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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세찬 풍랑에 배를 구할 수가 없도다
1846년 3월 5일, 길을 나설 때 신석룡이 창부(倡夫)를 거느리고 동행하여 한강의 배에 올랐다. 봄바람 속에 창부가 부는 쌍피리가 젊은 날의 풍취를 더해주었다. 20리를 가서 말죽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비를 무릅쓰고 10리를 가서 신원에서 잤다.
1849년 4월 15일, 신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족형과 경백이 머물러 기다리다가, 내가 뒤에 왔기 때문에 앞에 간 우씨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였다. 한강의 사평 나루터에 이르니 풍랑이 세차게 일어 배를 빌릴 수가 없어서 나루터의 가게에서 묵었다.
1855년 5월 14일, 한강의 물이 크게 불어 한처사·박사문·홍최수(자는 득로)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물이 불어난 모양을 바라보았다.
1857년 4월 12일, 비가 자주 와서 한강 물이 크게 불어나자 많은 선비들이 먼저 돌아가려고 다투다 보니 배를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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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임재일기(林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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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찬규(徐贊奎)
주제 : 놀이와 유람, 산책과 나들이
시기 : 1846-03-05 ~ 1857-04-1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서찬규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2호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한강 도강 풍경
서찬규는 한강을 건너가서 과거를 치렀고, 물이 불었을 때는 배를 빌리지 못해 곤란에 빠지기도 했으며 친구들과 배를 띄워 뱃놀이를 가기도 했다. 서찬규로서는 한강은 서울에 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을 중심으로 전국에 9개의 간선도로가 뻗어 있었는데, 그 중 6개 도로가 한강을 건너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한강은 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서 강남과 강북을 오고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은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강변 곳곳에 진(津)과 도(渡)를 설치했는데 한강진, 노량진, 송파진, 광진, 사평 등의 나루가 속한다. 국왕이 건널 때는 배다리가 가설되었다.
한강은 수량이 풍부해서 농사 짓는 물로 사용되었고 중요한 수상교통로였으므로 강변에는 많은 마을들이 생성, 발전했다. 수도 서울로 공급하는 각종 물자가 모여서 시장이 섰고, 고기잡이와 상역선(商易船) 등 많은 사람들이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다. 각 군현에서 거두어들인 조세미를 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으로 운송했고, 서울 사람들의 곡식류, 땔감, 소금, 광물 등도 운반되었다. 한강은 서울사람들의 삶의 기본 터였다.〈출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3월 5일. 오후에 가랑비가 옷을 적시다.
길을 나설 때 신석룡申錫龍이 창부倡夫를 거느리고 동행하여 한강의 배에 올랐다. 봄바람 속에 창부가 부는 쌍피리가 젊은 날의 풍취를 더해주었다. 20리를 가서 말죽거리[馬粥巷]에서 점심을 먹고, 비를 무릅쓰고 10리를 가서 신원新院에서 잤다.
4월 15일. 맑음.
신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족형과 경백이 머물러 기다리다가, 내가 뒤에 왔기 때문에 앞에 간 우씨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였다. 한강의 사평沙坪 나루터에 이르니 풍랑이 세차게 일어 배를 빌릴 수가 없어서 나루터의 가게에서 묵었다.
5월 14일. 밤새도록 천둥치고 비가 많이 왔다.
한강의 물이 크게 불어 한처사·박사문朴斯文·홍최수洪㝡秀(자는 득로得老)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물이 불어난 모양을 바라보았다.
4월 12일. 비.
비가 자주 와서 한강 물이 크게 불어나자 많은 선비들이 먼저 돌아가려고 다투다보니 배를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이미지
나루터,《행려풍속도병》
그래픽
밤중에 나와 파도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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