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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웹진 '담談' 85호 - '여성의 날' 특집 조선 여성시대

글쓴이 : 관리자 [ 2022-02-24 ]



명창부터 시인까지… 조선 시대의 ‘커리어우먼’

이달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지난 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여명이 참정권, 노동조합 결성 등을 주창하면서 벌인 시위를 기념하고자 유엔(UN)이 제정했다. 이날을 상징하는 것이 ‘빵’과 ‘장미’이다. 당시 시위 핵심 구호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던 것이 유래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6일 한국국학진흥원은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조선 여성시대’를 주제로 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을 발행했다. 이 웹진에선 가부장 사회로 알려진 조선 시대에서도 이름을 떨친 여성들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

◆부조리를 시로 경쾌하게 풀어낸 여류 노비 ‘얼현’

얼현(乻玄)은 ‘시’ 하나로 조선 당대의 선비들을 사로잡은 여류 노비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김령(1577~1641년)의 일기 ‘계암일록(溪巖日錄)’에선 얼현(乻玄)의 일생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얼현은 천성(현재 영주)의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의 여종이었다가 어떤 자의 첩이 됐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이별을 당했다고 한다.
얼현은 김령을 찾아올 때 시권(詩卷)을 가져왔는데, 그 시어(詩語)가 매우 맑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얼현은 도덕과 윤리로 무장했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날 것’을 파헤쳤다. 역사적 사실과 부조리함은 시로 경쾌하고 해악적이게 풀어내 그의 시는 당시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종에서 명창이 된 ‘석개’

조선시대 음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여성은 기녀(妓女) 혹은 노비였다. 송지원 교수의 ‘나의 길은 노래의 길, 여성 음악가 석개’는 그녀의 삶을 조명한다.
이 책을 살펴보면 유몽인(1559-1623년)은 문집 ‘어우야담’에서 “근 100년 동안 그녀만 한 명창이 없었다”고 석개(石介)를 칭송했다.
석개는 송인(1516~1584년)의 어린 종이었다. 송인은 중종의 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한 인물이다. 16세기에 문장과 인망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송인은 석개에게 물 길어오기, 약초 캐기 등을 시켰지만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종일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결국 송인은 그녀에게 노래를 배울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석개는 실력을 갈고닦아 최고의 명창이 됐다고 한다.
송인이 지어 놓은 동호(東湖)의 수월정(水月亭)에 가면 석개는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송인은 석개의 뛰어난 노래 솜씨를 시로써 남겼다고 한다.

◆연안 이씨가 아들의 과거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쓴 상벽가

우리나라 최초 내방가사인 ‘상벽가(雙璧歌)’를 쓴 사람은 바로 안동 하회마을 류사춘의 정부인(貞夫人) 연안 이씨(1737∼1815년)이다.
상벽가는 연안이씨가 아들 류이좌와 큰조카 류상조의 동방급제(同榜及第)를 축하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지었던 글이다. 이 작품은 작자와 연대가 명확한 가장 오래된 내방가사로 평가받는다.
내방가사는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역사에서 소외됐던 한국 여성들의 고단했던 삶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국가의 위기와 사회적 변혁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출처 : 세계일보



■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80호 보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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