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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종 막개, 5년 후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발견되다
1612년 1월 9일, 김택룡은 어제 아들 숙이의 도망친 여종 막개(莫介)가 현재
양양(襄陽)
의 향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금변(琴卞)이를 그 곳으로 보냈었다. 간혹 놓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일단 금변이를 먼저 보내 정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택룡은 수삼일 기다렸다가 따로 좋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날 밤 택룡의 아들 김숙·김적·김각 3형제와 조카 김형, 생질 정득, 또 사촌동생 김덕룡까지 모두 택룡의 집에 모여 여종을 어떻게 잡아올 것인지에 대해 한참 논의하였다. 3일 뒤 12일에 김적과 덕룡, 그리고 논복(論卜)이와 개수(介守)가 막개를 잡으려고 예천으로 떠났다. 그러나 허탕만 쳤을 뿐이다. 그 뒤 막개를 잡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5년 뒤 겨울 1617년 12월 19일, 택룡은 마침내 막개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신안(新安)
의 향리(鄕吏)와 결혼하여 자녀 넷을 낳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택룡은 막개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들 김숙을 신안으로 보내며, 동시에
신안현감(新安縣監)
김중청(金中淸)
에게도 협조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김숙이 그 곳에서 편지를 보내와 보고하기를 막개를 찾았으며 막개가 자기에게 공물을 바치기로[
신공(身貢)
] 약속했다고 하였다. 이 날 신안현감 김중청에게 답장이 도착하였는데, 택룡의 아들 김숙을 잘 대접하였고 막개의 일도 잘 처리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개의 차녀를 잡아와서 기생의 열에 예속시킨다고도 하였다. 막개는 그 동안 노비구실을 하지 않았던 대가로 베[
공선(貢膳)
]를 보내왔다. 택룡은 이번 일로 뜻밖에 이익을 얻은 기분이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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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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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택룡(金澤龍)
주제 : 신분과 대우, 노비의 도망
시기 : 1612-01-09 ~ 1617-12-19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강원도 양양군, 경상북도 예천군, 전라남도 신안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택룡, 막개, 금변, 김숙, 김적, 김각, 김형, 정득, 김덕룡, 논복, 개수, 김중청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노비의 의미
조선시대 노비들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었다. 그러나 노비는 토지와 달리 ‘살아 움직이는 재산’이기에 출생, 사망, 도망 등 변수가 많았는데, 특히 도망가서 종적을 감추면 주인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도망간 노비를 찾는 일은 전적으로 노비를 소유한 ‘주인’의 몫이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가 도망가면 관청에서 대대적인 수색 작업에 나섰고, 개인 소유의 ‘사노비’가 도망가면 해당 소유주가 알아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노비들의 ‘도망’은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주인가에 매년 바쳐야 하는 세금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을 칠 수도 없는 일이다. 농경사회에서 갈아먹을 논밭이나 논밭을 살 돈도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망을 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기반을 갖거나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오늘날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연고를 따라 가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비가 도망에 성공한다고 해서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이 언제 어떻게 다시 추적해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 세력 있는 양반가인 주인은 관권력을 동원하거나 도망 노비의 남아있는 가족을 압박하여 도망간 노비의 소재를 파악하였다. (안승준, 『조선 전기 사노비의 사회 경제적 성격』 참조 및 재인용, 경인문화사, 2007)
여기에서도 김택룡의 아들 김숙의 노비 막개가 도망간 것 때문에 온 집안이 노비를 잡아오기 위해 들썩거리고 있다. 그러나 끝내 잡지 못했는데, 5년 뒤에 운좋게도 막개를 찾아내 그녀에게 그 동안 노비구실을 하지 않았던 책임과 앞으로도 공물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김택룡와 그 아들은 신안현감 김중청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또 이용하고 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612년 1월 9일 눈 또는 비
아들 숙의 여종 막개莫介가 지금 양양襄陽의 향교에 있다고 해서 어제 우선 금변琴抃이를 보내었다. 간혹 놓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수삼 일을 기다렸다가 따로 좋은 조치를 취하고자 함이다. 저녁나절 무렵에 자씨姊氏가 술과 떡을 보내왔다. 김덕룡·생질 정득·김숙·김적·각珏(이하 아들 김각으로 함) 각(珏) : 김택룡의 셋째 아들 김각(金珏). 각(珏)은 각(瑴)으로도 썼다.
과 함께 먹었다. 밤에 아들 김숙·김적·김각·조카 김형·생질 정득·아우 덕룡 덕룡(德龍) : 김택룡의 사촌인 김덕룡을 가리킨다.
등이 모두 나의 숙소에 모여서 여종을 잡아올 일에 대해 논의하였다.
1612년 1월 12일 아침에 눈, 저녁에 갬. 바람.
아들 김적·덕룡·논복· 개수介守가 예천으로 떠났는데, 막개를 잡으려는 것이다.
1617년 12월 19일 맑고 바람
이정里正이 현에서 와서 아들 김숙이 성산星山에서 쓴 편지를 전해서, □□□가 자녀 넷을 낳았고 신안 관인(官人:향리)과 결혼했으며 지금 □□에 살고 있음을 알았다. 비婢 목이目伊의 부夫도 와서 현신現身했으며, 신공을 걷을 것이라고 했다. □□□□ 김광재가 신안에 갔다가 먼저 돌아가기에, 그 편으로 편지를 부친다고 했다. 나는 이 편지를 가지고 숙아의 처에게 가서 그 뜻을 말해 주었다. □□□□ 김기룡과 박성립朴誠立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숙아 일행이 성산에서 돌아왔다. 어제 오천 김 상사金上舍 집에서 잤다고 한다. 한강寒岡의 답서와 신안新安(김중청)의 답서가 나란히 왔다. 모두 지극히 친절하고 후하게 대했다고 한다. 막개와 목이目伊의 일은 잘 처리되었으며, 막개의 차녀는 잡아와서 기생妓生의 열에 예속시킨다고 한다. 공선貢膳도 왔다. 이번 이 일로 뜻밖에 □□□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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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2012-11-05 AM 01:03
갤럭시 탭에서 잘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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