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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뱀들의 능동적 상상의 시대

용이 지상을 떠날 때면 천둥과 번개, 폭우와 함께 물기둥이 솟구친다고 하지요.

푸른 용의 해인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떠나가는 시기에 우리 사회는 혼돈에 처해 있습니다. 혼돈(Chaos)이란 원래 모든 것의 시작점이며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 상태를 가리킵니다. 질서를 이루기 위한 가능성의 원천이자 창조의 기반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혼돈을 무의식의 상징으로 보며, 개인이 성장하고 자기실현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혼돈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사고와 행동의 길을 열어줍니다. ‘계엄’이라는 어둠이 퍼지자 마자 우리 국민들은 각자 소중한 빛들을 하나씩 가지고 나와 빛으로 가득 찬 새로운 혼돈의 질서를 형성하였습니다. 같은 시간에 진행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식에 전세계 문학 독자들이 함께 기뻐하였고, 케이팝(K-POP)으로 연결된 푸른 영혼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학교와 가정에서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은 2025년에도 연구자, 미디어 전문가, 콘텐츠 창작자와 제작자, 학생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웹진의 이야기로 연결하고 협업하며, 토론하고 공부하며 창작하는 역할을 할 것을 약속하며 131호를 준비했습니다.

김수영 선생님의 ‘새해, 매번 같지만 매번 새로운’에서는 가치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매 순간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희소성 추구에서가 아니라 순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바니타스화(Vanitas, 畵)와 우로보로스(ouroboros) 같은 상징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성에 대한 사유를 펼치며, 2025년 한 해를 가치와 의미로 채우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제안합니다.

두번째 글 ‘푸른 뱀의 해, 성장을 희망하며 《웹진 담談》을 시작합니다’는 우리 웹진의 2025년 시작을 알리는 글입니다. 뱀이 상징하는 지혜와 변화를 통해 희망과 성장을 이야기하며, 선조들의 기록에서 발굴한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으로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매달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뽑아낸 시의성 있는 주제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며, 독자와 창작자 간의 대화를 이끌어냅니다. 다양한 창작의 영감이 되는 《웹진 담談》은 여러분의 상상력과 삶에 작은 기쁨을 선사할 것입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독(獨)선생전’ 12화 ‘연’은 정월대보름 수표교 근처에서 열리던 연싸움을 소재로 합니다. 기술과 투지를 기반으로 하는 전투적인 놀이인 연싸움을 위해 연을 제작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살펴보는 느낌이 들도록 작품으로 그려내어 주셨습니다. 이 행사는 한 해의 액을 멀리 날려버리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연을 띄워 보내는 데서 의미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하수상하고 어둠 속에서 빛의 소중함을 느끼는 지금의 세월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이수진 선생님의 ‘뱀의 유혹’은 뱀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신화와 문학, 예술 속에서 등장하는 유혹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기독교적 맥락에서 원죄와 연결된 뱀, 문학 속의 악마적 존재, 그리고 뮤지컬과 연극에서 표현된 유혹의 형상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이를 통해 유혹이라는 단순한 부정적 개념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선택, 성장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다양한 작품과 철학적 사유를 엮어내며, 독자에게 유쾌한 통찰과 상상의 여정을 선사합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뱀의 해가 오다’는 전통적 설화와 상징을 바탕으로, 섣달 그믐의 풍습과 뱀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전통적 신앙과 공포스러운 유머를 결합한 글입니다. ‘삼시충’과 ‘경신수야’ 같은 풍습을 통해 옛사람들의 지혜를 소개하고, 뱀을 재물과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조명합니다. 독자들은 글을 통해 전통 속에서 반복되는 시간과 변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뱀이 지닌 상징적 가치와 함께 다가오는 한 해를 새롭게 준비하는 마음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측 불가능이라는 복잡성을 품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푸른 뱀들이 능동적으로 상상하고 창작하며 집합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해 나가는 하루하루가 필요한 시대가 을사년 (乙巳年)과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저희 《웹진 담談》은 독자 여러분들과 능동적 상상을 함께 펼쳐 나갈 것을 약속하며,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며 독립운동을 벌이며 해방을 염원하시던 이육사(李陸史) 시인의 〈광야〉를 시(詩) 선물로 배달합니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편집자 소개

공병훈
서강대학교에서 미디어경제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독립언론 《반디뉴스》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 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기술혁신 환경에서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괴이한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하다”

머리가 세 개 달린 개구리와 꼬리가 세 개달린 뱀이 싸우는 모습 박한광 외, 저상일월, 1921년

1921년, 박면진은 올해에만 세 가지 이상한 일을 들었다. 얼마 전 전주에서는 두 마리의 용마가 나왔다. 신문에도 보도되었는데, 신문에서는 이들을 홍옥마라고 하였다. 이들은 바람과 구름이 거세게 일어나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박면진이 사는 예천 고을의 수려비 앞에서 머리가 세 개나 달린 개구리와 꼬리가 세 개가 달린 뱀이 서로 싸워 결국은 머리가 세 개 달린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은 사건이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것이 두 개나 나온 것도 신기하지만,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었다 하니 이 또한 괴이한 일이었다.

