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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뱀의 해, 성장을 희망하며
《웹진 담談》을 시작합니다

〈천경자의 1951년 작품 《생태》〉(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화백이 그린 《생태》는 화백을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화백은 개인적 고통에 잠겨있었다고 합니다. 훗날 천경자 화백은 “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참 싫어한다. 그러나 가난, 죽음, 불안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뱀을 그렸다. 징그러워 몸서리치며 뱀집 앞에서 스케치를 했으며, 그러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뱀에 가진 느낌은 우리 대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맹독을 가진 징그럽고 무서운 뱀. “뱀 같은 사람”이라는 비유는 뱀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그대로 내보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뱀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꽤 억울할 듯합니다.


〈예조에서 작성한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구 일대의 가뭄을 보다 못한 관찰사가 기우제를 지내는 모양이었다. … 그런데 오늘, 아침 식후에 먹구름이 모여들고 하늘이 뭔가가 내릴 듯한 기운이 있어 잔뜩 기대하였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바로 구름이 개어 버리고 비가 내릴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이것으로 관찰사의 기우제가 허사가 된 것이었다. 사실 관찰사의 기우제에 여러 가지가 허술했던 것은 사실이다. 본래 기우제는 용의 기운을 띈 진일이나 뱀의 기운을 띈 사일에 지내는 것이 보통인데, 관찰사의 기우제는 그렇지 않았다. 날짜를 택하는 데에도 정성이 부족하였는데, 하늘이 감동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최흥원, 『역중일기』, 1748년 7월 5일-(출처: 스토리테마파크)


조선시대, 가뭄이 닥치면 조정에서는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경건하게 제삿날을 정하면 미리 재계(齋戒)해야 합니다. 몸과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마늘·생강·파 등과 같은 냄새 나는 음식은 먹으면 안 됩니다. 흉하고 더러운 일에는 상관하지 말아야 했죠. 이런 정성을 다해야지만 하늘도 감복하여 바람을 들어준다고 믿었습니다. 기우제·기청제(祈晴祭) 같은 의례는 통치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의례를 치렀는데도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통치자의 부덕을 탓했습니다. 이러한 기우제는 진일(辰日)이나 사일(巳日) 같은 특정 날에 지냅니다. 용과 뱀의 기운이 액운을 떨쳐버린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뱀은 나쁜 기운을 날려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혜와 변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내년은 푸른 뱀의 해입니다. 푸른색을 띤 뱀은 희망과 성장, 그리고 평화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푸른 뱀의 해인 2025년, 11살이 된 《웹진 담談》도 안 좋은 일은 떨쳐 버리고, 한 뼘 더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디지털 아카이브 “스토리테마파크”〉 바로가기더보기


《웹진 담談》은 선인의 일기장에서 다양한 이야기 소재를 뽑아 구축한 아카이브 “스토리테마파크”와 함께 합니다. “스토리테마파크”를 대중에게 알리는 한편, 시의성을 반영한 글을 수록하여 온라인으로 발행합니다. 우리는 《웹진 담談》을 통해 옛이야기를 전달하고,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옛 기록에는 아직 주목받지 못한 생생한 일상이 잠들어 있습니다. 매달, 시의성을 고려한 주제를 선정하고 전문 연구자 한 분과 창작자 또는 관련기관 실무자 한 분이 이 이야기를 깨워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1년간 함께 하실 네 명의 저자는 각각 창작 웹툰 “스토리웹툰 독(獨) 선생전”, 창작 단편소설 “백이와 목금” 그리고 “선인의 이야기, 오늘과 만나다”를 통해 전통 기록의 콘텐츠 사례를 소개해 주실 것입니다. 기관에서도 “스토리테마파크를 쓰다”에서 스토리테마파크에서 찾아낸 보석같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록하겠습니다다. 여러분의 창의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독자 코너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우리는 《웹진 담談》을 통해 선인과 우리, 옛날과 지금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옛이야기는 여러분의 창의적 사고를 촉진하여 영화·드라마·소설·게임·웹콘텐츠 등 다양한 창작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웹진 담談》이 여러분의 삶에 작은 재미와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2025년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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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신경미(한국국학진흥원 전임연구원)
“괴이한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하다”

머리가 세 개 달린 개구리와 꼬리가 세 개달린 뱀이 싸우는 모습 박한광 외, 저상일월, 1921년

1921년, 박면진은 올해에만 세 가지 이상한 일을 들었다. 얼마 전 전주에서는 두 마리의 용마가 나왔다. 신문에도 보도되었는데, 신문에서는 이들을 홍옥마라고 하였다. 이들은 바람과 구름이 거세게 일어나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박면진이 사는 예천 고을의 수려비 앞에서 머리가 세 개나 달린 개구리와 꼬리가 세 개가 달린 뱀이 서로 싸워 결국은 머리가 세 개 달린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은 사건이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것이 두 개나 나온 것도 신기하지만,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었다 하니 이 또한 괴이한 일이었다.

