제까지 외웠다. 1925년 윤 4월 28일 갑술 비가 내렸다. 새벽에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우니 창이 이미 밝았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춘추사전春秋四傳』 서문을 읽었으니, 대개 다른 책을 제쳐놓고 다시 『춘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동 재사의 재직이 비를 무릅쓰고 갔다. 대개 가뭄 끝에 비가 내려 모내기를 하는 것이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아침 뒤에 『봉주집鳳洲集』의 「춘왕정월에 대한 분변[春王正月辨]」을 보았는데, 대개 ‘건자건인建子建寅’에 대한 의문이 있어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으나 아직도 바른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좌전』의 두예杜預 서문으로 1일 과제를 10번 읽고 오후에 외웠다. 책 몇 장을 베꼈다. 오후에 날이 흐렸다. 큰 가뭄 끝에 이런 단비가 내렸으니, 높아 가물었던 논에 모내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밤에 『두율』 상편을 조금 외웠다. 1925년 5월 2일 정축 날이 맑았다. 새벽에 치성을 드렸다. 잠箴과 『춘추』 경문을 외우고, 『좌전』 서문을 외웠다. 아침에 문안드리고 사당을 참배하였다. 『좌전』 서문에서 『공양전』, 『곡량전』 서문까지 읽었다. 아침 뒤에 봉후峰後 논에 모내기를 하였다. 잡무가 있었다. 오후에 일이 있어 수하水下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봉후 들에 모내기하는 것을 보았다. 밤에 「학이편」을 조금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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