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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웹진 '담談' 89호 - 조선시대 웰-다잉(Well-Dying)

글쓴이 : 관리자 [ 2022-02-24 ]




삶에 더 집중한 조선의 웰-다잉
- 소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가는 길목 -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지난 1일, “조선시대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7월호를 발행하였다. 두렵고도 슬픈 주제인 죽음을 두고 선인들은 사명 받고 태어나 살아가는 삶에 더 집중하였다. 주어진 소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을 남긴 기록을 살펴보고, 숨을 거두는 이를 관찰하고 장례 지내는 이야기를 소개하여 막연히 두렵게만 여기던 죽음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웰-다잉(Well-Dying)’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모델링된 좋은 삶과 좋은 죽음
죽음 자체를 기리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


강유현 작가의 [죽음 권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안락함과 명예로움이 두루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은 시대를 막론한 인류 보편의 바람이고,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삶을 걸어 맞이하게 된 죽음은 쉬이 미담이 되어 전파되고 ‘좋은 죽음’으로 모델링된다. 정몽주의 죽음에서, 야담집에 실린 열녀 박씨의 자결, 그리고 병자호란 때 예조판서 김상헌, 을사조약 시기 민영환의 죽음에서 그 영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좋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삶’ 역시도 모델링되어 공동체 속 개인들의 삶에 방향키가 되어준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은 공동체에 의해 명예롭게 전시되고, 이를 접한 개인들은 삶과 죽음에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고 전한다.
죽음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죽음은 더는 고인에게 속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닌 공동체에 속한 무언가가 되고 만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기릴 때는 그냥 슬퍼야 한다고 믿는다며 조선시대에도 고인의 성별이나 신분, 나이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상실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쓰인 만시(輓詩)를 소개한다.

      那將月姥訟冥司,    어쩌면 저승에 가 월하노인에게 송사라도 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다음 생에는 부부가 서로 처지가 바꿔지도록 하고 싶소.
      我死君生千里外,    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
      使君知我此心悲.    그대로 하여금 이 슬픈 마음을 알게 하리라.
                                  (김정희, 『완당전집』 제10권, 「도망(悼亡)」)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월하노인에게 송사라도 하여서라도 자신이 대신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죽은 부인에게 고백하고 있다. 부인의 부덕을 칭송하거나 집안을 위한 기여 및 희생 등으로 부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점이 이 만시를 지은 김정희의 진심 어린 슬픔을 더욱 잘 드러내어 준다.
사회나 집안, 혹은 어딘가에 속한 삶이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삶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기리는 본질에 가까우며, 헤어짐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 삶을 기억해주고, 죽음 그 자체를 기리는 일이야말로 사회·공동체에 빼앗기지 않은 아주 개인적인 ‘웰-다잉’이 아닐까 하는 신조를 밝힌다.

하늘로 올라간 혼을 불러 좀비도 물리친 초혼(招魂)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고종일기(考終日記)]에서 위독한 백부를 방문하여 상을 치르는 과정을 한편의 엽편소설처럼 풀어낸다. 백부가 작고 후 마당에 모여 유족들이 밤새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조선시대 죽음에 관한 생각과 유교적 철학 및 장례 절차에 관한 내용이 펼쳐진다.
백부는 유언을 남겨 분급기에 적어두었고, 자식들이 모두 모여 임종을 지키는 종신(終身)도 하였으며, 준비를 미리 마쳐 크게 혼란스럽지 않은 장례를 치르게 된 소설 속 백부의 죽음이 조선의 웰-다잉에 대한 기준이 아닐까.
혼백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등장인물들은 왕고모부가 시신을 염습하고 손발을 묶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냐며 펼쳐놓은 경험담으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왕고모부가 50년 전 문상갔던 오 진사가 갑자기 벌떡 상체를 세우고 눈에 초점이 없는 조음비(弔陰匪=좀비)가 되었고, 좀비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가 도망가 있던 왕고모부가 오 진사에게서 벗겨낸 윗도리로 초혼(招魂)을 하였다. 오 진사의 몸으로 하늘로 간 혼이 돌아오도록 ‘복’이라고 외치고, 한 번은 하늘·한 번은 땅·한 번은 죽은 사람을 관장하는 신이 사는 북쪽을 향해서 ‘복’이라고 외쳤다. 그 후, 혼이 돌아와서 다시 쓰러진 오 진사의 손발을 묶었다며 이야기를 마친다.

나를 애틋하게 기억해줄 이를 만드는 일

권숯돌 작가의 [오늘의 일기 – 잘 살다 잘 죽기]에서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속 <양반 부인의 상을 치른 비부(婢夫)> 이야기를 웹툰으로 소개한다. 자식 없이 쓸쓸히 죽은 양반 이씨 부인의 상에 비부(婢夫) 복삼(福三)이 머리를 풀고 나타나 상차(喪次)에서 망자를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천한 비부가 양반 부인의 장례에서 상주 노릇을 한다며 끌어내리려던 사람들은 세 살 때 부모를 잃은 복삼이를 이씨 부인이 거둬 키워주었다는 사정을 알고는 이를 기특하게 여겼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동안 또는 죽은 후에라도 저렇듯 애틋하게 기억해줄 사람을 만들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일이 아닐까?”라고 전하며 “우리의 상여를 꾸미는 일은 사는 동안 사는 날까지 결국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웰다잉”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남은 이들을 위한 의식, 장례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산 자는 죽고, 죽은 자는 살아가는]에서 개인적인 장례에 대한 경험담을 통해 장례란 결국 남아있는 이들을 위한 의식임을 깨달았다는 소감과 함께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산 자들의 삶으로 끝을 맺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영화 <축제>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한 사람이 떠날 때 지키는 수많은 절차에서 살아있는 자들이 얽히고설키며 죽은 자를 위한 장례가 산 자들의 축제가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 대사에서 유교는 현세적인 하나의 생활계율이자 학문이고, 살아서의 효는 계율이지만 죽어서의 효는 종교적 개념이 되기에 장례식은 규율과 종교가 만나는 접점이라 전하며 장례는 가장 진지한 효도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1996년 영화 <축제>와 같은 해에 같은 소재로 영화 <학생부군신위>도 개봉하였다. 할머니가 떠나며 남은 나이를 자식과 손자에게 남기고, 그것을 받은 손자는 어른이 되어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나눠주는 등장인물 속 대사를 통해 좋은 삶의 끝은 산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편액이야기]에서는 경상북도 성주군 한개마을 북비고택 한개마을에 건립한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의 유훈이 담긴 ‘독서종자실’ 편액을 다룬다. 이원조가 할아버지 이민겸의 자녀 교육 철학과 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는 학문을 기념하고 자손들의 글 읽는 소리를 기대하며 해당 편액을 걸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선비로서 죽음을 막연한 두려운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가학을 전승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스토리이슈]에서는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저자 이상호의 인터뷰를 담았다. 현존하는 사료를 기반으로 경상감사였던 조재호(趙載浩)가 중앙정부에 올린 살인사건 보고서[장계]가 매우 자세히 남아있어 미시사적으로 분석하여 조선시대 살인사건을 재구성하였다. 시신을 면밀히 검시하여 사인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당시 기록 속에서 현대에서도 통하는 법의학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 조선시대 형사사건의 처리되는지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의 활동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웰다잉(well-dying)이란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언급하며 “오랜 기간 OECD국가들 중 자살률 1위를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는 말은 어쩌면 소박한 바람”일지라도 선인들의 주어진 삶의 소명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과정으로서 죽음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고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8권을 기반으로 한 6,10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