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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일기장에서 최고의 스토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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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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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36세 선비 김령의 과거시험기 (9) 가을날이 축복하는 금의환향길 서울에서 합격축하연까지 마친 김령은 1612년 9월 19일, 드디어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과거 시험을 위해 상경하던 길은 퍼붓는 비로 고생스러웠는데, 금의환향하는 길은 지나는 곳마다 단풍과 노란 국화가 아름다웠다. 무르익은 가을 경치는 시로 읊기도,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경상도에 접어들자 아내가 길 위의 김령에게 보내온 술을 마시기도 했다.9월 27일, 김령은 출발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아 고향집에 당도했다. 그는 관대를 갖추고 부모님의 신주를 배알했다. 관대를 갖춘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밖에 보여드릴 수 없음에 김령은 슬피 흐느꼈다. 제찬을 진설하고 독축(讀祝)을 하는데 여러 친척들이 방문하여 회포를 풀었다. 긴 여정에 피곤하고 고달팠지만, 김령은 다음날에도 선조의 사당에 차례로 배알하고, 가는 곳마다 술을 마셨다.

  • 중국 가시는 길에 중국책 좀 사다 주십시오! - 중국가는 사신에게 부탁한 책이 수년을 지나 전달되다 1612년 2월 19일, 3년 전쯤 택룡이 강원도 영월현감(寧越縣監)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관찰사 한덕원(韓德遠) 영공(令公)이 사은사(謝恩使)로 연경(燕京)에 간다기에, 택룡은 인삼을 조금 마련하여 중국 서적을 약간 사고 싶다고 관찰사에게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 후 택룡이 들으니, 그가 과연 『성리대전(性理大全)』 20책, 『통감(通鑑)』과 『송감(宋鑑)』 합해서 20책, 그리고 화청(靴靑) 하나를 사왔었다고 하였다. 1612년 2월 19일, 이날 택룡은 애남이를 진봉리(進封吏) 택수(擇守)에게 보내서 책을 찾아오게 했다. 사람을 보내니 택수가 『성리대전』 한 질을 먼저 가지고 와서 택룡에게 전해 주었다. 그런데 전해주면서 말하길 그 중 3권을 호남감영으로 보내었는데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덕원의 아들 한언(韓琂) · 한섭(韓) 형제는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현규(玄圭, 검은 빛의 옥으로 만든 홀)를 보내와 정을 표시하였다. 사흘 뒤 2월 22일 저녁, 축생(丑生)이 고을 읍내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온 『통감』과 『송감』 20책 그리고 화청(靴靑)을 택룡에게 전하였다. 고을 아전인 택수가 서울에 갔다가 가지고 왔었는데, 『성리대전』을 제외한 나머지 책과 물건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택룡에게 전달된 것이다.

  • 목화밭에 씨 뿌리자 장대비가 내리다 - 손쓸 계책 없는 백성들의 삶 1625년 4월 6일, 일찍 시작된 장마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지루한 장마는 보리에 해가 될 뿐만 아니라, 목화에 더욱 해가 되었다. 4월 4일에서 5일, 이틀에 걸쳐 농가에서 처음으로 목화를 심었는데, 목화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심자마자 비가 오는 것이다. 1623년과 1624년에도 목화가 금처럼 귀했는데, 이처럼 올해 또 심자마자 비가 내리니 김령은 백성들의 삶이 걱정되었다.요역과 부세가 거듭 나오는 날에 백성들의 삶은 손쓸 계책이 없다니. 면포(綿布) 한 필 값이 쌀 열두세 말 정도이다. 곡식이 귀한 봄여름 때 면포 값이 이처럼 폭등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로 인해 1625년의 목화 농사도 순조롭지 않을 걸 생각하니, 김령은 백성들이 도무지 연명할 길이 없다는 판단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오늘의 일기

노새 한 마리와 시종 두 명을 데리고 길을 떠나네 - 지리산 유람의 시작

http://diary.ugyo.net/viewer/view?#node?itemId=DY&cate=img&depth=3&upPath=&dataId=ACKS_DY_00500144_0010_000_00000 송병선(宋秉璿), 두류산기(頭流山記) 1879-07-30 ~

1879년 7월 30일, 지리산(智異山)은 우리나라의 남악〔南嶽,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다섯 명산, 즉 오악의 하나로서, 남쪽의 지리산을 말함. 오악은 동쪽의 금강산, 서쪽의 묘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백두산, 중앙의 삼각산을 말함〕으로 백두산(白頭山)의 지류가 흘러 이 산을 이루었기 때문에 또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한다. 송병선은 일찍이 지리산 북록(北麓)을 유람했었다. 〔[지리산북록기]가 있음〕 기묘년(己卯年, 1879년, 고종 16년) 초가을 음력 7월에 묵은 빚을 갚는 기분으로 노새 한 마리와 시종 두 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고종사촌 동생 김성례(金聖禮)는 일이 있어서 같이 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단성(丹城)의 사인(士人) 달지(達支) 이근배(李根培)가 때마침 그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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