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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하동암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 가마 타고 산에 오르다 추락사한 하동 군수
1934년 3월 29일, 지리산 유람에 나선 김택술은 이른 아침에 곧장 천왕봉(天王峯)에 가려고 도촌(島村)에 사는 강주원(姜周元)을 찾아가 산위로 오르는 길을 물었다.
천왕봉과의 거리가 40리라고 하였다. 안내자 한 사람을 사서 점심을 준비하여 싸가지고 바쁜 걸음으로 올라갔는데 산 위에는 묵을 집이 없다 하기에 당일에 돌아올 계획을 세운 것이다.
10여 리를 가니 큰 바위에 ‘하동암(河東巖)’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옛날 하동군수가 가마를 타고 산에 오르다 떨어져 상처를 입었는데, 이 바위에 이르러 죽었으므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두려워, 더욱더 몸조심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제석당(帝釋堂)에서 점심을 먹었다. 통천문(通天門)의 잔도(棧道)를 거쳐 미시(未時,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 초에 비로소 천왕봉 꼭대기에 이르렀다. 이 산의 높이가 높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봄이 지나 여름으로 가는대도 나뭇잎이 무성하지 않고 철쭉꽃도 피지 않은 것은 아마도 높고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닌가?
호남과 영남에는 대개 큰 산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굽어보니 마치 어른이 아이를 대하듯 작게만 보였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서쪽과 남쪽, 동쪽 삼면의 바다가 마치 허리띠를 두른 듯 멀리 보이며, 일본의 대마도도 어렴풋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날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전혀 끝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사람들의 말로는 “이산은 신선의 산이다. 신선과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정상에 오르기 전에 비와 안개로 인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김택술의 오늘 산행은 마침 그믐이다. 그믐은 어둡고 비가 많은 것이 상례인데 다행히도 비를 맞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하늘의 도움도 인연이 있어서인가? 역시 가소로운 일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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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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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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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택술(金澤述)
주제 : 놀이와 유람, 고사와 기원
시기 : 1934-03-29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함양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김택술, 조자정, 강주원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하동바위 〔河東巖〕전설
하동바위〔河東巖, 해발 900m〕는 지리산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올라가는 능선 길 위에 놓여 있는 바위이다.
- 옛날 하동군수가 가마를 타고 산에 오르다 떨어져 상처를 입었는데, 이 바위에 이르러 죽었으므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김택술-두류산유록〉
- 세상에 전하기를 하동태수가 이곳에 이르러 지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이 바위 아래서 묵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박여량-두류산 일록〉
- 옛날옛날 지리산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이었다. 함양원님과 하동원님께서 산자수명 지리산의 장날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목으로 향했다. 풍류를 즐겼던 두 원님은 우연한 만남에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내기장기를 두었는데 하동 원님이 이겼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게 없던 터에 승자를 한번 놀려줄 요량으로 눈앞에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설마 큰 바위를 가져갈 수야 있겠느냐는 말투로 빈정대었다.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후일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져가기로 하고, 우선 바위 이름을 하동 사람들의 바위란 뜻으로 “하동바위”로 명명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산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그만 하동바위로 그 이름이 굳어버렸다고 한다.
- 옛날 옛적 자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를 위해 천왕봉을 찾았던 하동고을 원님 내외가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이곳 바위 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그때 지리산 산왕대신으로부터 현몽(現夢)과 함께 아이를 잉태하여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의 바위를 ‘하동암(河東巖)’이라고 명명하였다.
◆ 원문 번역
29일, 이른 아침에 장차 천왕봉(天王峯)에 바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도촌(島村)의 강주원(姜周元)을 찾아가 산으로 올라가는 노정을 물어보니 천왕봉과의 거리가 40리라고 하였다. 안내자 한 사람을 사서 점심을 준비하여 싸가지고 바쁜 걸음으로 올라갔는데 산 위에는 묵을 집이 없다 하기에 당일에 돌아올 계획을 세운 것이다.
10여 리를 가니 큰 바위가 있는데 ‘하동암(河東巖)’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옛날 하동군수가 가마를 타고 산에 올라가다가 추락하여 상처를 입었는데 이 바위에 이르러 죽었으므로 이런 이름을 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두려워 더욱더 몸조심하라는 부모님의 경계를 상기하였다.
제석당(帝釋堂)에서 점심을 먹은 후 통천문(通天門)의 잔도(棧道)를 거쳐 미시(未時)[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 초에 비로소 절정에 이르렀다. 높이는 높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봄이 여름으로 갈 때에는 나뭇잎이 피지 않고 철쭉꽃도 피지 않았으니 아마도 높고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닌가?
호남과 영남에는 대개 큰 산이 많은데 굽어보니 막연하여 어른이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서쪽과 남쪽, 동쪽 삼면의 바다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허리띠 같으며 일본의 대마도를 아스라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전혀 끝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사람들의 말로는 이산은 신선의 산이니 신선과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절정에 오르기 전에 비와 안개로 인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나의 오늘 산행은 마침 그믐이니 어둡고 비가 많은 것은 상례인데 다행히도 만나지 못하였으니 아마도 하늘의 도움을 얻어 인연이 있었던 것인가? 또한 가소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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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하동수령, 절경 감상을 위해 무모하게 험한 곳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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