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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노비, 괘씸해하며 쫓는 주인
1616년 4월 12일, 김택룡의 노비 난개(蘭介)가 제 어미를 따라서 영양(英陽)의 진수(眞守)에게 도망해 들어갔는데, 그들이 난개를 불러 유인해 간 것이었다. 택룡이 거듭 독촉하니 난개 어미와 그 남편 진수가 지금에서야 나타나 난개를 끌고 택룡의 산장으로 왔다. 택룡은 난개가 자신의 명령을 받지 않고 멋대로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 배짱이 너무 괘씸해 분통이 터졌다.
8월 3일, 택룡의 노비 난개가 또 영양에 있는 제 어미에게로 갔다. 진수를 만나서 함께 갔다.
8월 18일, 택룡의 노비 난개가 상리(上里) 청전(菁田)으로 갔다가 영양에 제 어미가 있는 곳으로 도망갔다. 택룡은 애통해하고 또 애통해하였다.
11월 20일, 택룡의 노비 애남이가 영양으로 가서 난개를 제 어미 집에서 이끌고 왔다.
12월 13일, 전날 택룡의 집을 방문한 조예승이 이 날 난개를 불러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해서, 택룡은 정덕(鄭德)을 보내 데려가면 안 된다는 뜻을 전하였다. 조예승이 돌아가는 길에 택룡을 만나러 들어와 보기에, 난개를 데려가서는 안 되는 까닭을 말하였더니 그대로 두고 떠났다. 난개가 조예승의 뒤를 따라가길래, 택룡이 내은복을 시켜 뒤쫓게 하였더니 곧 돌아왔다. 택룡은 난개의 태도가 자못 불손해 괘씸해하며,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주지시켰다.
1617년 11월 15일, 택룡의 노비 애남과 종개가 난개를 추쇄하는 일로 ??에 갔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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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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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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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택룡(金澤龍)
주제 : 신분과 대우, 노비의 도망
시기 : 1616-04-12 ~ 1617-11-1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영양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택룡, 난개, 진수, 애남이, 조예승, 내은복, 정덕
참고자료링크 :
조선왕조실록
◆ 노비의 도망과 추쇄
조선시대 노비들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었다. 그러나 노비는 토지와 달리 ‘살아 움직이는 재산’이기에 출생, 사망, 도망 등 변수가 많았는데, 특히 도망가서 종적을 감추면 주인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도망간 노비를 찾는 일은 전적으로 노비를 소유한 ‘주인’의 몫이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가 도망가면 관청에서 대대적인 수색 작업에 나섰고, 개인 소유의 ‘사노비’가 도망가면 해당 소유주가 알아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노비들의 ‘도망’은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주인가에 매년 바쳐야 하는 세금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을 칠 수도 없는 일이다. 농경사회에서 갈아먹을 논밭이나 논밭을 살 돈도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망을 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기반을 갖거나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오늘날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연고를 따라 가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비가 도망에 성공한다고 해서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이 언제 어떻게 다시 추적해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 세력 있는 양반가인 주인은 관권력을 동원하거나 도망 노비의 남아있는 가족을 압박하여 도망간 노비의 소재를 파악하였다. (안승준, 『조선 전기 사노비의 사회 경제적 성격』 참조 및 재인용, 경인문화사, 2007)
김택룡의 일기에도 도망가는 노비 때문에 주인 양반들이 골머리를 앓는 일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일기를 쓰는 주인공인 택룡은 말할 것도 없고, 도망간 노비를 찾기 위해 택룡에게 수색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관청에 청탁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지인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노(推奴)’의 과정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단지 양반들은 도망친 노비를 찾기 위해 항상 촉을 세운 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활용하여 언제든 붙잡아 올 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김택룡은 도망간 여종 막개를 거의 5년 만에 붙잡기도 하였다.
한 번 도망갔다 잡혀 온 노비가 다시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위의 장면에 등장하는 난개란 노비는 영양에 살고 있는 제 어미한테로 툭하면 도망가고 있다. 잡아와도 다시 도망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멀리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대를 막론하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일기에는 도망가는 노비를 잡아 오는 일이 다반사로 기록되어 있다. 인간과 인간의 종속 문제였기 때문에 이러한 노비 단속의 문제는 양반들에게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616년 4월 12일 맑음 의남義男의 처인 난개蘭介가 그 어머니를 따라서 영양 진수眞守에게 도망해 들어갔는데, 불러 유인해 간 것이다. 독촉하니 이제야 나타나 끌고 산장으로 왔다. 내 명령을 받지 않고 멋대로 스스로 행동하니 배짱이 너무 괘씸하다. 1616년 8월 3일 맑음 난개蘭介가 영양의 제 어머니 있는 곳으로 갔다. 강장姜莊과 그의 남편 진수眞守를 만나서 갔다. 1616년 8월 18일 맑음 난개蘭介가 상리上里 청전菁田으로 갔다가 영양에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도망갔다. 애통하고 애통하다. 1616년 11월 20일 맑음 애남·난개가 영양 어머니 집에서 왔다. 1616년 12월 13일 맑음 조예승이 난개를 불러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해서 정덕鄭德을 보내 안된다는 뜻을 말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들어와 보기에, 데려가서는 안 되는 까닭을 말하였더니 그대로 두고 떠났다. 난개가 뒤따라 가길래, 내은복을 시켜 뒤쫓게 하였더니 곧 돌아왔다. 자못 불손하였는데 확실히 돌아오라고 밝혔다. 1617년 11월 15일 흐림 애남과 종개는 난개를 추쇄하는 일로 □□에 갔다. □□□가 와서 만났다. 권취중 역시 와서 말하기를, 내일 사위 이준형李俊亨을 맞이하는데 나를 초대한다고 하며 □□□도 와서 참석한다고 한다. 16일이 숙부 대상大祥이라고 사양했다. 저녁에 면·병糆餠과 주과를 갖고 가서 궤연几筵에 잔을 올렸다. 동□洞□이 모두 모이고 민응서 부자도 역시 와서 참석했다. 밤이 깊어 집에 돌아왔다. 나는 여러 날 말을 타고 돌아다녔고 술에 시달려 몸이 심히 고단하고 아파 쓰러져 누워 밤 내내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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