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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36세 선비 김령의 과거시험기 (9) 가을날이 축복하는 금의환향길 서울에서 합격축하연까지 마친 김령은 1612년 9월 19일, 드디어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과거 시험을 위해 상경하던 길은 퍼붓는 비로 고생스러웠는데, 금의환향하는 길은 지나는 곳마다 단풍과 노란 국화가 아름다웠다. 무르익은 가을 경치는 시로 읊기도,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경상도에 접어들자 아내가 길 위의 김령에게 보내온 술을 마시기도 했다.9월 27일, 김령은 출발한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아 고향집에 당도했다. 그는 관대를 갖추고 부모님의 신주를 배알했다. 관대를 갖춘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밖에 보여드릴 수 없음에 김령은 슬피 흐느꼈다. 제찬을 진설하고 독축(讀祝)을 하는데 여러 친척들이 방문하여 회포를 풀었다. 긴 여정에 피곤하고 고달팠지만, 김령은 다음날에도 선조의 사당에 차례로 배알하고, 가는 곳마다 술을 마셨다.

  • 어느 여름날, 고찰 부석사 선방에 별빛이 쏟아지다 김령은 아침으로 죽을 한 그릇 바삐 먹고, 부석사(浮石寺)로 갔다. 겨우 30리 거리밖에 안되어 정오가 되기 전에 도착하였다. 중들에게 밥을 지으라 하고는 경내를 둘러보았다.아미타불을 안치해놓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웅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는 동서 회랑이 연결되어 있는데, 서쪽 회랑 끝으로 세워진 취원루(聚遠楼)는 높고 시원하게 확 트여 있어 한 눈에 백 여리가 보였다. 첩첩으로 쌓인 여러 산들이 흩어져 있는데, 아득한 시선 가운데 오직 학가산만이 동남쪽에 우뚝 솟아있었다. 옛 사람들이 써놓은 이름이 수없이 많은데, 주신재(周愼齋)가 1542년에 이곳에 놀러 와서 벽에 쓴 글씨는 먹 빛깔이 아직도 완연하게 남아 있었다.무량수전 남쪽 계단 앞에는 작은 누각이 붙어있고, 그 아래에는 법당이 누각을 등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종루가 있고, 종루의 아래에는 놀랍도록 장대한 사천왕상이 호위하고 서있었다.동북쪽으로는 숲길이 해를 가리고 조릿대가 온 산에 가득하였다. 조사당(祖師堂)에 이르면 처마 밑에 나무 한 그루가 벽 틈새로 뿌리를 내린 채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사찰을 창건한 의상대사가 꽂아둔 지팡이에서 가지가 나고 잎이 생겨 수풀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였다.저녁 무렵에 내려와 밥을 다 먹고 선방으로 돌아오니 감실에는 이미 등불이 밝혀졌고 풍경 소리가 울렸다. 서늘한 바람이 그치질 않고 별빛은 난간에 쏟아지는데, 누운 채 동파(東坡)의 시 ‘반룡사(盤龍寺)’를 읊으니 더욱 풍미가 있었다.