또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은현 마을의 들메나무 밑에 있는 논에서는 두꺼비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한 것들이 몇 천, 몇 만 마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몰려 있다고 한다. 이놈들이 서로 껴안은 듯이 거의 3두락 정도의 논을 꽉 메우고 있다가 10여 일 후에나 사라졌는데, 개구리 알 같은 것을 토해 놓고 떠났다 한다.

나라가 망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또 이런 기분 나쁜 징조들이 나타나니 박면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큰일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런 징조들이 일본인들의 나라가 망할 징조는 아닐까? 박면진은 슬며시 이런 기대도 해 보았다.

“뱀에게 물려 죽은 종삼이”

뱀에 물린 노비 최흥원, 역중일기, 1763-07-11~

1763년 7월 11일. 맑고 간혹 구름이 끼는 더운 날이었다. 아들 주진이의 묫자리를 보기 위하여 오늘은 지관을 데려올 계획이었다. 지관을 부르러 가는 길에 타고 갈 요량으로 미리 말을 빌려 두었는데, 이 말을 잠시 보리를 옮기는 데 쓰다가 갑자기 넘어져 버렸다. 일어나긴 했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니, 아마 이 말로 지관을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진 최흥원은 이런 소소한 일에도 한없이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최흥원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집안의 종들 중 종삼이란 녀석이 있었는데, 엊그제 뱀에게 물렸었다. 그런데 뱀독에 중독이 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살아날 가망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 종삼이란 녀석은 죽은 아들 주진이를 잘 따르던 녀석이었기에, 최흥원은 더더욱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 집주인이 덕이 없어 자꾸 이런 집안의 우환이 생기는 것일까. 최흥원 본인에게 무언가 액운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집에서 가족과 종들이 죽어가는 일이 발생하자 최흥원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마저 데려가더니 이제는 아들이 가장 아끼던 종놈마저 데려가려 하다니. 최흥원은 하늘을 향해 원망마저 들기 시작하였다.

“뱀이 얼굴을 스치고 가다”

방에 들어온 뱀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양반 최흥원, 역중일기, 1763-06-01~

1763년 6월 1일. 아침이 되자 최흥원은 깜짝 놀랐다. 어젯밤에 방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제 도둑이 들었던 그 시각, 최흥원은 생전 처음 느끼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어제 최흥원은 아픈 아들 주진의 거처를 계정으로 옮겼다. 그리곤 셋째 아우를 만나보고는 다시 계정으로 돌아와 아픈 아이를 돌보았다. 설사가 그치지 않은 아들 주진은 피골이 상접하여 흡사 해골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픈 아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괴롭고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렇게 고단하고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삼경쯤 되었을 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나게 큰 뱀 한 마리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그리곤 불을 찾아 밝히고 가까스로 뱀을 때려 잡았다. 태어난 이래 그렇게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겨우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뱀이 얼굴 옆을 스치던 그 시간, 최흥원의 방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최흥원은 이를 알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최흥원 얼굴을 스친 뱀은 누군가가 일부러 풀어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났다. 최흥원은 그럴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헤아려보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하였다. 그냥 한 번의 놀랄 만한 일로 여기고 지나가자. 최흥원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몇 자 되는 뱀을 때려죽이다”

종을 시켜 뱀을 잡는 모습 오희문, 쇄미록, 1596-06-16~

1596년 6월 16일, 오늘은 종일 음산하게 비가 내렸다. 말더듬이 계집종과 개금이, 그리고 품삭일꾼 두 명으로 하여금 어제 끝내지 못한 김매기를 시켰는데, 역시 오늘도 끝내지 못하였다. 밤에 창 앞에 누워 있는데, 처마 끝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상한 생각에 올려다보니 뱀이 새집을 찾으며 처마에 걸려 있었다. 깜짝 놀란 오희문은 종 덕노를 시켜서 갈고리로 뱀을 걸어 내려서 때려죽였다.

뱀이 오희문 집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처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올려다보니 처마 끝에 뱀이 걸려 있었다. 그 뱀은 길이가 무려 몇 자나 되고 검붉은 반점 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사가 분명하였다. 새집을 찾아서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갔던 것이다. 만일 잡아 죽이지 않으면 필경 사람을 해칠 뻔했으므로, 뱀을 잡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잡은 뱀을 보니 얼룩진 무늬가 먼젓번 죽였던 뱀과 똑같은 것이었다. 독이 있는 뱀이 이와 같이 자주 출몰하니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사이에 이와 같은 큰 뱀을 두 마리나 잡아 죽였으니, 혹 집안에 이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오희문은 마음에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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