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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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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어느 여름날, 고찰 부석사 선방에 별빛이 쏟아지다 김령은 아침으로 죽을 한 그릇 바삐 먹고, 부석사(浮石寺)로 갔다. 겨우 30리 거리밖에 안되어 정오가 되기 전에 도착하였다. 중들에게 밥을 지으라 하고는 경내를 둘러보았다.아미타불을 안치해놓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웅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양 옆으로는 동서 회랑이 연결되어 있는데, 서쪽 회랑 끝으로 세워진 취원루(聚遠楼)는 높고 시원하게 확 트여 있어 한 눈에 백 여리가 보였다. 첩첩으로 쌓인 여러 산들이 흩어져 있는데, 아득한 시선 가운데 오직 학가산만이 동남쪽에 우뚝 솟아있었다. 옛 사람들이 써놓은 이름이 수없이 많은데, 주신재(周愼齋)가 1542년에 이곳에 놀러 와서 벽에 쓴 글씨는 먹 빛깔이 아직도 완연하게 남아 있었다.무량수전 남쪽 계단 앞에는 작은 누각이 붙어있고, 그 아래에는 법당이 누각을 등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종루가 있고, 종루의 아래에는 놀랍도록 장대한 사천왕상이 호위하고 서있었다.동북쪽으로는 숲길이 해를 가리고 조릿대가 온 산에 가득하였다. 조사당(祖師堂)에 이르면 처마 밑에 나무 한 그루가 벽 틈새로 뿌리를 내린 채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사찰을 창건한 의상대사가 꽂아둔 지팡이에서 가지가 나고 잎이 생겨 수풀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였다.저녁 무렵에 내려와 밥을 다 먹고 선방으로 돌아오니 감실에는 이미 등불이 밝혀졌고 풍경 소리가 울렸다. 서늘한 바람이 그치질 않고 별빛은 난간에 쏟아지는데, 누운 채 동파(東坡)의 시 ‘반룡사(盤龍寺)’를 읊으니 더욱 풍미가 있었다.

  • 중국 가시는 길에 중국책 좀 사다 주십시오! - 중국가는 사신에게 부탁한 책이 수년을 지나 전달되다 1612년 2월 19일, 3년 전쯤 택룡이 강원도 영월현감(寧越縣監)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관찰사 한덕원(韓德遠) 영공(令公)이 사은사(謝恩使)로 연경(燕京)에 간다기에, 택룡은 인삼을 조금 마련하여 중국 서적을 약간 사고 싶다고 관찰사에게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 후 택룡이 들으니, 그가 과연 『성리대전(性理大全)』 20책, 『통감(通鑑)』과 『송감(宋鑑)』 합해서 20책, 그리고 화청(靴靑) 하나를 사왔었다고 하였다. 1612년 2월 19일, 이날 택룡은 애남이를 진봉리(進封吏) 택수(擇守)에게 보내서 책을 찾아오게 했다. 사람을 보내니 택수가 『성리대전』 한 질을 먼저 가지고 와서 택룡에게 전해 주었다. 그런데 전해주면서 말하길 그 중 3권을 호남감영으로 보내었는데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덕원의 아들 한언(韓琂) · 한섭(韓) 형제는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현규(玄圭, 검은 빛의 옥으로 만든 홀)를 보내와 정을 표시하였다. 사흘 뒤 2월 22일 저녁, 축생(丑生)이 고을 읍내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온 『통감』과 『송감』 20책 그리고 화청(靴靑)을 택룡에게 전하였다. 고을 아전인 택수가 서울에 갔다가 가지고 왔었는데, 『성리대전』을 제외한 나머지 책과 물건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택룡에게 전달된 것이다.

  • 내 노비가 군대에 차출되다니 - 군수에게 청원서를 올리다 1612년 2월 16일, 김택룡의 집에 권농(勸農)이 왔다. 금석이가 속오군(束伍軍)에 편입되어 안동으로 군사훈련을 가야하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문서[패자(牌子)]를 전달하러 온 것이다.1616년 3월 11일, 김택룡은 영천(榮川, 지금의 榮州) 군수에게 편지를 써서 세복이 편에 보냈다. 더불어 개석이의 속오군 일 때문에 소지(所志)도 써서 보냈다.

오늘의 일기

노새 한 마리와 시종 두 명을 데리고 길을 떠나네 - 지리산 유람의 시작

http://diary.ugyo.net/viewer/view?#node?itemId=DY&cate=img&depth=3&upPath=&dataId=ACKS_DY_00500144_0010_000_00000 송병선(宋秉璿), 두류산기(頭流山記) 1879-07-30 ~

1879년 7월 30일, 지리산(智異山)은 우리나라의 남악〔南嶽,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다섯 명산, 즉 오악의 하나로서, 남쪽의 지리산을 말함. 오악은 동쪽의 금강산, 서쪽의 묘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백두산, 중앙의 삼각산을 말함〕으로 백두산(白頭山)의 지류가 흘러 이 산을 이루었기 때문에 또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한다. 송병선은 일찍이 지리산 북록(北麓)을 유람했었다. 〔[지리산북록기]가 있음〕 기묘년(己卯年, 1879년, 고종 16년) 초가을 음력 7월에 묵은 빚을 갚는 기분으로 노새 한 마리와 시종 두 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고종사촌 동생 김성례(金聖禮)는 일이 있어서 같이 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단성(丹城)의 사인(士人) 달지(達支) 이근배(李根培)가 때마침 그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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