  • 좀처럼 낫지 않는 폐병, 각종 보약과 지인들의 병문안 김령은 1606년부터 1607년 하반기까지 폐질환을 앓는다.1606년 7월 20일 용궁(경상북도 예천)에서 동당시를 치르고 예안으로 돌아가는 25일부터 비가 많이 와서 어렵게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8월 4일 오후에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편치 않더니 6일부터 몹시 아프더니 8일에 김봉길, 평보 형 및 사수 형제, 이지 형제, 이실 등과 술을 마시고 바람을 쐬고는 몸이 더욱 상해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한다. 10월 30일경에는 천식 증세가 나타난다.지인들이 병문안을 오고, 진피, 생강, 오미자, 꿩, 산수유 등의 각종 약재와 한약을 보내준다. 김령은 계속해서 죽력, 보중익기탕, 보중탕, 이진탕, 팔미환, 익위승양탕, 현토단고본환, 활담탕 등을 복용한다. 병이 낫기 전까지 각종 제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내가 지내고, 대문밖 출입을 하지 못한다.1607년 1월 3일에는 갑자기 과식을 한 것같이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가래침과 기침도 나왔다. 결국 가래를 뱉으니 피가 섞여 나왔다. 28일에는 콧물과 가래침이 여전히 나오고 구들이 차가워서인지 대변이 묽어지더니 밤에는 내리 설사를 했다.병은 더욱 악화되어 3월 2일에는 약을 물어보기 위해서 영천(榮川)에 사람을 보냈다. 병이 든 뒤로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나는 열이 불과 같고, 오줌이 붉고 등골도 땅기고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이 하루도 그렇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담이 결리는 증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원기(元氣)도 소모되고 몸이 고달팠다. 이러한 증세 때문에 기운이 위로 치솟아 숨이 가팔라지고 우려를 자아내게 하여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어깨의 통증도 그치지 않으니 근심스럽고 염려되는 마음이 만 가지나 된다.4월 13일에는 가슴 속이 더부룩하여 고통스러웠다. 소금 끓인 물을 큰 대접으로 1대접 마시고 가래를 조금 토해 냈지만 몸만 고달플 뿐 소용이 없었다.5월 18일에는 가슴 속이 답답하게 막히는 것이 마치 물체 덩어리가 휘저으면서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한참 있으니 곧 진정되었다.6월 11일, 새벽에 몽정(夢精)을 했다. 염려되고 염려된다. 저녁에 뒤뜰로 나가니 담기(痰氣)가 더부룩하게 차서 올라 왔다.윤6월 7일, 어제 저녁부터 치통 증세가 있었는데 오후에 다시 증세가 시작되었다. 살구씨를 구워 물고 있으니 잠시 통증이 멎는 것 같았으나 가슴 속에 담기(痰氣)가 꽉 찼다. 내일 영천에 사람을 보내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데, 갑자기 오한과 열이 나고 몸이 오싹한 것이 아주 불편했다. 밤새도록 괴롭게 시달렸다. 지극히 걱정되고 걱정된다.7월 19일, 재재기와 콧물이 그치지 않아 자못 괴롭다. 핫옷(솜옷)에다 겹옷을 덧입었다. 오시(오전11시~오후1시)쯤 재채기와 콧물이 더욱 심해져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가슴 속도 불쾌했다. 밤에 다시 재재기와 콧물이 나오고 이를 틈타 가슴 속에서 천식이 발작하여 먼저 목구멍이 막히고 호흡이 몹시 민망해져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슴 속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고통이 극심한데 자리에 누우니 코가 막히고 가슴 속이 더부룩하며 가래 꿀꺽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지속되고 호흡이 곤란하여 잠을 잘 수 없었다. 몹시 고민되고 피곤하다.7월 28일, 김령은 밥을 먹은 뒤 용보가 돌아가고 피곤하여 자다가 저물녘에 일어나 점심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배가 불편하여 뒷간에 가서 내리 설사를 했다. 배가 칼로 내젖는 듯하여 참을 수 없었다. 대개 아침에 소고기 일여덟 점을 먹고, 밥 먹을 때 또 선지를 먹고, 다시 편육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병을 앓고 난 뒤라 기운이 손상되고 위가 약해진 탓에 곽란(癨亂)을 만나고 설사를 여러 번 하고나니 한기가 들고 떨리며 바로 현기증이 나는 것이 거의 수습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음과 기운이 아주 괴롭고 피곤하고 눈앞이 급하여 가래가 더 생기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양미수(粱米水)를 많이 마셨으나 토할 수 없었다. 급하게 서숙을 불러 와서 살펴주도록 부탁했다. 판사·생원 두 형 및 대이, 덕유(德裕) 등이 모두 왔다. 밤에 두세 차례 설사를 했다.9월 20일, 병의 증세가 조금 덜하다. 예제(禰祭)를 처음에는 오늘로 정했다가 병이 낫질 않아 더 몸을 조리하면 직접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내일로 물렸다. 하지만 21일에는 병으로 아직도 몸이 고달파 제사를 지낼 수 없어서 집사람을 시켜 대신 지내게 했는데, 몹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침에 음복을 나누어 보냈다.이후 질병은 완화되었고 1609년 8월 17일, 병을 앓은 뒤 처음 내성에 갔다.

오늘의 일기

깊은 산 속, 부역에 시달려 숨어든 백성과 한가로이 노니는 선비들이 만나다

http://diary.ugyo.net/viewer/view?#node?depth=2&subCntReal=0&dataId=ACKS_DY_00500345_0010 조식(曹植), 유두류록(遊頭流錄) 1558-04-22 ~

1558년 4월 22일, 지리산 유람 중인 조식은 쌍계사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쌍계사와 신응사 두 절은 모두 두류산의 깊숙한 곳에 있어, 푸른 산봉우리가 하늘을 찌르고 흰 구름이 산 문턱에 걸려 있다. 그래서 인가가 드물 듯 하지만 오히려 이곳까지 관청의 부역이 미쳐, 식량을 싸들고 부역하러 오가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부역에 시달리다보니 모두 흩어져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절의 승려가 조식에게 고을 목사에게 편지를 써주기를 청하였는데, 부역을 조금 줄여달라는 내용이었다. 고할 곳 없는 사정을 가엾게 여겨 헝겊에 편지를 써서 주었다. 산에 사는 승려의 형편도 이러하니 산골 백성들의 사정은 어떻겠는가. 정사는 번거롭고 부역은 과중하니 백성들이 끝내는 거처 없이 떠돌아,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조정에서 바야흐로 이를 염려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들의 등 뒤에서 나 몰라라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이 어찌 진정한 즐거움이겠는가?인숙이 벼루를 쌌던 보자기에 시 한 수를 써달라고 부탁하여, 조식은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高泿雷霆鬪(고은뇌정투) 높은 풍랑은 우레와 벼락이 다투는 듯하고 神峰日月磨(신봉일월마) 신령스런 봉우리 해와 달이 연마한 듯 高談與神宇(고담여신우) 신응사에서 함께 한 고담준론에서 所得果如何(소득과여하)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강이가 이어 다음과 같이 썼다.溪湧千層雲(계용천층운) 시내엔 천 층 구름과 같은 물기운이 솟구치고, 林開萬丈靑(임개만장청) 숲에는 만 길 푸른 숲이 우거졌네. 汪洋神用活(왕양신용활) 넘실대는 시내에 정신이 활기를 찾고, 卓立儼儀刑(탁립엄의형) 우뚝 선 봉우리에 몸가짐이 반듯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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