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 검색

상세검색

디렉토리검색
검색어
시기
-

활용사례

[보도자료] 웹진 '담談' 90호 - 선비의 재테크

글쓴이 : 관리자 [ 2022-02-24 ]



`선비도 먹고 살아야지` 국학진흥원, 조선시대 재테크 소개

웹진 담 8월호에 이야기 선봬
강선일·박영서·권숯돌 작가
다산 정약용·김 생원 등 인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펴내


[경북신문=서인교기자] 조선시대 선비들도 식솔들을 먹이고 가문과 공동체를 지탱하기 위해 재산을 합리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재테크를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선보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8월호에 '선비의 재테크(財tech)'를 소개했다.
선비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지만 가족과 가문 일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지역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 선보인 강선일 작가의 '조선 선비들의 슬기로운 화식(貨殖) 생활 - 뽕밭에서 재테크의 교훈을 얻다'에 따르면 조선의 선비들이 왜 뽕나무를 심으려 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선비가 청빈한 삶만을 고집했다면 그 많은 가솔을 거느릴 수 없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글공부를 할 수 없었다.
작가는 식니당(食泥堂) 이재운(李載運)이 쓴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빌어 설명한다. 제목 중 화식(貨殖)은 현대용어인 재테크에 견줄만한 '재산을 모으고 늘린다'라는 뜻이다. 부의 특징을 전면화하고 아홉 명의 거부(巨富)의 일화를 소개한 이 책은 소위 '부자 되는 길'을 알려주는 당대의 재테크 서적이다.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와 부자를 찬미할 뿐 아니라 떳떳하게 부를 추구하며 상행위를 인정하자고 제언하기 때문이다.
처지가 곤궁하면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기가 녹록치 않으므로 선비들은 유학적 가르침과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며 '적당한' 치산의 방안을 궁리해야 했다. 부동심을 갖고 온전히 경제 활동에 뛰어들지 않는 적당함을 유지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유배지에서 제갈공명이 은거할 때 뽕나무를 심은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 그의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뽕나무를 심어 키움으로써 생계를 이어가라'라는 내용을 담았다. 제자들에게도 과일과 채소를 기르고, 양잠하면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며 제안했다.

박영서 작가는 'CEO 김 생원의 운수 좋은 날'에서 재테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 생원의 이야기를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풀어낸다. 닭장을 쳐서 그 병아리 마릿수와 달걀 개수를 매번 헤아리고, 병아리를 해치는 개를 쫓아낸다. 일 년 내내 애지중지 벌을 키워 얻은 꿀을 서울보다 시세를 더 쳐준다는 함경도까지 시종을 보내 꿀을 팔게 보냈는데 곧 돌아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감출 길 없지만 선비가 돼서 시문에는 관심 없고 살림에만 사활을 건다는 소문이 돌고부터는 정말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가 벌을 키운 건 십 수 년 전부터 눈독 들인 땅을 사기 위함이었지만 속내를 누구에게도 내비칠 수 없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와중에 참석한 문중 회의에서는 선비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권숯돌 작가의 '이달의 일기-거저 크는 돈나무'에서 오희문(吳希文)의 일기 '쇄미록' 속 매 이야기를 웹툰으로 소개한다. 재테크의 수단으로 오늘날에도 동물, 식물, 곤충 등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듯이 매를 바라보는 선인들의 마음과 고충 등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매를 잡기 위해 그물을 쳤지만, 미끼로 쓰는 닭만 5마리를 잃은 채 허탕 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신에게 제사까지 지내 멋진 매를 잡았으나 집안에는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매를 맡겼다. 하지만 맡아준 사람이 본인 실속을 차리는 것에 화가나 결국 데려왔으나 먹이를 먹지 않아 속앓이한 후 비싼 값에 파는 등 조선 시대의 매가 가진 높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경북신문   

■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90호 보도기사

ㆍ경북신문(2021.08.04)_기사보기 ▶
ㆍ뉴시스(2021.08.04)_기사보기 ▶
ㆍ우리문화신문(2021.08.20)_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