또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은현 마을의 들메나무 밑에 있는 논에서는 두꺼비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한 것들이 몇 천, 몇 만 마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몰려 있다고 한다. 이놈들이 서로 껴안은 듯이 거의 3두락 정도의 논을 꽉 메우고 있다가 10여 일 후에나 사라졌는데, 개구리 알 같은 것을 토해 놓고 떠났다 한다.

나라가 망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또 이런 기분 나쁜 징조들이 나타나니 박면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큰일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런 징조들이 일본인들의 나라가 망할 징조는 아닐까? 박면진은 슬며시 이런 기대도 해 보았다.

“뱀에게 물려 죽은 종삼이”

뱀에 물린 노비 최흥원, 역중일기, 1763-07-11~

1763년 7월 11일. 맑고 간혹 구름이 끼는 더운 날이었다. 아들 주진이의 묫자리를 보기 위하여 오늘은 지관을 데려올 계획이었다. 지관을 부르러 가는 길에 타고 갈 요량으로 미리 말을 빌려 두었는데, 이 말을 잠시 보리를 옮기는 데 쓰다가 갑자기 넘어져 버렸다. 일어나긴 했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니, 아마 이 말로 지관을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진 최흥원은 이런 소소한 일에도 한없이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최흥원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집안의 종들 중 종삼이란 녀석이 있었는데, 엊그제 뱀에게 물렸었다. 그런데 뱀독에 중독이 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살아날 가망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 종삼이란 녀석은 죽은 아들 주진이를 잘 따르던 녀석이었기에, 최흥원은 더더욱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 집주인이 덕이 없어 자꾸 이런 집안의 우환이 생기는 것일까. 최흥원 본인에게 무언가 액운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집에서 가족과 종들이 죽어가는 일이 발생하자 최흥원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마저 데려가더니 이제는 아들이 가장 아끼던 종놈마저 데려가려 하다니. 최흥원은 하늘을 향해 원망마저 들기 시작하였다.

“뱀이 얼굴을 스치고 가다”

방에 들어온 뱀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양반 최흥원, 역중일기, 1763-06-01~

1763년 6월 1일. 아침이 되자 최흥원은 깜짝 놀랐다. 어젯밤에 방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제 도둑이 들었던 그 시각, 최흥원은 생전 처음 느끼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어제 최흥원은 아픈 아들 주진의 거처를 계정으로 옮겼다. 그리곤 셋째 아우를 만나보고는 다시 계정으로 돌아와 아픈 아이를 돌보았다. 설사가 그치지 않은 아들 주진은 피골이 상접하여 흡사 해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픈 아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괴롭고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렇게 고단하고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삼경쯤 되었을 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나게 큰 뱀 한 마리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그리곤 불을 찾아 밝히고 가까스로 뱀을 때려 잡았다. 태어난 이래 그렇게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겨우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뱀이 얼굴 옆을 스치던 그 시간, 최흥원의 방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최흥원은 이를 알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최흥원 얼굴을 스친 뱀은 누군가가 일부러 풀어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났다. 최흥원은 그럴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헤아려보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하였다. 그냥 한 번의 놀랄 만한 일로 여기고 지나가자. 최흥원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몇 자 되는 뱀을 때려죽이다”

종을 시켜 뱀을 잡는 모습 오희문, 쇄미록, 1596-06-16~

1596년 6월 16일, 오늘은 종일 음산하게 비가 내렸다. 말더듬이 계집종과 개금이, 그리고 품삭일꾼 두 명으로 하여금 어제 끝내지 못한 김매기를 시켰는데, 역시 오늘도 끝내지 못하였다. 밤에 창 앞에 누워 있는데, 처마 끝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상한 생각에 올려다보니 뱀이 새집을 찾으며 처마에 걸려 있었다. 깜짝 놀란 오희문은 종 덕노를 시켜서 갈고리로 뱀을 걸어 내려서 때려죽였다.

뱀이 오희문 집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처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올려다보니 처마 끝에 뱀이 걸려 있었다. 그 뱀은 길이가 무려 몇 자나 되고 검붉은 반점 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사가 분명하였다. 새집을 찾아서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갔던 것이다. 만일 잡아 죽이지 않으면 필경 사람을 해칠 뻔했으므로, 뱀을 잡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잡은 뱀을 보니 얼룩진 무늬가 먼젓번 죽였던 뱀과 똑같은 것이었다. 독이 있는 뱀이 이와 같이 자주 출몰하니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사이에 이와 같은 큰 뱀을 두 마리나 잡아 죽였으니, 혹 집안에 이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오희문은 마음에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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